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버닝' 이창동 감독 "칸 수상 불발,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

등록 2018.05.27 13:10:55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버닝' 이창동 감독 "칸 수상 불발,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이 영화는 이상하게도 개봉 전부터 칸에서 상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전부인 것처럼 돼버렸다."

영화 '버닝'을 연출한 이창동(64) 감독은 19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제71회 칸국제영화제' 본상 수상 불발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 영화 중 유일하게 올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버닝'은 전 세계 평단·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됐다. 앞서 '밀양'(2007)으로 전도연(45)에게 '제60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주고, '시'(2010)로 '제63회 칸 영화제' 각본상을 거머쥔 거장에게 쏟아진 당연한 기대였다.

하지만, 본상 수상에는 결국 실패했다. 번외상인 벌칸상과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등을 수확해 아쉬움을 달랬다.

이 감독은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칸에서 반응이 좋았다"며 "국내 관객 평도 들었는데 예상외로 온도 차가 컸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반응이 극명하게 나뉜 이유를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내 숙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기대가 너무 높아 실망감도 컸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감독으로서 같이 한 사람들에게 미안했다"며 "한국 영화가 상을 받으면 자극이 되고 활력도 주는 계기가 됐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버닝' 이창동 감독 "칸 수상 불발,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

'버닝'은 이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 '종수'(유아인)가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 '혜미'(전종서)를 만나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감독은 "청년의 눈에 비친 세상의 미스터리를 다뤘지만, 청년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세상이 미스터리 같다. 내게도 그렇고 청년들 눈에도 그렇게 보일 것 같다. 세상은 편리해 보이고 심지어 예뻐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 그 문제가 뭔지 모르는 미스터리 같은 것도 있다. 영화는 이것들과 연결돼 있다."

이 감독의 말은 현시대에 관한 통찰로 이어졌다. "내가 살아온 세대는 뭔가 세상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든, 계급의 문제이든 사회의 모순이 있으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없어졌다. 문제가 뭔지 알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깔끔해지고 세련돼 가고, 그 안에서 사람은 왜소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것이 일종의 미스터리다."
'버닝' 이창동 감독 "칸 수상 불발,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

이 감독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일하다 1983년 소설 '전리'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며 등단했다. 1993년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감독 박광수) 시나리오를 쓰고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데뷔작 '초록 물고기'(1997)를 비롯해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등 수작을 내놓았다. 2003년2월부터 2004년 6월까지 참여정부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언제 '외도'를 했냐는 듯 다시 메가폰을 들고 '밀양' '시' 등을 선보이며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에 냉철한 시각을 투영하는 연출관을 줄기차게 이어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이고 비관적인 시선으로 젊은 세대의 분노와 좌절을 그렸다.

"늘 질문하기 위해 영화를 해왔다"는 이 감독은 "질문 자체를 안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질문은 여전히 누군가의 가슴에 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다만 "나를 '메시지를 전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영화로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메시지나 답을 찾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전작들도 '버닝'과 비슷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변화를 주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 관객이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으나 이번 영화를 있는 그대로 즐겨줬으면 한다"는 마음이다.

이 감독의 차기작을 만나기까지 다시 오랜 기다림이 필요할 듯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이 있지만, 아직 '버닝'으로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영화를 해야겠다는 의욕을 되살리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