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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포럼]공론조사의 경험과 한국의 민주주의

등록 2018.04.06 16:34:12수정 2018.04.16 09: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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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6일 오전 서울 필동 안민정책포럼에서 열린 조찬세미나에서 김석호 서울대학교 교수가 '한국의 공론화경험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2018.04.06.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6일 오전 서울 필동 안민정책포럼에서 열린 조찬세미나에서 김석호 서울대학교 교수가 '한국의 공론화경험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2018.04.0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 공론조사의 주제로 에너지 정책과 같이 이해가 어렵고 국민적 관심과 수용을 확보하기 힘든 주제는 적절치 않고 생활밀착형 주제가 더 적절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가 지난해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공론조사에 대한 검증위원회의 책임을 맡았던 김석호 서울대 교수는 지난해 공론조사가 집단 간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 한국식 시민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지만 공론조사의 이슈로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이 같은 발언은 공론조사의 검증위원회의 책임자의 입을 통해서 나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김 교수는 4월 6일 안민정책포럼(이사장 백용호)의 조찬세미나에 참석, ‘공론조사의 경험과 한국의 민주주의’란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해 공론조사에 참여한 시민참여단의 대표성에 문제가 있고 숙의효과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공론조사 참가자의 대표성, 충분한 정보와 지식제공을 통한 활발한 의사소통 과정인 숙의성, 절차적 공정성 등의 한계 때문에 공론조사 결과에 대한 전반적인 찬사와는 다르게 전문가적 견지에서 보면 비판의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에는 다양한 비판도 제기됐다. 한 참가자는 지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 공론조사에 대해 이미 결론을 짜 놓고 출구전략으로 이용한 정치적 과정이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공론조사의 상설화 약속을 해 놓고 정작 중요한 이슈들을 외면한 채 지나가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 놓기도 했다. 뉴시스는 이날 최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독점 게재한다. 안민정책포럼은 고(故) 박세일 교수를 중심으로 만든 지식인 네트워크로 1996년 창립됐다. 좌우를 아우르는 통합형 정책 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음은 강연 요약본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화위원회)가 2017년 10월 20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형조사 보고서”에 정책권고안을 담아 국무총리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7월 24일부터 시작한 약 3개월간의 활동에 마침표를 찍었다.
공론화위원회가 국무총리에게 제시한 정책권고는 세 가지였다. 첫째, 현재 일시중단 중인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을 재개하고, 둘째, 원자력발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에너지정책을 추진하며, 셋째, 시민대표참여단(이하 시민참여단)이 건설재개에 따른 보완조치로 제안한 사항들에 대해 세부실행 계획을 조속히 마련하여 추진해 줄 것 등이다.

 대통령은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여 신고리 5·6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의 재개를 결정하고 여기에 포함된 정책방향과 세부실행계획을 추진하기로 공표하였다. 대통령의 권고 수용 및 정책 방향 결정은 단순히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을 넘어 향후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공론화위원회 활동과 대통령의 권고 수용은 1987년 민주화 항쟁을 거치며 달성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발전과 2016년 광장에서의 촛불을 통한 참여민주주의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가 풀지 못하고 있던 이해와 가치를 달리하는 집단 간 갈등을 집합적 수준에서 함께 해결할 수 있는 한국식 시민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가 있다.

◇공론조사, 한국식 시민민주주의 새 모델 제시

 분명 최근 몇 년 간 정부와 정치권이 보여주지 못했던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와 원칙에 의해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모습을 공론화위원회가 단 3개월 만에 구현하고 이를 국민이 수용하는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즉 공론화위원회와 대통령의 수용에 대한 국민의 높은 수용도로 보았을 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정치적으로 성공한 기획이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6일 오전 서울 필동 안민정책포럼에서 열린 조찬세미나에서 김석호 서울대학교 교수가 '한국의 공론화경험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2018.04.06.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6일 오전 서울 필동 안민정책포럼에서 열린 조찬세미나에서 김석호 서울대학교 교수가 '한국의 공론화경험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2018.04.06. [email protected]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성공이 공론화위원회의 활동 내용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민들이 공론화위원회를 향해 보내는 높은 지지는 공론조사의 결과가 공사 재개와 중단을 주장한 양측 모두가 수용할만한 내용을 담고 있고 에너지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질 수 있는 극단적 갈등과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방향으로 나타났기 때문일 수 있다. 즉 현재 국민의 높은 수용성은 공론조사 자체의 공정성과 객관성, 그리고 적절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현재 국민이 정치권과 이해 당사자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낮은 기대수준을 충족시킨 결과일 수도 있다. 혹은 시민참여단의 적극적 참여와 열띤 토론을 거친 숙의민주주의의 과정 자체가 높이 평가받은 것일 수도 있다.


