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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은 "타고난 것 없어요···'최고 여성무용상' 덕분 용기 얻었죠"

등록 2018.06.07 00: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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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용수 4번째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

파리오페라발레 제1무용수

박세은 "타고난 것 없어요···'최고 여성무용상' 덕분 용기 얻었죠"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세계 명문 파리 오페라 발레(BOP)의 제1무용수인 발레리나 박세은(29)이 세계적인 무용수로 인정받았다.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에서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차지했다.

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한 이후 프랑스 파리로 바로 건너와 전화를 받은 박세은은 피곤할 법도 할 텐데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상을 받았을 당시에는 '진짜 진짜' 어리둥절 했는데 이제야 실감이 나요. (파리오페라발레) 동료들을 만났는데 축하를 많이 해주고···. '아 진짜 받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호호."

'춤의 영예'라는 뜻의 브누아 드 라 당스는 발레 개혁자 장 조르주 노베르(1727~1810)를 기리기 위한 상이다. 국제무용협회 러시아 본부가 1991년 제정했다. 세계 단체들이 공연한 작품이 심사대상이다. 실비 길렘, 줄리 켄트, 알리나 코조카루, 이렉 무하메도프 등 세계적인 발레 스타들이 이 상을 받았다.

박세은은 한국인 무용수 중에서는 네 번째로 이 영예를 안았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1999), 발레리나 김주원(2006)에 이어 여성무용수로는 세 번째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인 김기민이 2016년 한국 발레리노는 처음으로 이 상을 받았다.

박세은 "타고난 것 없어요···'최고 여성무용상' 덕분 용기 얻었죠"

올해 유력한 여성무용수 수상 후보는 볼쇼이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세계적인 발레 스타인 스베틀라나 자하로바(39)였다. 이미 그녀는 이 상을 두 번 받았다. 그러나 신작에 대한 기량으로 평가를 하는 상인만큼, 탁월한 기량을 자랑한 자하로바의 세 번째 수상이 점쳐졌다. 박세은 역시 "자하로바가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영예는 박세은의 몫이었다. 러시아 출신의 전설적인 안무가 게오르게 발란친(1904~1983)의 안무작 '주얼(Jewels)'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3번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3막 '다이아몬드'에서 주역을 맡아 발군의 기량과 감성을 증명했다. 

"제가 사실 차이콥스키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다이아몬드'에 출연을 결정하면서 차이콥스키 음악을 내내 들었어요. 음악만 들어도 많이 행복했어요. 그러다 보니 작품에 푹 빠져 있었어요"라고 웃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발레를 시작한 박세은은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영재 입학했다. 2006년 미국 잭슨콩쿠르 금상 없는 은상, 2007년 스위스 로잔콩쿠르 1위, 2009년 불가리아 바르나콩쿠르 금상 등을 수상, 세계 4대 발레콩쿠르(바르나·잭슨·모스크바·로잔) 중 세 봉우리를 정복했다.

박세은 "타고난 것 없어요···'최고 여성무용상' 덕분 용기 얻었죠"

2007년 로잔콩쿠르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특전으로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에 입단, 스튜디오컴퍼니(ABTⅡ)에서 활동했다. 귀국 후에는 국립발레단 무대를 경험하기도 했다.

박세은은 2011년 세계 정상급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 준단원으로 입단했다. 1671년 설립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 발레단으로 통한다. 2012년 6월 정단원이 된 이후 초고속 승급을 하며 실력을 인정 받았다. 6개월여 만에 코리페로 승급하고 다시 10개월만에 쉬제로 승급하는 등 괄목한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2014년 말 발레 '라 수르스(La Source)'에서 주인공 '나일라'를 연기하며 주역으로 나섰다. 2017년 1월부터 제1무용수로 통하는 프르미에르 당쇠즈로 활약하고 있다.

앳된 얼굴에 미모를 갖춘 그녀는 평소 밝게 웃고 다정다감한 성격이지만 발레에 대한 열정과 집념은 누구보다 강하다. 빡세게 연습하는 악바리 근성과 이름 덕분에 '빡세'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박세은 "타고난 것 없어요···'최고 여성무용상' 덕분 용기 얻었죠"

끊임없는 연습과 단련에 지칠 법도 한데 박세은은 정작 "오히려 추는 춤을 추지 않고 있으면 더 힘들어요"라고 웃었다. "육체적으로는 지치지 않아요. 작품에 계속 출연하는 것이 감사할 뿐이죠."

타지에서는 발레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인데, 이런 악조건도 이겨내왔다. 특히 자국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곳에서 제1무용수까지 올랐다. 승급 오디션에서 탈락하는 등의 시련을 겪은 뒤 얻어낸 영광이었다. 박세은은 당시 승급 소식을 듣자마자 펑펑 울었다는 말로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2015년 연습 도중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현재는 완벽히 나았지만 올해 초에는 갈비뼈 연골이 부러져 고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는 박세은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에게도 점차 롤모델이 돼 가고 있다.

국립발레단 단원 이은서 등 이미 수많은 후배 발레리나들이 롤모델로 꼽았다. 안정된 기술은 물론 무대 위에서 표현력이 넘치기 때문이다. 예쁘장한 외모로 스타성까지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작년 파리오페라발레에 입단한 한국인 후배 윤서후를 살뜰하게 챙기는 등 인간적인 매력도 갖췄다.

박세은 "타고난 것 없어요···'최고 여성무용상' 덕분 용기 얻었죠"

이로 인해 파리오페라발레 단원들의 최고봉으로 통하는 에투알(수석무용수 중 최고 스타)이 될 지 주변에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프르미에르 당쇠즈까지는 승급 시험을 거치지만 에투알은 파리오페라발레 예술감독, 이사회 등의 논의를 통해 정한다.

그러나 박세은 정작 본인은 초연한 채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있다. 주변의 기대와 관심에 대해 "부담과 책임감이 없지 않죠"라고 털어놓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스스로 얼마나 만족하느냐에 대한 부담이 더 크다"고 했다. 

통화 초반에 살짝 들 떠 있던 목소리의 박세은은 내일부터 연습에 바로 돌입해야 한다며 이내 차분해졌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이에요. 제가 제게 점수를 많이 안 주는 편이죠. 스스로를 엄청 괴롭히는 것이에요. 제가 타고난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노력할 수밖에 없죠. 근데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으로 용기를 얻게 됐어요. 한국에서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니, 한국 발레를 알리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도 느끼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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