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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세요, 김태길수필문학상 수상작 '옷이 날개다'

등록 2018.06.15 1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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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제5회 김태길 수필문학상 시상식이 열린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수상작 '옷이 날개다'의 이동렬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 명예교수가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태길 수필문학상'은 계간수필과 심경문화재단이 공동 주관하고 뉴시스가 후원한다. 2018.06.15.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제5회 김태길 수필문학상 시상식이 열린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수상작 '옷이 날개다'의 이동렬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 명예교수가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태길 수필문학상'은 계간수필과 심경문화재단이 공동 주관하고 뉴시스가 후원한다. 2018.06.1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계간수필과 심경문화재단이 주관하고 뉴시스가 후원하는 '김태길 수필문학상' 수상작으로 이동렬(78)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 명예교수의 '옷이 날개다'가 선정됐다.

수상작선정위원회(이명현·엄정식·구양근·박영자·염정임·고봉진)는 옷을 허술하게 입은 탓에 사람들에게 홀대받은 작가가 견고한 자긍심으로 해학과 반전의 미학을 보여준 점을 높게 평가했다.

한혜경 심사위원(명지전문대 문예창착과 교수)은 "날개가 허술해 무시당해도 개의치 않는 작가의 모습은 그 내면이 단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겉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이의 호감을 얻기 위해 멋진 날개를 달 필요가 없는 것"이라며 "그렇다고 날개를 중시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견고한 자긍심으로 인해 모든 걸 웃음으로 포용하는 여유가 해학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음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경북 안동 출신인 이 교수는 경북대 사대부고, 서울대 교육학과를 나왔다. 26세에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으며 웨스턴 온타리오대학교 교육심리학과 교수,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를 지냈다.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꽃다발 한 아름을' '꽃 피면 달 생각하고'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그리움 산국화 되어' 등의 수필집을 냈다. 1998년 한국현대수필문학상, 2010년 민초문학상을 수상했다.
 
◇옷이 날개다

"사람은 옷을 잘 입고 다녀야 하느니라." "옷이 날개다." 이런 말은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경고다. 이 경고를 무시하고 날개를 허술하게 달고 나갔다가 홀대를 받은 이야기 몇 토막.

#제 1화
 
 한국 E여대에 나가 있을 때 은퇴가 가까워 오는 어느 날이었다. 나 혼자서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인사동엘 나갔다. 인사동은 작은 동네지만 아직도 서울 옛 모습이 다른 동네보다는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100개가 넘는 화랑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인사동 골목. 그 날 미술 전시회가 열리는 화랑만 해도 10개는 넘었지 싶다.
 
 나는 목적하는 곳도 없이 이 화랑 저 화랑을 돌아다녔다. 어느 서예 전시회가 열리는 큰 화랑에 들어갔다. 그 전시회에 작품을 내는 회원들이 부유한 사람들인지 전시장 치장이 여간 사치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는 지나치게 화려하게 꾸며 놓은 전시회에 오면 '이런 사람들은 예술 전시회를 하나의 패션쇼(fashion show)로 생각하는구나'는 생각이 들어 불쾌해진다.
 
 그런데 어떤 작가가 남명 조식의 시구를 써 논 것을 보니 남명의 '명'자를 잘못 쓴 것이 눈에 띄었다. 어두울 명(冥)자를 써야할 것을 바다 명(溟)자로 써 논 것이다. 그 전시회에 출품 작가인 듯 가슴에 큰 꽃을 달고 있는 사람에게 남명의 명자가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해 주었다. 설명은 간단했다. 남명의 명은 바다 명(溟)자가 아니고 어두울 명(冥)자라고. 내 설명을 들은 작가는 내 아래위를 유심코 훑어보더니 '네까짓 게 뭣을 안다고'하는 무시하는 표정으로 "틀린 데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한마디로 나를 얕잡아 보는 것이었다. 내가 남명의 15대손 J교수가 준 <남명집>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그렇게 적혀 있다 해도 막무가내 "틀린 데가 없다"는 고집이었다. 이런 결정적인 훜(hook) 한 방 메겼는데도 끄떡 않는 상대를 내가 어떻게 당하겠는가. 돌아서서 혼자말로 욕을 중얼거리며 화랑을 나오고 말았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제5회 김태길 수필문학상 시상식이 열린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수상작 '옷이 날개다'의 이동렬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 명예교수가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태길 수필문학상'은 계간수필과 심경문화재단이 공동 주관하고 뉴시스가 후원한다. 2018.06.15.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제5회 김태길 수필문학상 시상식이 열린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수상작 '옷이 날개다'의 이동렬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 명예교수가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태길 수필문학상'은 계간수필과 심경문화재단이 공동 주관하고 뉴시스가 후원한다. 2018.06.15. [email protected]

