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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2보]'풍운의 정치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3金 시대' 종언

등록 2018.06.23 13: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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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8시15분 자택서 숙환으로 별세…향년 92세

DJ·YS와 함께 '트로이카' 이끌어…파란만장 정치수난사

[종합2보]'풍운의 정치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3金 시대' 종언

【서울=뉴시스】강지은 김성진 기자 = '풍운의 정치인'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15분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이로서 고(故) 김대중(DJ)·김영삼(YS) 전 대통령과 함께 불린 '트로이카 3김 시대'는 종언을 고하게 됐다.

  김 전 총리 측 관계자는 이날 뉴시스와 통화에서 "김 전 총리가 오늘 오전 자택에서 별세하셨다"고 전했다.

  유족들이 급히 119 구급대를 통해 김 전 총리를 자택에서 인근 순천향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또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 중"이라며 "조화나 조의금은 받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영결식은 27일 오전 8시 아산병원에서 진행하며, 발인은 오전 9시 예정이다. 장지는 부인 故 박영옥 여사가 잠든 충남 부여 가족묘원에 마련된다.

  운정(雲庭)재단 관계자는 "그동안 노환으로 식사를 제대로 못하셨다"며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검소하게 치르기로 했다. 생전에 부인 고(故) 박영옥 여사가 묻혀 있는 고향의 가족묘원에 묻어 달라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김 전 총리는 고(故) 김대중(DJ)·김영삼(YS)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트로이카'를 이끌어왔다. 이날 김 전 총리가 별세함에 따라 '3김(金)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게 됐다.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종합2보]'풍운의 정치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3金 시대' 종언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5·16 쿠테타를 주도하면서 현대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같은 해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를 창설해 초대부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1963년 공화당 창당 준비위원장으로 창당 작업을 도맡았고, 그 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총리는 중앙정보부장 시절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막후에서 이끌었으나, 대일 청구권 문제의 핵심이 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6·3사태가 일어나자 1964년 외유길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1967년 제7대 총선에서 당선됐지만 이듬해 의원직과 모든 공직에서 사퇴했다가 1970년에 민주공화당 총재 수석상임고문으로 추대돼 정계에 복귀했다.

  1971년 민주공화당 부총재를 지내고, 같은 해부터 1975년까지 국무총리를 지냈다.

  1979년 10·26사태 이후 공화당 총재 자리까지 올랐으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부정축재자로 지목되면서 재산환수 등의 수난을 겪기도 했다.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유랑생활을 하다가 1986년 귀국한 김 전 총리는 1987년 정계에 복귀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 같은 해 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그러나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당선된다.

[종합2보]'풍운의 정치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3金 시대' 종언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YS) 당시 대선 후보를 지원했으며 1995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 1997년 대선에서 자민련 후보로 대권에 도전한다.

  그러나 선거 막판 일명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키며 김대중(DJ) 당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함께 새정치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을 탄생시킨다. DJ 정부에선 두 번째 국무총리직을 역임한다.

  하지만 2001년 내각제 개헌 파동과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 및 공조 파기로 인해 DJ와 결별했다. 2004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참패하며 10선 도전에 실패했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고인은 JP라는 별칭 외에도 '영원한 2인자', '풍운의 정치인', '처세의 달인' 등으로 불리며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예리씨 1남 1녀가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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