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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국정에 최대 협조"…양승태 사법부 실제 어땠나

등록 2018.05.27 16: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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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대외비로 작성된 '현안 관련 말씀 자료'

과거사·경제·노동·교육 등 5개 분야 판결 16건 언급

"사법부는 대통령 국정운영 뒷받침에 최대한 노력"

"왜곡된 과거사나 경시된 국가관 사건들 바로 정립"

"대통령 추진 중인 4대 부문 개혁 강력 지원해왔음"

실제 박근혜 정권 코드 맞는 판결과 처분들 이어져

삼권분립 훼손 파문 확산…김명수 대법원장 선택은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양승태 대법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친 후 직원들의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17.09.22.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양승태 대법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친 후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17.09.2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박은비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대법원은 박근혜 정권 입맛에 맞는 판결을 다수 유도하고,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게 뭔지 치밀하게 분석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지난 25일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정권 입맛에 맞춘 것으로 의심되는 총 5개 분야 판결들이 언급된다. 지난 2015년 7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 대외비로 작성된 '현안 관련 말씀 자료' 내용이다.

 이 자료에는 과거사 정립 5건, 자유민주주의 수호 2건, 국가경제 발전 3건, 노동개혁 4건, 교육개혁 2건 등 총 16건이 박근혜 정권 국정 기조에 맞게 선고됐다고 자평하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주요 현안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사건들이다.

 이 자료는 '과거 왜곡의 광정'이라는 제목 아래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음"이라며 "(가) 과거 정권의 ‘적폐 해소’ ⇨무엇보다 먼저 왜곡된 과거사나 경시된 국가관과 관련된 사건의 방향을 바로 정립하였음. 아래 과거사 정립, 자유민주주의 수호 관련 판결이 이에 해당"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과거사 정립' 부분에 대해서는 "진정한 화해와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했다고 했으며,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에 단호히 대처 ⇨ 혼돈·경시되어온 국가관의 바른 정립 노력"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나) 미래지향적인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국가경제의 발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대통령이 추진 중인 노동·교육 등 4대 부문 개혁을 강력하게 지원해왔음. 아래 국가경제발전 최우선 고려, 4대 부문 개혁 중 노동, 교육 관련 판결이 이에 해당"이라고 적시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지난 2015년 7월 작성된 '현안 관련 말씀 자료'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지난 2015년 7월 작성한 '현안 관련 말씀 자료'

실제 판결은 어땠을까.

 먼저 과거사 사건은 최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사안에 대해 당시 법원행정처는 "부당하거나 지나친 국가배상을 제한하고 그 요건을 정립했다"고 자부했다.

 실제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13년 5월 국가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소송 소멸시효를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 뒤 3년으로 제한했다. 지난 2015년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도 "과거사 피해자라도 생활지원금 등 보상금을 받았다면 국가로부터 재차 손해를 배상받을 수 없다"는 취지로 선고돼 정부에 유리한 결론이 나왔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4월 "과거사 피해자가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없다"며 피해자의 책임을 강화하기도 했다. 과거사 사건의 결론을 정해놓고 판결을 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긴급조치 사건도 마찬가지다. 법원행정처는 2014년 10월 대법원 판결에 대해 "대통령긴급조치가 내려진 당시 상황과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고려했다"며 "긴급조치가 당시로서는 유효한 법규였던 만큼 이를 따른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곧바로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2015년 3월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지만, 긴급조치 발령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국가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국가 손을 들어줬다. 검찰이 문재인 정부 들어 뒤늦게 재심을 청구한 긴급조치 사건들에 대해서는 법원이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비교되는 부분이다.

 대법원이 청와대에 알리고 싶어했던 사건 중에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건도 있다. 이 전 의원은 내란선동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9년의 중형이 확정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전직 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는 중학생들과 학부모를 데리고 '빨치산 추모 전야제'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건은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이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체제 도전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고 부각시켰다.

 대법원은 친기업 기조를 내세운 박근혜 정권의 코드에 맞추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단순한 법리 검토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면밀히 고려했다"며 통상임금 소송을 사례로 들었다.

