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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면 죽음뿐” 제주 예멘 난민의 호소

등록 2018.06.19 09:37:27수정 2018.06.19 10: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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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예멘 난민 쉼터’에 가보니…한글 교실 ‘인기’

“집 나설 때마다 죽음 각오” 공포에서 도망친 이들

자원봉사자 “‘인권’ 아닌 ‘사람’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18일 오후 제주시 모처에 위치한 예멘 난민 쉼터에서 예멘인들이 둘러앉아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 2018.06.18. (사진=제주 예멘 난민 쉼터 제공)  photo@newsis.com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18일 오후 제주시 모처에 위치한 예멘 난민 쉼터에서 예멘인들이 둘러앉아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 2018.06.18. (사진=‘제주 예멘 난민 쉼터(가칭)’ 제공) [email protected]


【제주=뉴시스】조수진 배상철 기자 = “온리 워(Only war).”

지난 18일 오후 제주시 모처에 위치한 20평 남짓한 지하공간에서 만난 예멘 난민 J모(27)씨. 그에게 예멘에서의 삶을 묻자 “전쟁, 전쟁, 그리고 전쟁뿐(war, war and only the war)”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곳은 한 지역 음악가가 작업실로 쓰던 공간이다. 그는 우연히 SNS를 통해 제주 예멘 난민의 어려움을 알게 됐고 이곳을 난민 쉼터로 기꺼이 내줬다. 예멘 난민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와 지낼 수 있으며 이들을 도우려는 시민들이 통역부터 요리, 한글 교습, 식자재 지원 등 쉼터 관리를 맡고 있다. 

쉼터 한편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바나나, 식빵, 과자, 휴지 등이 높게 쌓여있었다. 예멘 난민 쉼터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놔두고 간 것이었다.

이날은 예멘인 열댓 명이 머무르고 있었다. 벽 쪽에 이부자리를 깔고 잠을 청하는 이도 있었고 양고기 수프와 빵으로 식사를 하는 이도 있었다.

쉼터에서 지내는 예멘인들을 곁에서 도와주고 있는 장세정(가명·여)씨는 “오늘 여기 있는 친구들은 아까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취업설명회에 갔다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돌아온 사람들”이라며 “평소엔 더 활기찬 분위기인데 다들 아쉽고 실망스러운 마음에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18일 오후 제주시 모처에 위치한 예멘 난민 쉼터에서 예멘인들이 둘러앉아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 2018.06.18. (사진=제주 예멘 난민 쉼터 제공)  photo@newsis.com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18일 오후 제주시 모처에 위치한 예멘 난민 쉼터에서 예멘인들이 둘러앉아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 2018.06.18. (사진=‘제주 예멘 난민 쉼터(가칭)’ 제공) [email protected]


쉼터 중앙에서는 한글 공부가 한창 중이었다. 강사로 보이는듯한 30대 한국 청년 두 명 주위로 일곱 명이 둘러앉아 알파벳을 한글 음운으로 써놓은 종이를 따라 읽고 있었다.

“집 밖에 나갈 수가 없었어요. 어쩌다가 나가려면 목숨 잃을 생각하고 나가야 했죠. 그러다 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가족들은 볼 수도 없었어요.”

J씨는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선물로 받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담담히 말했다. 그는 먼저 한국으로 들어온 형의 권유로 3년 전 제주도로 들어왔다. 그가 자라난 고향은 사방이 전쟁과 죽음이었다.

그의 고향엔 아직 부모님과 두 형제가 남아있다. 5년 넘게 보지 못한 가족들이 너무 그립지만 남은 평생 가족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는 “예멘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군에)끌려가서 총에 맞을 것”이라며 두려워했다. 그에게 예멘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꿈에서나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는 “만드는 것과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제주도에서 살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지만 요리를 할 수 있는 식당이나 물건을 만드는 공장, 버스나 택시회사에서 일할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고 바랐다.

이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인종과 종교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예멘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져있는 데다 언어 장벽이 높아 뱃일을 제외한 요식업 등 서비스업종으로는 취업이 힘들기 때문이다. 
 
【제주=뉴시스】배상철 기자 = 예멘 난민들이 18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취업설명회에 참여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2018.06.18.  bsc@newsis.com

【제주=뉴시스】배상철 기자 = 예멘 난민들이 18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취업설명회에 참여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2018.06.18. [email protected]



실제로 지난 14일과 18일 양일간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진행한 취업설명회에 참가한 예멘인 누적 800여명 중 절반도 안 되는 388명만이 일자리를 구했다. 그 중 선원 및 양식장 종사자가 대부분이며 요식업은 30명 이내에 그쳤다. 그나마 제주에서 수요가 있는 선원일은 내전 중인 모국에서 총상을 입거나 다쳐 몸이 불편한 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예멘인들이 낯선 한국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한글 강사로 나섰다는 김모(39)씨는 “지금까지 만나본 예멘 난민 중에 J씨는 그래도 나은 경우”라며 “전쟁 때문에 부모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 몸에 총상 자국이 있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라고 가슴 아파했다.

장세정씨는 “이곳에 쉼터가 있다는 것을 주민들이 알게 되면 쫓겨날 수도 있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지 피부 색깔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예멘인들은 위험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는데 직접 이들을 만나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씨는 “나는 거창하게 ‘인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람 대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죽음을 피해 필사적으로 이곳으로 도망쳐온 이들(예멘인)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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