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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타주’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멜로 본질은 인간 탐구"

등록 2018.03.09 08: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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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영화 '나라타주'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3.09.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영화 '나라타주'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3.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유키사다 이사오(50·行定勲) 감독의 신작 '나라타주'는 선생님과 제자의 사랑을 그린 언뜻 너무나도 평범한 로맨스 영화로 보인다.
 
그런데 이 관계가 어느 시점에서 결론지어지는 게 아니라 수년 간 지속되면서 목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도달하지 않고 맴돌고 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두 사람을 이어주고 있는 고리의 정체가 도대체 어떤 무엇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인가, 그게 아니라면 정인가, 혹시 서로를 향한 연민 같은 것인가.

 이즈미(아리무라 카스미)와 하야마 선생님(마츠모토 준) 사이가 그렇다. 이즈미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어엿한 직장인이 됐을 때까지 두 사람은 그들 사이에 오간 감정을 명확히 정의하지 못한다. 그저 그들은 함께 할 수 없음에 좌절하다가도 정작 함께할 때는 고통스러워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떠나기를 간절히 원하다가도 또 어김없이 붙잡는다. 이건 사랑이라고도 사랑이 아니라고도 말하기 힘든 이상한 감정들이다.

 이사오 감독은 바로 사랑의 이런 불명확한 형태들을 들여다본다.
 
 그는 사랑이라는 이 알 수 없는 모양을 가리켜 "그게 바로 리얼한 멜로"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런 감정을 가진 것이야말로 정말 인간다운 것"이라며 "인간을 탐구해나가는 작품들을 멜로라는 장르 안에서 계속해서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영화 '나라타주'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3.09.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영화 '나라타주'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3.09. [email protected]


 -'나라타주'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관객을 처음 만났고, 약 6개월이 지나서야 한국에서 정식 개봉하게 됐다.

 "한국 관객은 아무래도 속도감 있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나. '나라타주'는 느린 영화다. 다소 지루하다고 느끼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웃음) 음…또 한 가지는 이 작품에 마츠모토 준이 나오는데, 그가 한국 관객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부분은 한국 관객도 흥미로울 거로 본다."

 -'나라타주'는 쉽게 멜로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 속 멜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어떤 사랑을 그리고 싶었나.

 "리얼한 멜로다. 연애라는 것, 사랑한다는 것, 이런 감정에는 그라데이션이 있다. 다시 말해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다는 거다. 만약 이즈미나 하야마가 쉽게 결단을 내리면 이들의 관계는 붕괴될 거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바로 이 위태로운 밸런스가 연애의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 아닌가 생각했다. 두 사람 사이의 어떤 심리적 장애물이 있다는 것. 이런 식으로 관계가 지속돼서는 안 되지만, 한편으로는 이 관계를 놓고 싶지 않다는 것. 사랑의 아름다운 부분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찌질함이다."

 -이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한국 관객의 반응 때문이다. 아마도 부산에서 이 작품을 먼저 본 관객들은 이즈미와 하야마의 사랑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명확하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웃음) 아무래도 관객마다 연애 경험치가 다르니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은 아니다. 연애 감정이라는 게 꼭 이론처럼 정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역시 한국 관객은 대체적으로 명확한 걸 좋아하는 것 같다.(웃음) 상처주고 괴로움을 주는 관계인데, 그러면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 사랑의 이런 측면을 경험해본 관객은 이 영화를 좋아할 거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영화 '나라타주'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3.09.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영화 '나라타주'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3.09. [email protected]


 -'나라타주'는 특정 사건을 다루는 멜로 영화라기보다는 멜로가 무엇인지 탐구하는 영화라는 말로 이해하면 되나.

 "그렇다. 난 큼직한 사건이나 큰 줄기가 있는 스토리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스토리,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감정이 요동치는 그런 이야기가 좋다. '나라타주'는 침묵이나 대사 중간의 여백이 더 중요하다. 대사에는 진심이 표현되지 않는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 속에, 작은 표정 변화 속에 진짜 마음이 있다. 그게 중요하다."

 -제목 '나라타주'는 내레이션과 몽타주를 합친 용어다. 이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건 분명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 영화 구조 또한 회상에 회상이 반복되는 식이다. 이런 연출이 이 작품이 그리는 멜로와 어떤 관련이 있는 건가.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현재를 살아가는 주인공이 내 마음 속을 지배하는 기억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상태. 어떻게 보면 멈춰서 있는,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기억이 있는 하나의 원을 끊임 없이 맴도는 거다. 그건 결국 도무지 마음이 정리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타주'를 옛날 스타일의 영화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2000년대 초반 한국에 들어온 일본 멜로영화 스타일이라는 거다. 그때로부터 10여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그때에 머물러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런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거다. 난 2000년대 초반에 데뷔한 감독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설명해보고 싶다. 최근 일본 영화계 상황을 말하자면, 만화 원작이라든지 상당히 알기 쉬운 스토리의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영화들의 공통점은 대사에 혹은 그림에 곧이 곧대로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런 영화들을 수준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 식으로는 진짜 인간에 대한 탐구가 불가능한 게 아니가. 가령 우리는 평소에 말에 마음을 모두 담지 않는다. 진실은 표정에 있을 수도 있고, 하려던 말과 반대되는 말에 있을 수도 있고, 침묵에 있을 수도 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이렇게 진짜 인간다운 모습을 담는 작품이다. 그걸 시류에 역행했다고 볼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영화 '나라타주'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3.09.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영화 '나라타주'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3.09. [email protected]


-멜로 영화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도 인간에 관한 진정한 탐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맥락에서 이해해도 되는 건가. 한국 영화계에서 오리지널 시나리오의 멜로 영화는 사실상 멸종됐다.

 "일본도 그런 추세로 간다. 미국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멜로는 상당히 과소 평가받고 있다. 흥행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가 표현의 자유랄까, 그런 걸 빼앗는다고 생각한다. 다뤄야 하는 것, 다루고 싶은 것을 영화로 만들기 어려우니까. 영화가 너무 시스템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내가 데뷔했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시 멜로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추상적인 질문일 수도 있지만, 멜로영화라는 것, 멜로라는 건 무엇이라고 보나.

 "멜로는 자유롭다. 누구나 연애를 통해서 살아갈 활력을 얻는다. 반면에 꼭 필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연애를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 내게는 이 자유로움이 멜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사랑의 아름다움만 드러내는 건 진짜 멜로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랑이 반드시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지 않나. 사랑의 추한 부분, 못된 부분을 드러내지 못하면 멜로로서 가치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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