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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반라 시위' 불꽃페미액션 "세상은 결국 바뀌리라 믿어"

등록 2018.06.07 18: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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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내게 물었다. '너 그럼 남자의 적이야?'라고"

"성적 조롱엔 상처 안 받아…'여자 망신이다' 더 아파"

"남성 페미니스트들 가입 신청 연락 굉장히 많이 와"

"그렇게 많은데 왜 단체 하나 못 만들까 의아하기도"

"남성 사회의 허구…이제는 전처럼 돌아갈 수 없어"

"여성 인권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다면 의미"

"무섭고 힘들다 해도 세상은 결국 바뀔 것을 믿는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NGO돋움센터에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 선물(왼쪽부터), 해나, 서윤, 검은씨가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8.06.07.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NGO돋움센터에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 선물(왼쪽부터), 해나, 서윤, 검은씨가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지은 기자 = "반응이요? 그 시위 이후 온라인에 '불꽃페미액션 사형'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더라고요. 정말 이렇게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었죠"
 
 지난 5일 서울 동작구의 한 시민단체 사무실에서 만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의 활동가 4명(해나, 검은, 선물, 서윤)은 무거운 이슈를 얘기하면서도 시종 밝은 태도를 보였다. 이들은 최근 '반라 퍼포먼스'로 대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단체의 구성이나 활동과 관련해 많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 단체의 시작은 '불꽃여자농구단'이라는 이름의 스포츠 모임이었다. 여성들이 움직이는 범위를 넓혀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 모임이 '운동(sports)'에서 '운동(movement)'으로 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강남역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2016년 5월21일 현재의 '불꽃페미액션'이 공식적으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200여명이 활동하는 여성 단체다.

 국내 전통적인 여성단체들은 물론 신진 페미니즘 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와중에서도 이들이 최근 유독 주목을 받은 이유는 분명하다. 어떤 설득적 이론보다도 '행동주의', 즉 '액션'을 지향하는 점이 두드러진다. 특히 국내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집단적인 '가슴 노출'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남자들의 맨 가슴 사진은 문제가 안 되는데 왜 여자들의 것은 음란물로 삭제가 되느냐'는 합리적 의심에서 출발한 퍼포먼스는 언론과 대중의 대대적인 관심을 받았다.

 "지지도 받고 지나치다는 비난도 받았죠. 하지만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포털 사이트의 연관 검색어예요. '불꽃페미액션 사진 원본'이 먼저 뜨더라구요. 결국 페미니스트들한테서까지 성적인 욕구를 충족하려는 걸 보면서, 우리가 과연 같은 세상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우리는 누구도 해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이 위협감을 느끼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한 그들은 자신들의 강점을 '빠른 활동력'으로 꼽으며 인터뷰 내내 자신감을 보였다. 인터뷰 도중 네 사람 외에 다른 활동가들도 중간에 참여해 대답을 하기도 했다.

 - 퍼포먼스 이후 빠른 속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직후에 어떤 느낌이 들었나

 선물 : 경찰이 평소에 대응이 이렇게나 빠른 조직이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웃음). 기자회견 장소에 갔는데 이미 경찰이 너무 많이 와 있더라. 평소에 집회를 할 때에는 사복 경찰 한두 명 정도 간신히 왔었는데. 여경들도 많이 오고. 이게 그렇게 큰 문제라니 싶은 생각이 들었다.

 - 기사와 사진이 나가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주위 반응이 어땠나.

 선물 : 댓글들이 많이 달렸다. 사진 잘라다가 얼굴 평가도 하고, 뱃살이 어떻네 가슴이 어떻네. 하지만 직접적으로 오는 타격은 별로 없었다. (다니던) 직장에서도 그걸 보고 "너 맞냐"고 묻는데 아니라고 하기가 싫었다. 내가 왜 나를 숨겨야 하지? 해서 맞다고 했더니 질문이 돌아왔다. "너 그럼 남자의 적이야?"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NGO돋움센터에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 해나(왼쪽부터), 검은, 선물, 서윤 씨가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6.07.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NGO돋움센터에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 해나(왼쪽부터), 검은, 선물, 서윤 씨가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 실제로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남성을 혐오하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어떻게 대답하고 싶은지.

 서윤 : 결국 '남성' 자체가 싫다거나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다. 활동을 할수록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하고는 말 섞기가 힘들어진다. 이 이슈에 대해 무감각하고 함부로 말을 뱉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게 어려워지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페미니즘이라는 이슈를 공유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 뿐이다.

