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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가 끄집어낸 공연시장 명암...문제는 일자리?

등록 2018.03.18 1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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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편 한국극작가협회는 이 전 감독을 회원에서 제명한다고 지난 17일 입장을 냈다. 이와 함께 한국여성연극협회가 성명을 내는 등 각종 연극 단체에서도 이 전 감독 사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8.02.19.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편 한국극작가협회는 이 전 감독을 회원에서 제명한다고 지난 17일 입장을 냈다. 이와 함께 한국여성연극협회가 성명을 내는 등 각종 연극 단체에서도 이 전 감독 사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8.02.1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공연계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활발하다. 곪은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권력이 문제라는 지적은 이미 숱하게 쏟아졌다. 권력의 위계가 작동한 구조적인 문제를 조금씩 톺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권력구조로 인한 불공정한 계약 관행, 인권 침해 등의 부당노동행위가 결국 예술계 성폭력을 조장한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일자리 빌미로 성폭력 가능한 구조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당시 연극인들이 1년간 예술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평균 수입은 1285만원에 불과했다. 인기 배우를 포함한 평균일 뿐 대다수의 배우들은 최저소득 이하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극단을 좌지우지하는 자가 일자리를 빌미로 한 성폭력을 가능케 하는 구조다. 특히 연희단거리패처럼 극단 체제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어, 젊은 단원들이 단체에 만연한 악습에도 쉽게 벗어날 수 없게끔 한다. 

공연 중에서도 특히 연극은 '순수예술'이라는 미명 아래에 모든 것을 착취하는 방향으로 작업 방식이 이뤄진다. 예술가의 꿈을 키우며 극단에 들어갔으나 사실상 저임금을 강요받는 '열정페이'가 난무하는 상황이다.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는 "연기지망생이 많은데 소속사에 들어갈 수 없으면 문을 두드리는 것이 극단"이라면서 "처음부터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학로의 극단은 진입이 쉬운 대신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극단으로 연결되는 것 자체가 교수 등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연극·뮤지컬 일반 관객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MeToo)운동을 지지하는 '연극뮤지컬관객 #WithYou 집회'를 하고 있다. 2018.02.25.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연극·뮤지컬 일반 관객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MeToo)운동을 지지하는 '연극뮤지컬관객 #WithYou 집회'를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불투명한데다가 작은 시장규모

몇몇 권력자가 연극판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뽐낼 수 있었던 까닭은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현재 연극계는 불투명한 구조 때문에 정확하게 시장규모를 가늠할 수 없다. 관객수, 티켓 판매량 등 공연시장에 믿을 만한 데이터를 구축해줄 거라 기대를 모은 공연계 통합전산망의 본격적인 구축은 지지부진하다. 공연계의 산업화는 여전히 요원하다.

장 칼럼니스트는 "전문가들조차 대학로에 극단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다"면서 "시장 규모가 작다 보니 일반 사람이 큰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이윤택보다 덜 유명한 사람이 미투 대상자였으면 공론화도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에서는 권력 구조의 공고화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대안으로 오디션을 제안한다. 공연 칼럼니스트인 지혜원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연극계 캐스팅은 인맥이나 네트워크 같은 것이 절대적"이라면서 "오디션 등 진입 장벽을 낮출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드라마 PD나 만화가 등은 웹을 비롯해 데뷔할 수 있는 다른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는데 공연장은 아직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짚었다.

하지만 오디션 개최 역시 돈이 필요하다. 지 교수는 "우리나라 공연 환경상 제작 기간이 충분하지 않아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뽑고 트레이닝하는 것이 힘들다"면서 "그러다보니 끊임없이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성폭력 방지를 위해 공연예술분야 표준계약서에 성폭력 관련 조항을 추가하는 등 제도적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하지만 미국에서는 180쪽만 넘는 등 외국과 비교하면 국내 공연계에서 통용되는 표준계약서는 허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니멈 근로조건(임금 포함)에 대한 시장의 논의와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최근 미투 운동과 별개로 추후 표준계약서 형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극단에서는 여전히 '구두계약' 형태가 관행이다.

◇"취약한 시장·높은 진입장벽" 문제

공연계의 취약성은 굵직한 정치·사회적 이슈가 만연할 때 시장 규모가 감소하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 이하 문체부)가 (재)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김선영)와 함께 발표한 '2017 공연예술 실태조사'(2016년 기준)에 따르면, 국내 공연시장 규모는 공연시설과 단체의 연간 매출액을 합한 금액으로서 2016년 기준 7480억 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공연시장 규모, 공연시설 및 단체 운영 현황과 실적 등을 조사한 것으로 2015년 7815억 원에 비해 4.3%, 2014년 7593억 원과 비교해도 1.5% 감소한 숫자다.

문체부는 "경제적 불황과 정치·사회적 상황이 공연시장에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성장 정체기에 들어선 공연산업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전국 대학의 연극영화과 관련 학과에서 배출되는 인력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지 교수는 "공연예술 시장 인력의 수요와 공급의 간극이 결국 높은 진입장벽을 형성한다"면서 "연간 배출되는 전공자 인원에 비해 시장의 성장은 따르지 못하고 있다. 영화나 방송 등 다른 미디어가 플랫폼을 개발하고 산업을 확장하는 것에 비해 공연이라는 특수성이 작용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라고 짚었다.

이에 따라 "좁은 시장 안에서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에 어려움이 배가 된다"면서 "공연계 인력들에 좀 더 기회의 문이 열릴 수 있고, 그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구조적인 장치를 만드는 것이 숙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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