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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항쟁 이끈 들불야학 창립' 박기순 열사 평전 발간된다

등록 2018.05.17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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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열사 삶 기록한 출판물 없어 민주화·노동운동 헌신 조명

전남여고 동기들 논의 끝에 송경자 전 언론인이 평전 집필

노동운동 투신 중 사고로 숨져 82년 윤상원과 영혼 결혼식

【광주=뉴시스】 광주·전남 최초의 민중야학인 '들불야학 옛터' 2018.05.17. (사진 = 뉴시스 DB, 광주시 제공)

【광주=뉴시스】 광주·전남 최초의 민중야학인 '들불야학 옛터' 2018.05.17. (사진 = 뉴시스 DB, 광주시 제공)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1980년 5·18 민중항쟁을 이끈 들불야학의 창립자이자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인 고 박기순 열사(1957~1978)의 삶이 재조명된다.

 17일 들불열사기념사업회 등에 따르면, 기념사업회는 오는 10월까지 선구적 노동운동가였던 박기순 열사의 삶을 재조명하는 평전을 발간할 계획이다.

 평전 집필은 박기순 열사와 전남여고 동문(20회 졸업)인 송경자 전 언론인이 맡았다.

 송 전 언론인은 박 열사 행적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출판물이 없는 점에 주목, 전남여고 동기들과 논의 끝에 평전 발간 작업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박 열사 관련 기록물을 수집하고, 들불야학에 교사(강학)로 참여했던 인사 등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 중이다. 기념사업회와 광주여성재단이 박 열사 평전 발간을 지원한다. 

 박기순 열사는 1978년 6월 전남대학교 사범대 국사교육과 3학년 재학 중 민주교육지표사건으로 강제 휴학을 당했다.

 1978년 7월23일 전남대생 임낙평·신영일·나상진, 전복길·최기혁·김영철 등과 함께 광천동 성당 교리에서 들불야학을 창립했다. 못 배우고 힘없는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광천공단 한 금속 제조업체에 입사, 광주지역 최초 위장 취업 노동자가 됐다. 전남대 선배 윤상원 열사를 설득해 들불야학 교사로 참여시켰다.

 박 열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오후 7시~9시)까지 노동자들에게 노동권과 평등 사회의 중요성 등을 가르치며 야학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박 열사는 그해 12월26일 둘째 오빠 집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졌다. 12월24일 들불야학 운영에 대한 밤샘 토론 뒤 이틀간 수업을 마치고 귀가해 잠자던 중 참변을 당했다. 

 노동 운동에 대한 강한 신념과 의지를 보였던 박 열사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떴지만, 들불의 불길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들불야학 교사와 학생들은 기수를 더해가며 유신 체제에 맞선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들불야학 교사들은 1980년 5·18 항쟁 때 계엄군 학살의 실상과 시민의 저항·임무 등을 담은 '투사회보'를 제작·배포했다.

 투사회보 배포로 광주시민들은 5·18 진상을 명확히 파악했고, 투쟁 의지를 한 데 모았다. 

 윤상원·김영철·박관현·박용준 등 들불야학 대부분 교사들은 5·18을 이끌었다. 민족민주화대성회·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주도, 투쟁위원회 조직 등으로 투쟁의 중심에 섰다.

 1982년 2월20일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는 박 열사와 5·18 시민군 대변인으로 옛 전남도청을 지키다 계엄군 총탄에 맞아 숨진 윤상원 열사의 영혼 결혼식이 열렸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광주 문화운동가들이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었다. 이 노래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곡이 됐다.

 송 전 언론인은 "들불야학은 광주 항쟁의 주춧돌을 놓았다"며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노동자와 더불어 살고자 했던 박 열사의 삶을 평전에 구체적으로 담아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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