  # 제2화
 
경북 안동시에 있는 민속 박물관에 들렀을 때다. 안동은 내 고향, 구태여 뽑스리고 갈 이유가 어디 있나, 운동화에다 청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녔다. 박물관 어느 기둥에 천자문 글귀를 적어놨는데 보니 "忠則盡命이요 孝當竭力이라(충즉진명/효당갈력: 충성은 곧 목숨을 다하는 것이요 효도는 마땅히 힘을 다하는 것이다.)"고 적힌 주련이 눈에 띄었다.
 
 내가 알기로는 천자문에 나오는 순서는 효당갈력이요 충즉진명이지, 충즉진명이요 효당갈력은 아니다. 있어야 할 내용은 다 있는데 구태여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아서 무엇하랴만, 천자문에 나오는 순서로 말하면 효당갈력이 먼저라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직원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시큰둥한 표정으로 "네, 네."하면서 '어서 빨리 네 갈 길이나 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마침 가지고 다니던 내 수필집 한 권이 있기에 그 청년을 주고 자리를 떴다.
 
 캐나다에 돌아온 지 며칠 안 되어 내게 전자우편으로 편지 한 장이 왔다. 민속 박물관의 그 젊은이가 보낸 것이다. "…대선배님을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사실 저도 수필 쓰는 사람으로 경북문단에…" 자기가 수필 쓰는 사람이니 내가 대선배가 된다는 말이다. 그냥 보통 선배가 아닌 대선배라. 허허. 아무튼 그곳에서 일어난 일화도 이 대선배님께서 허술한 날개를 달고 가셨던 것이 탈이었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

 #제3화
 
허술한 차림으로 있다가 내 아버님, 어머님한테 홀대를 당한 얘기를 해야겠다. 내가 학위를 받고 얻은 첫 직장은 벤쿠버에서 600㎞쯤 떨어진 넬슨이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4년제 대학이었다. 교수로 발령이 나자마자 나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캐나다에 방문 초청을 했다. 김포공항에서 작별을 한 후 5년 만에 찾아온 만남이었다. 그때 공항에 마중을 나온 사람은 나 이외에 우리와 가깝게 지내던 C교수 밖에 없었다. 내가 공부하던 대학에 수학교수로 있던 C씨는 당시의 유행 따라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장발족으로 몸치장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분이었다. 그런데 C교수를 인사시켰더니 아버님께서 본 척 만 척, 내가 민망할 정도로 홀대하는 것이 아닌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넬슨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텔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밤중에 잠이 깼는데 내외분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그 옛날 어릴 적 내 생가에서 밤이면 자주 있었던 그 그리운 풍경! 자세한 말꼬리는 잊어 버렸으나 대략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아버지: 동렬이 자가 직장도 없는 모양일세. 해가지고 다니는 꼴 좀 보소. 그리고 아까 공항에서 수학교수라고 소개하던 그 녀석. 그게 무슨 교수야, 지게꾼이지. 아마 우리가 온다니까 이거 큰일 났다 싶어 자기 친구한테 네가 대학 교수나 해 달라고 부탁한 모양인데….
 
 어머니: 동렬이 자동차 꼴 좀 보소. 그게 어찌 직장 가진 사람 차인가요. 그 수학교수인지 뭔지 하는 사람은 이발할 돈도 없는 가난뱅이던데요 뭘….

 나는 잠간 사이에 직업도 없는 실업자가 되어 버렸고, 죄 없는 C씨는 이발할 돈도 없는 극빈자가 되고 말았다. 옷이 날개란 말은 외화내빈이란 말과 통한다. 겉으론 번듯하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궁색하다는 말이다. 그럼 나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은 무엇일까? 외빈내빈(外貧內貧)이라면 나를 너무 깍아 내리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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