◇신고리 최종결정 471명 대표성·숙의기간 논란도 여전 

 사실 학계에서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법적 정당성과 중립성, 그리고 공론조사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과 비판이 엄연히 존재한다. 최종 결정을 내린 471명의 대표성에 의심을 거두지 않는 시각도 여전하다. 공론화위원회가 시민참여단을 구성해 공사 중단과 재개의 입장을 조율해 공론조사를 실시하고 대통령으로 하여금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도록 돕기에는 숙의 기간이 짧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와 같은 논란과 비판, 그리고 의심의 존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공론화위원회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공론화위원회의 법적·제도적 정당성, 조사과정의 적절성과 조사결과의 대표성, 숙의의 중립성과 효과성, 공론조사 이해당사자들 간 소통의 공정성과 투명성 등에 대해 면밀히 검증하고 그 검증 결과를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지 않는 한 공론화위원회의 정책권고, 대통령의 권고 수용, 공사 재개 결정, 국민의 대통령 결정 지지라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국민들의 높은 수용성도 정치적 논란이 지속됨에 따라 잦아들 수 있다. 따라서 공론화위원회와 공론조사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 상황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그 역사적 의미가 퇴색하지 않으려면 이와 관련된 모든 사항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수행해야 한다. 그것만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활동과 대통령의 결정이 역사 앞에 정당성을 획득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길이다. 따라서 필자가 대표로 활동한 검증위원회의 구성과 검증은 공론화

 위원회의 활동만큼 중요한 공론조사를 통한 숙의민주주의의 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공론조사도 완벽할 수는 없으며, 정치적 상황, 사회문화적 조건, 사안의 특수성과 보편성, 공론의 범위 등에 따라 공론조사의 성공조건도 달라진다. 그러나 공론조사의 진행과정을 외부에서 관찰하고 평가하는 입장에서는 나름 명확한 기준들을 설정하고 그 잣대에 맞춰 공론조사에 점수를 매기고 싶어 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과 공론조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공론조사의 필요성, 공론화위원회의 법적·제도적 기반, 시민참여형조사의 대표성과 객관성, 숙의의 공정성과 투명성, 소통의 효율성과 효과성 등에 대해 2017년 7월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한 시점부터 무수한 비판과 논란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과 논란은 대개 공론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엽적인 문제점이나 오류들에 초점을 두거나 국가 에너지 정책에 대한 공론조사의 적법성, 정당성, 필요성 등 매우 근본적인 담론인 경우가 많았다.

  본 검증위원회의 공론화위원회 활동과 공론조사에 대한 검증 결과는 기존 비판이 지나치게 근본적이거나 지엽적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의 아주 작은 내용부터 전반적 조직 구조와 수행 과정 및 결과에 이르기까지 공론화위원회의 정책 권고 작성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안들을 점검하고자 하였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공론조사는 성공적이었는가? 그 전에 성공한 공론조사의 조건은 무엇인가? 공론조사를 구성하는 절차와 과정, 그리고 내용들이 너무 다양해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다음의 네 가지 조건은 최소한 충족해야 성공한 조사라고 알려져 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6일 오전 서울 필동 안민정책포럼에서 열린 조찬세미나에서 김석호 서울대학교 교수가 '한국의 공론화경험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2018.04.06.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6일 오전 서울 필동 안민정책포럼에서 열린 조찬세미나에서 김석호 서울대학교 교수가 '한국의 공론화경험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2018.04.06. [email protected]


◇일반 국민,  능동적 참여와 상호간 토론기회 보장돼야

우선 공론조사는 이해당사자의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참여와 발언기회의 확보가 보장되어야 한다.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할 지도 모르는 결정이 자신들을 배제한 채 결정되거나, 발언기회조차 박탈당한다면, 그런 상태에서의 공론조사 결과에 대한 수용가능성은 낮아진다. 따라서 공론장이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상호 토론기회를 제공할 때, 공론조사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수용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둘째, 현대사회에서 이슈는 날이 갈수록 전문화되기 때문에 참여자들이 공론화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문제로 다루어지는 사안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공론조사 결과는 사회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 한쪽에 치우친 정보를 참여자에게 제공하는 경우에도 공론조사 결과와 의사 결정의 정당성은 낮아진다. 정보 제공에서 소외된 당사자가 그 결과를 쉽게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일반 국민의 능동적인 참여와 상호간의 토론기회 제공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심의민주주의 이론에서 공론장의 핵심적인 속성으로 강조하는 공적 대화로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의 변화와 공적 관점에서의 이익과 가치의 재정의가 발생하는 중요한 계기일 수 있다. 일반 국민 모두가 공론조사의 참여자가 되는 방법은 국민투표밖에 없다. 따라서 소수의 국민이 참여하는 공론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결정이 이루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공론화과정에서 다루어지는 모든 정보와 지식, 그리고 논쟁을 일반 국민들이 공유하는 것은 공론조사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는 공론조사를 수행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정책 결정의 결과를 되도록 많은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구성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공론조사 결과의 국민적 수용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절차의 공정성의 확보이다. 절차적 공정성이 담보될 때만이 상반된 이해를 가진 당사자들의 참여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고, 공론조사 결과에 대한 수용가능성을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으로 보았을 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공론조사는 얼마나 성공했는가? 필자는 이 물음에 대해 성공 또는 실패로 답하기보다는 검증 내용을 최대한 세분화하고 그 결과를 사실과 정보에 기초해 제시함으로써 판단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판단의 책임을 독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에 대한 평가는 성공/실패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라 구체적 내용에 대한 실제적인 검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이를 향후 공론조사에 반영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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