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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응원가 소리 멎은 야구장, 탐욕인가 자부심인가

등록 2018.05.14 0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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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응원가 소리 멎은 야구장, 탐욕인가 자부심인가

【서울=뉴시스】 오종택·이재훈 기자 = "바야흐로 저 세 개의 베이스에 사람 모여서 안절부절못하고 가슴이 들뜨누나."(일본 시인 마사오카 시키)

야구장에게 경기를 관람하는 즐거움에 날개를 달아주는 존재가 바로 응원가다. 선수별 응원가가 울려 퍼지면, 팬들이 이 노래를 합창하는 것은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특별한 문화다. 야구는 나중이고, 이러한 문화에 참여하고자 야구장을 찾는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달 1일부터 야구장이 조용해졌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10개 구단이 합의, 선수 등장곡 사용을 중단했기 때문이다.지난달 작사·작곡가 20여명이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저작인격권 관련 공동소송 소장을 접수한 데 따른 조치다. KBO와 10개 구단이 공동대응에 나섰다.

◇저작인격권이 뭐기에

저작권은 크게 두 가지다.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이다. 저작재산권은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갖는 재산적인 권리다. KBO와 구단들은 이에 대한 사용료를 내왔다. 응원가 원곡, 선수 등장곡, 치어리더 음악 등의 저작권료를 2003년부터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게 지불해 왔다.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와 한국음반산업협회에게는 2011년부터 지급해 왔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저작인격권이다. 원곡을 그대로 쓸 경우 저작권료만 내면 된다. 하지만 편집이나 개사를 하면, 저작인격권 사용료를 내야 한다. 저작물의 내용이나 형식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 즉 동일성유지권이 핵심이다. 이번에 소송을 낸 작사·작곡가들이 문제를 삼은 부분이다.

저작물의 내용, 형식 등을 개사하거나 편집하는 변경 행위는 반드시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구단들이 멋대로 바꿨다는 주장이다.

이 문제는 2016년 처음 불거졌다. KBO는 당시까지 저작인격권 규정을 몰랐다고 한다.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KBO가 안일했다는 비판의 근거다.

[초점]응원가 소리 멎은 야구장, 탐욕인가 자부심인가

KBO 관계자는 "소장을 법적으로 검토하면서 답변서를 제출하기 위해 만들고 있다"면서 "이미 2016년부터 저작인격권에 대한 인식을 갖기 시작했고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 왔는데 법적 분쟁으로 이어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KBO는 이번 소송과 별개로 또 다른 저작권자들과 저작인격권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협의 중이다. KBO 측은 "소송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에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합의점을 찾으면 소송을 취하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법원의 판결에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현재로서는 어떻게 상황이 정리될지 알 수 없지만 원만한 해결을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 중"이라며 "다만 소송이 진행될때까지는 소송 당사자와 관련된 선수 등장송을 경기장에서 틀지 않는다는 방침"이라고 확인했다.

◇돈 욕심? 창작 자존심?

 야구팬은 물론 야구에 관심이 없는 시민들도 작사·작곡가를 두둔하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이번 소송에 합류한 윤일상(44), 김도훈(44)씨 등 인기작곡가들을 대하는 시선이 곱지 않다. 저작권료 상위권에 이름을 걸고 있는 탓이다. 이번에 소송을 건 창작자들은 저작인격권 침해 대가로 수백만~수천만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요계 관계자는 "일부 비율이 정해져 있는 저작재산권과 달리 저작인격권은 부르는 게 값"이라면서 "야구단을 운영하는 곳이 돈이 많고 대부분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대기업인 것을 악용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노래 홍보 등을 노리고 구단 측에 곡 사용을 먼저 부탁한 케이스들도 있어 이번 소송을 계기로 가요계 전체를 싸잡아 비하하는 야구인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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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야구팬은 "개사해서 사용하면 오히려 원곡을 찾아보게 된다"며 "완전한 영리 목적도 아니고, 팬들은 즐기고 자신들의 곡은 저절로 홍보가 되는데 왜 소송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작곡가들은 액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항변이다. 창작자의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라는 것이다.

 음반사 관계자는 "자존심이 강한 창작자는 한곡을 완전한 작품으로 보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번 소송은 일종의 명예훼손에 대한 경고"라고 풀이했다. "KBO와 구단들이 멋대로 개사를 한 뒤 이어지는 협의에서도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선수들 연봉으로는 쉽게 수십억원을 챙겨주는 구단들이 그에 비하면 얼마되지 않지만 중요한 인격저작권료를 너무 아까워한다는 것은 올바른 인식 부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결책은?

 야구장 응원가 논란은 과거 정치권의 선거송과도 맞닿아 있다. 몇 년 전까지 선거 때면 정당들은 선거 유세를 하면서 잡음을 일으켰다. 저작인격권을 무시하고 가사를 멋대로 고친 탓이다. 이후 정치권은 저작인격권까지 완전히 해결한 뒤 선거곡을 정하고 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둔 요즘도 마찬가지다.

뒤늦게 야구장 응원가 저작인격권 시비가 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해석이다. 날로 높아지는 프로야구의 인기와 성숙해지는 저작권 문화가 맞물리는 과정에서 빚어진 충돌이라는 것이 야구, 가요계의 공통의견이다.

 음원 창작자들이 소송을 걷어들이지는 않을 전망이다. 법으로 다투면 승산이 높은 덕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음원으로 수익을 얻는다는 것이 자신들에게는 불리한 비합리적인 구조라는 불만을 품은 창작자들은 승소 가능성이 큰 부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믿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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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계 관계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 관련 단체들이 공연권에 대한 저작권료(공연료)를 징수할 수 있도록 승인한 것도 가요계가 저작권 관련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구단 관계자들은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면서도 원곡을 훼손한 상업적 이용이 아니라는 볼멘소리를 계속 내고 있다. 한동안 양측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요계 일부에서는 이번 소송이 '너무 나아갔다'고 본다. "작곡가 입장이 이해는 가지만 노래라는 것은 대중의 인기로 먹고 사는 것 아니냐. 특히 대중음악은 많은 이들이 듣고 불러야 빛이 난다"는 원칙을 상기한다.

물론 "야구장에서 사용되는 음악에 대한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저작인격권 침해는 창작진을 멍들게 하는 것"이라는 반박도 있다.

대안도 제시된다. 음원유통 관계자는 "구단별로 선수 등장곡 또는 응원가를 공모해서 사용하면 좋을 듯하다"면서 "선정된 곡에는 상금을 주고, 권한은 구단이 가지면 양측이 윈윈하지 않겠냐"는 판단이다.

 문화스포츠부 ohjt@·[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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