 - 악플들 중에 유난히 마음이 아픈 내용이 있었다면 뭐였을까.

 선물 : 욕이랍시고 "가슴을 보고도 고추가 서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이런 내용이 달리면 "야호, 잘됐다!" 밖에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성적인 대상으로 끝까지 만들려는 내용들에는 타격을 받지 않는다.

 한솔 : 나쁜 말, 조롱하는 말은 오히려 큰 상처가 아니다. 그냥 이 사람들은 이런 말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구나 싶다. 하지만 스스로 여자라고 밝히면서 "불쾌하다", "여자 망신이다"는 말들이 더 아프기는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비난을 하고 싶지는 않고, 그런 분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저희의 생각에 동의해주실 거라고 생각한다.

 - 이번 퍼포먼스를 통해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이 있었다면.

 서윤 : 승리한 경험을 쌓은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 우리의 얼굴이, 우리의 이름이 나가더라도 우리는 당당하다.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 앞에 강한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검은 : 부모님이 다 알고 계시는데 잘했다고 칭찬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어제 씻으면서, 이번 사건으로 인해 누군가 나를 죽인다면? 이라고 생각을 해 봤다. 여러 말을 듣는 상황 속에서 무서움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으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 하지만 결국 그조차 그런 것을 기점으로 여성 인권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다면 의미 있다는 결론으로 도달한다. 무섭고 힘들다 해도 세상은 결국 바뀔 것을 믿는다.

 - 남자 중에는 페미니스트가 있다고 생각하나.

 서윤 : 우리는 남성 회원을 받지는 않는다. 여성들이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정체화한 사람을 받는다는 규정이 있다. 남성 페미니스트는 '유니콘'으로 불릴 만큼 수가 적다. 기본적으로 남성들이 누리고 있는 게 있는데 그 시각을 변화시킨다는 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검은 : 단체가 알려진 후 남성 페미니스트들 연락이 굉장히 많이 왔다. 가입하고 싶다는 신청이 오늘도 많이 왔고.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많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많은 사람들이 남성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서 왜 단체 하나 만들지 못하는지는 의아하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NGO돋움센터에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 검은(왼쪽부터), 선물, 해나, 서윤 씨가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6.07.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NGO돋움센터에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 검은(왼쪽부터), 선물, 해나, 서윤 씨가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 최근에는 페미니즘 운동이 발화하며 '탈코르셋'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여성에게 주어진 의무를 벗어야 한다는 이 개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서윤 : 페미니즘이라는 게 남성과 똑같아진다거나 권력을 닮아가는 게 아니라,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이미지라도 받아들이자는 생각이라고 본다. 탈코르셋은 충분히 얘기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걸 빌미로 "너는 여성 인권을 후퇴시키고 있다"는 또 다른 프레임을 만들어서 여성을 가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한솔 : 하지만 그런 건 있는 것 같다. 화장을 하냐 안 하느냐가 선택이 되려면, 이미 굉장히 많은 사람이 그 방식을 선택하는 사회일 때 가능하다. 흔히들 말하는 '여자가 하는 일'이 아닌 것을 선택할 수 있을 때 가능한 문제다. 사회적 시선에서 그런 부분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구분하고 건강하게 토론할 수 있길 바란다.

 검은 : 전업 주부하는 여성에게 여성 인권을 후퇴시키고 있다고 말할 시간에 그 에너지를 실제 가부장제를 지속시키려 하는 사람들에게 더 정확하게 요구하는 데 쓰는 게 낫지 않을까.

 - 페미니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변화한 개인의 일상이 있다면.

 검은 : 주변에 남성이 사라졌다. 굳은 살이 점점 사라진다. 이전에는 여성으로 자기혐오하는 방식으로 남성 사회에서 생존하며 굳은 살을 키워왔다면, 이제는 안전한 공간에서 대화가 되는, 인권 감수성이 높은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방어 기제가 연해지는 느낌이다. 

 서윤 : 남성에 대한 태도가 변했다. 사회가 저한테 거짓말을 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성공하고 사랑 받을 수 있다"는 허구와 교육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다시 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 애교 부리면 넘어가고 참아내고 그런 것들을 견디고 싶지 않다.

 - 앞으로의 계획은.

 서윤 : 이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끝나고 나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막차 타고 집에 들어가서 씻고 잘 거라고. 술 속에 약물이 들어가 있어도 내 탓이 아니고, 막차 타고 가면서 몰카(몰래 카메라)를 찍히더라도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렇게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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