마주하기 힘든 北美…험난한 文대통령 '중재외교'

【평창=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대표단이 9일 강원 평창올림픽플라자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을 관람하고 있다. 2018.02.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북미간 접촉이 성사 직전 무산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외교가 한계에 부딪힌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자연스러운 만남을 그렸던 문 대통령으로서는 모멘텀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 "평창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방한했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지난 10일 김여정 제1부부장,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만남을 계획했지만 북측이 약속시간 2시간 전에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펜스 부통령이 (북한 대표단과의 만남) 기회를 잡을 준비가 돼 있었다"면서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강조하려 했지만 북한이 이 기회를 잡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미국 언론의 보도를 국무부가 인정하면서 북미간 접촉 시도가 있었다는 것 만큼은 분명해졌다. 미국이 북한과 접촉을 하겠다는 결정은 펜스 부통령의 방한 2주 전에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북한이 아직까지 이와관련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 때문에 최종 만남이 불발됐는지는 알 수 없다. 펜스 부통령이 방한 직전까지 북한을 겨냥해 보다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 회동 취소에 직간접 배경이 됐을 수 있다는 1차적인 풀이가 가능하다.

 조영삼 북한 외무성 국장은 지난 8일 "명백히 말하건대 우리는 남조선 방문 기간 미국 측과 만날 의향이 없다"면서 "우리는 미국에 대화를 구걸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같을 것"이라고 대미 접촉 가능성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청와대는 당혹감 속에서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출입 기자단에게 보낸 입장 메시지를 통해 "WP 보도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확인해줄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역시 WP 보도에 대한 질문에 "지금 저희가 확인해 드릴 수 있는 사안이 없다. 양해해 달라"며 즉답을 피했다.

 외신 보도 등을 종합해 보면 청와대가 북미 접촉 자리 주선을 시도했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김여정 제1부부장 일행과 오찬을 겸한 회동도 가졌다.

 실제 북측 일행은 청와대 오찬 이후 강릉에서 예정된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 관람까지 시간이 비어 있었다. 백악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미 양측이 이날 오후에 만나는 데 동의했다는 WP 보도와 정황이 맞아 떨어진다.

 김 제1부부장은 문 대통령 접견 이후 오후 9시 남북단일팀과 스위스와의 여자아이스하키 예선 1차전 관람을 위해 강릉으로 향했다.

 강릉까지의 이동 시간을 고려할 때 문 대통령이나 김 제1부부장 일행이나  물리적으로 오후 3시부터 5시까지의 시간이 남는다. 이 시간을 활용해 펜스 부통령과의 회동을 주선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10일 북미 접촉을 전제로 봤을 때 하루 앞선 9일 펜스 부통령의 '외교 결레'도 거꾸로 해석이 가능하다.

 펜스 부통령은 문 대통령이 마련한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에 늦게 들어와 참석자들과 짧은 인사만 나누고 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이같은 행보를 두고 북미 대화의 시그널로 읽힐 수 있는 여지마저도 남기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음날 북한 대표단과 비밀회동을 앞두고 있었다면 당시의 행보가 이해되는 측면이 적지 않다.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만남보다 청와대에서의 비밀회동에 무게를 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청와대도 펜스 부통령이 리셉션에 참석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서라도 북미대화 등의 성숙된 여건이 필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확고한 인식에 비춰볼 때 중재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미 북미가 자연스럽게 대화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있는 기회가 한 차례 무산된 이상 새로운 기회를 마련하는 데까지는 적잖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문 대통령에게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각각 북한과 미국을 설득해야 하는 묘안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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