 지난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통상임금도 정기상여금에 포함된다고 보면서도 민법의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소급 적용을 제한시키는 방식으로 사측 부담을 줄여줬다. 그 결과 이후 제기된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신의성실 원칙'이 주된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피해 규모만 수조원대로 추산되는 '키코사건'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은 2013년 9월 키코 통화옵션계약이 불공정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리고 이 판결에 대해 "금융기관과 기업이 첨예하게 대립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양측이 승복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자평했다.

 대법원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자회사 법인설립등기 사건에 대해서는 "수서발 KTX 자회사 법인설립등기를 국가 경제적 관점에서 허가해 이를 둘러싼 철도노조 파업 등 분쟁, 갈등 상황을 종식시켰다"고 평가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대법원은 노동분야에서도 철저히 보수적인 판단을 내렸다. 지난 2006년 집단해고된 KTX 승무원들은 9년간 소송을 이어왔지만 결국 패소했다. 코레일에 직접 고용된 근로자가 아니라는 판단을 받은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른 충격으로 승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대법원은 악기 제조업체 콜텍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며, 쌍용차 정리해고 역시 사측이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규정했다.

 코레일 노조 파업도 사업장 특성상 업무 대체가 쉽지 않아 사측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고 파업을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사측 손을 들어줬다. 노조 파업을 주도한 노조원들은 업무방해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교육 분야 판결도 얼어 붙었다. 대법원은 전교조 시국사건에 대해 "공무원인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제한될 수 밖에 없고, 집단적으로 행한 의사표현행위가 정치적 중립을 침해할 정도에 이르렀을 경우 국가공무원법에서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또 지난 2015년 3월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처분을 정지시킨 항고심 판단이 유지될 경우 대법원의 각종 중점 추진 사업에 대한 견제·방해가 예상된다고 검토했다.

 그래서인지 대법원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보는 게 맞다는 최종 결론을 도출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이 사건에 대해 "전교조를 합법노조로 인정하지 않은 고용노동부의 통보처분과 그 처분의 정당성을 인정한 법원 1심 판결의 취지를 존중해 통보처분의 효력을 인정하기로 했다"며 "항소심이 효력을 정지시킨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처분의 효력을 (대법원 결정으로) 되살려 전교조를 법외노조 상태로 되돌려놓았다"라고 문건에 기록했다.

 이 사건에 대해 별도의 대외비 문서로 작성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내용에 따르면 대법원은 재항고 인용시 "(청와대와 대법원) 양측에 윈윈의 결과가 될 것"이라며 "대법원에 의한 하급심 판결 교정 기능이 부각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아울러 예측 시나리오대로 진행될 경우 대법원은 청와대에 ▲상고법원 입법추진에 적극 협조 ▲내년초 대법관 임명 제청과정에 적극 협조 ▲재외공관 법관 파견에 적극 협조 ▲한정위헌결정 관련 헌재와 의견 대립시 적극 협조 ▲법관 정원 증원 추진에 적극 협조 등을 요청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 중 일부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 중 일부

특별조사단이 발표한 조사보고서에는 2015년 11월 19일 당시 법원행정처 임종헌 차장이 직접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도 담겨 있다. 이 문건 역시 "우선, 그 동안 사법부가 VIP(박근혜 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라고 전제하고 있다.
 
 이어 ①합리적 범위 내에서의 과거사 정립(국가배상 제한 등), ②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사회적 안정을 고려한 판결(이석기·원세훈·김기종 사건 등), ③국가경제발전을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판결(통상임금·국공립대학 기성회비 반환·키코 사건 등), ④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KTX 승무원·정리해고·철도노조 파업 사건 등), ⑤교육 개혁에 초석이 될 수 있는 판결(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을 협조 사례로 열거했다.

 '협상추진 전략’ 문건은 "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VIP와 BH에 힘을 보태 왔다"라며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삼권분립의 심각한 훼손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박근혜 정권의 국정 기조에 맞춰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가 적극 협조해 온 구체적 정황들이 불거진 만큼 법조계 안팎에서 파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일선 판사들도 이미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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