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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배수진에 초강수 둔 트럼프…'결렬' 보단 '압박' 무게

등록 2018.05.25 02:07:14수정 2018.05.25 07: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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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北, 엄청난 분노와 적개심…이번 만남 부적절"

先 비핵화 後 보상, 北 '병진노선 승리적 결속' 선전에 흠집

【서울=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편지를 통해 예정된 역사적 회담은 “적절치 않다(inappropriate)”라면서 회담을 취소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05.24. (사진=TV조선 캡쳐)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편지를 통해 예정된 역사적 회담은 “적절치 않다(inappropriate)”라면서 회담을 취소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05.24. (사진=TV조선 캡쳐)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지훈 기자 =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달 12일로 예정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취소하겠다고 24일(현지시간) 밝혔다.

 북한이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 등을 골자로 한 미국의 비핵화 방식에 적대감을 드러내고, 미국의 대북정책 핵심 참모들을 겨냥한 날 선 비난을 쏟아내며 배수진을 치자 오히려 한발 더 나가는 초강수를 둔 결정으로 풀이된다. 강대강 국면에서 압박하는 스탠스로 다시 북한을 상대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공개서한에서 "최근 성명에서 보여준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개심을 보면 지금으로서는 오랫동안 계획된 이번 만남을 갖는 게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며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북한은) 자신들의 핵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것(핵무기)은 신에게 이 무기를 쓰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정도로 강력하다"며 경고 메시지도 남겼다.

 북미 간 기류가 급변하기 시작한 것은 이달 중순께부터다. 지난 9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3월에 이어 두 번째로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만났을 당시만 하더라고 양측은 '새로운 대안'에 관한 '만족한 결과'를 이룩했다고 발표하며 긍정적 메시지를 발신했다. 그리고 미국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도 석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방북 결과를 보고받은 후 북미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를 발표했다.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6일. 북한은 이날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데 이어 같은 날 오전에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담화를 통해 "미국에서 망발들이 마구 튀어나오고 있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이 담화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선 핵포기 후 보상' 발언 등을 문제삼으며 "대국들에 나라를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라고 규탄했다. 나아가 볼턴 보좌관에 관해 '거부감'을 숨기지 않으며 "미국은 우리의 아량과 대범한 (비핵화 관련) 조치들을 나약성의 표현으로 오판하며 저들의 제재압박공세의 결과로 포장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의 승리적 결속을 선포하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결정했던 북한 입장에서는 내부적으로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참모들을 중심으로 북한의 비핵화 약속이 제재와 압박의 성과라는 식의 주장이 전개되기 시작했고, 북한 입장에서는 이를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멈추지 않았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지난 21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하지 않으면 김정은 정권은 리비아처럼 끝날 거라고 호언했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이에 북한도 대응 수위를 끌어올렸다. 북한은 24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 명의의 담화에서 "비극적 말로를 걸은 리비아와 비교하는 것을 보면 미국 고위정객들이 우리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들의 말을 되받아넘긴다면 우리도 미국이 지금까지 체험해보지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맛보게 할 수 있다"고 응수했다. 이 담화는 나아가 "미국이 우리와 마주앉지 않겠다면 구태여 붙잡지 않을 것"이라며 배수진을 쳤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최 부상의 담화가 발표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지금으로선 오랫동안 계획된 이번 만남을 갖는 게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음에도 정상회담을 추진해왔으나, 북한이 주도권을 잡고 가려고 하는 상황에서 이번에 '비핵화'에 합의하더라고 향후 이행 과정에서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은 북한이 정상회담 직전까지도 '선 비핵화 후 보상', '일괄타결',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등을 거부하는 상황을 결국 못 받아들인 것"이라며 "이미 만든 '과거 핵' 부분에서 합의점을 못 찾았기 때문에 만남이 무산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북한은 예전과 같이 판을 깨지 않는 범위에서 미국을 압박해 상황을 유리하게 전개하려는, 일종의 벼랑끝 전술을 폈다"며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의 미국과 달리 대화의 문을 닫아버린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미국은 다시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 전술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프레임에 따라 북한의 비핵화를 진행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압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지금 상황에서 최대의 압박을 가한다면 그 대상에 중국도 포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북한이 미국의 압박 정책에 반응할지는 미지수다. 북한 입장에서는 내부적으로 권위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비핵화'를 추진해야 하지만, 미국 측에서 제시하는 '선 비핵화 후 보상' 방식은 앞서 선전했던 '핵-경제 병진노선의 승리적 결속'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수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북미간 신경전이 다시 복잡한 방정식 문제로 접어든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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