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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돌이표 북핵史' 김정은의 비핵화는 다를까

등록 2018.04.21 15:08:38수정 2018.04.21 21: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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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공동선언·9·19성명 흐지부지…불신 극복해야

김정은 첫 비핵화 '노크'…바틈업→톱다운 '기대감'

南北美 정상 '의지' 이행 단계 유지 관건

【서울=뉴시스】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평양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주재했다고 노동신문이 21일 보도했다. 2018.04.21. (출처=노동신문)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평양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주재했다고 노동신문이 21일 보도했다. 2018.04.21. (출처=노동신문)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지훈 기자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1일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겠다고 공언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결정서에 명시함으로서 공신력도 담보했다. 핵실험장 폐기, 핵 무기·기술 이전 금지 등 이행 계획도 제시했다.  
 
  북한이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선제적으로 비핵화 대화 국면을 조성하며 '타결 의지'를 보인 데 대해 긍정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이날 북한 관영매체가 관련 소식을 보도한 직후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을 통해 "북한의 결정은 전 세계가 염원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환영 입장을 표명했다.

  통일부 한 당국자는 "남북 간에는 물론 유관국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적극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부연했다.
 
  북한은 핵-경제 병진노선이 승리적으로 '결속'됐다고 선언하며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과업 관철을 독려했다. 핵-경제 병진 시대를 마감하고 경제총력노선으로의 전환을 선포한 것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가 동반돼야 실질적 경제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북한은 고립에서 탈피하기 위해 비핵화에 전향적으로 나올 거라는 관측이다.

  다만 섣부른 낙관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1990년 초반 제1차 북핵위기가 도래한 이래 '비핵화' 합의는 수차례 채택됐다. 김일성이 집권하고 있던 1991년 12월 남북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 합의는 이듬해 2월 발효됐다. 북한은 당시 핵 문제를 북미 관계 정상화 협상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전략 하에 중국식 사회주의 개방과 경제개혁까지 염두에 뒀으며, 이를 위한 첫 단계로 남북 관계 회복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남한 대선 국면에서 한미연합훈련 문제가 다시 불거졌고, 남남 갈등이 남북 갈등으로 확대되면서 1993년 1월 남북대화는 중단됐다.

  그해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제출한 최초 보고서에서 플루토늄 추출량을 축소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반발 차원이었다. 남북 관계 경색에 국제사회의 대북(對北) 불신이 겹치면서 한반도 정세를 급격하게 경색됐다.

【서울=뉴시스】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평양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주재했다고 노동신문이 21일 보도했다. 2018.04.21. (출처=노동신문)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평양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주재했다고 노동신문이 21일 보도했다. 2018.04.21. (출처=노동신문) [email protected]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합의를 계기로 일단락됐던 북핵위기는 2000년대 초반에 다시 찾아왔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제네바합의가 사실상 파기되면서였다. 북한은 2003년 1월 또다시 NPT 탈퇴를 선언했다.

  중국, 러시아, 일본까지 가세했다. 그렇게 중국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시작됐고, 2005년 9월19일에 이른바 9·19공동성명이 채택됐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2008년 북한은 신고서를 제출하고 냉각탑 폭파 장면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IAEA 사찰 방식을 놓고 대립하기 시작했고, 그해 12월 회의를 마지막으로 6자회담을 중단됐다. 이후 북한은 모두 5차례의 추가 핵실험을 감행, 9·19성명은 사문화됐다.

  김정은은 지난 2013년 핵-경제 병진노선을 전략노선으로 제시한 이후 핵 무력 완성에 박차를 가해왔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해 11월에는 ICBM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하며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그리고 5개월 뒤 비핵화 추진을 공식화했다. 집권 후 처음으로 비핵화 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카드 역시 신뢰할 수 없다는 우려 섞인 시선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번 비핵화 국면은 사실상 남·북·미 3국 정상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정세 변화에 따른 변수가 줄었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욱이 과거의 바틈업(Bottom Up) 방식에서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변화한 만큼 웬만한 이견은 걸림돌이 되지 않을 거라는 기대도 있다.

  관건은 남북미 정상이 확인한 비핵화 의지를 이행 단계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최근 북한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내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북한은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비핵화를,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내세우고 있다. 미국이 지난 9·19성명 이행 과정에서처럼 '강제사찰'을 요구할 경우 다시 국면이 경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북한이 확보한 '과거의 핵'을 처리 문제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할 경우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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