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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페미니즘 사상 검증한 게임회사…노동청 "재발 방지하라"

등록 2018.06.23 10: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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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C게임즈 대표, 여직원 개인 SNS 내용 문제삼아 추궁

여직원 사과문…제3자가 '마녀사냥'이라며 노동청 진정

"조직문화 개선하고 2차 피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라"

업계 비슷한 피해 당한 이들 많지만 오히려 퇴사 몰려

"헌법 가치 침해해도 처벌 안되는 현실…법 보완해야"

[단독]페미니즘 사상 검증한 게임회사…노동청 "재발 방지하라"

【서울=뉴시스】김지은 기자 =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여성단체 계정을 구독하고 페미니즘 이슈를 공유했다는 이유로 여성 직원을 사상 검증한 사건에 대해 노동청이 '재발방지 권고' 조치를 내렸다.

 23일 당국과 게임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최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은 IMC게임즈 대표를 상대로 제기된 진정 사건에 대해 "법 위반 사항이 없어 사건을 종결한다"며 "향후 동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조직문화 개선에 힘쓸 것을 당부하고,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는 내용의 통지문을 발송했다.

 해당 사건은 IMC게임즈가 개발하고 넥슨이 서비스하는 게임 '트리 오브 세이비어'의 원화 작가 A씨의 트위터에서 시작됐다. A씨가 국내 대표적 시민단체 중 하나인 '여성민우회' 계정을 구독하고 페미니즘적 내용이 들어간 트위터를 리트윗한 것이 유저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남성 게임 유저들이 A씨의 트위터를 보고 항의하자, 지난 3월 IMC게임즈의 김학규 대표는 A씨와 징계성 면담을 진행하고 이를 홈페이지에 공개적으로 게시했다.

 김 대표가 올린 면담 내용은 "여성민우회 계정은 왜 팔로우했느냐", "과격한 내용이 들어간 글에 마음에 들어요를 찍은 이유는 무엇이냐" 등 개인적인 SNS 활동을 추궁하는 대화가 주를 이뤘다.

 이에 앞서 "적절하지 않은 글을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죄송하다"는 A씨 사과문도 올라왔다. 본인의 SNS 활동을 자기검열하고 반성한 것이다.

 이 사건이 트위터에서 논란이 되면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위배되는 시대착오적 사상 검증이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사원의 개인적인 SNS 내용을 회사 측에서 공식적으로 문제 삼는 행위는 자유 의사를 억압하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월권에 다름아니라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반사회적인 사상을 추구하는 사람은 동료로 함께 일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는 태도로 일관해 문제를 키웠다.
[단독]페미니즘 사상 검증한 게임회사…노동청 "재발 방지하라"

이후 이 사건을 온라인으로 접한 남성 B씨가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B씨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나는 제3자이지만, 그간 게임 업계에서 성차별이 심한 모습들을 봐왔고 트위터에 단지 좋아요를 눌렀다고 마녀사냥을 당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법적인 절차를 밟아 공적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말 제기된 진정에 대해 노동청은 최근 회사 측에 '권고 조치' 결과를 통보했다.

 징계로 보기는 힘든 수위지만 업계에서는 현행법상 예상했던 결과라고 평가했다. A씨가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설명이다.

 업계에서의 성차별 사례를 오래 접해온 IT산업노동조합 측은 최근 페미니즘 이슈가 달아오르면서 A씨와 비슷한 사례들이 속출했지만, 피해자들이 오히려 회사에 남아 있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IT노조 관계자는 "각종 SNS 활동을 문제 삼고 사상검증을 하는 부당함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개인 책임으로 몰아가 자진 퇴사를 할 수 밖에 없도록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여건에서 이번 노동청의 조치를 보는 전문가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미흡하고 아쉬운 조치라고 보지만 동시에 현실적으로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법적 기준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상균 법무법인 태율 변호사는 "여직원의 사과문 게시에 강압이 있었다면 강요죄가 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노동청이 다루는 근로기준법 관련 사안과는 다르다"며 "그래도 근로기준법상 성차별로 따질 수는 있는 부분이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김환민 IT노조 게임산업분과위원장은 "법의 아쉬운 점이 크다. 그러나 노동청에서 '재발 방지'를 권고한 조치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사상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침해한 사안이지만 아직 노동법에서는 그 부분을 지켜줄 조항이 없다. 앞으로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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