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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글렌 매트록·크라잉넛, 목놓아 함께 노래하다···평화의 '말달리자'

등록 2018.06.24 22:33:51수정 2018.06.26 23: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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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매트록

글렌 매트록

【철원=뉴시스】 이재훈 기자 = 1970년대를 풍미한 영국 펑크록의 전설적 밴드 '섹스 피스톨스' 원년 멤버인 베이시스트 겸 작곡가 글렌 매트록(65)이 우리말로 "말달리자"라고 외치며 화음을 넣기 시작했다. 24일 오후 강원 철원 고석정에서 펼쳐진 '제1회 DMZ 피스트레인(Peace Train) 뮤직페스티벌'에서 한국의 펑크 신을 열어젖힌 밴드 '크라잉 넛'의 대표 히트곡 '말달리자'를 협연한 것이다.

크라잉넛의 보컬 박윤식은 "매트록 형님이 한국에 오신 지 얼마 안 됐는데 합주를 하시면서 즉흥적으로 '말달리자'를 함께 연주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고 귀띔했다.

이어 섹스피스톨스의 대표곡 '프리티 베이컨트(Pretty Vacant)'와 '갓 세이브 더 퀸'을 매트록, 크라잉넛, 그리고 '모노톤즈' 출신 차승우가 협연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청중의 앙코르가 끊이지 않자 세트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아나키 인 디 U.K.'를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부르며 이날 합동 공연은 드라마틱한 서사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 무대는 문화체육관광부, 강원도 등이 21일부터 서울 플랫폼창동61과 철원 일대에서 펼친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의 마지막날이었다. 철원 공연은 23, 24일 열렸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치르는 음악 페스티벌로, 올해가 첫 회다. '음악을 통해 국가, 정치, 경제, 이념, 인종을 초월하고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자'는 취지다.

매트록은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뒤 영국 피스 트레인 조직위원회에 참여 의사와 함께 한국의 뮤지션과 협연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무국은 크라잉넛과 차승우를 추천했다.

개런티 없이 출연한 매트록은 "남한과 북한이 이념 없이 평화롭게 공존했으면 한다"면서 "좋은 미래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매트록과 역시 노 개런티로 출연한 영국의 뮤지션 뉴턴 포크너에게 감사장과 함께 2018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 인형을 선물했다.

차승우, 글렌 매트록

차승우, 글렌 매트록

전날 서울역에서 DMZ 피스트레인을 타고 백마고지역에 도착해 노동당사, 민간인 통제 구역의 월정리역 등지를 둘러본 매트록은 이날 '섬웨어 섬하우'를 시작으로 솔로 무대도 선보였다.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 한경록은 펑크록의 전설 매트록과 한무대를 꾸민 것이 "만화 같다"고 표현했다.

이번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은 음악을 통해 평화·통일 이슈를 즐기면서 체험한 현장이다. 4월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 같은달 판문점 선언, 최근 북미정상회담 등의 이슈를 거치며 젊은 세대에게 더 이상 북한은 먼 얘기가 아닌데 음악을 통한 소통이 이런 흐름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무료로 개방된 축전의 화려한 라인업은 호사였다. 특히 평화, 통일을 위한 축전인만큼 평화, 통일을 위한 곡과 메시지가 쏟아졌다.

크라잉넛은 '들국화'의 '세계로 가는 기차', 자신들의 대표곡 중 하나로 "피부색, 말은 모두 틀려도 우리는 자랑스런 인간이다"라고 노래하는 '룩셈부르크'를 부르며 통일을 염원했다. 크라잉넛 보컬 박윤식은 "냉전의 산물인 이곳에서 확성기를 끄고 평화의 노래가 북녘까지 들렸으면 한다"고 바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판한 '돈의 신'과 대표곡 '천일동안' 등을 부른 가수 이승환은 "2년 전만 해도 이런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담으면 불경스런 일이었다"며 달라진 시대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차승우, 글렌 매트록, 한경록

차승우, 글렌 매트록, 한경록

음악계에서 '천재'로 통하는 백현진과 방준석이 결성한 프로젝트 듀오 '방백'의 무대는 색소포니스트 손성제, 베이시스트 서영도, 드러머 신석철, 건반 윤석철 등 화려한 세션들과 함께 아방가르드하면서도 멜로디컬한 수준 높은 사운드의 향연이었다.

백현진은 방백의 '한강' 일부 가사를 개사해 부르는 센스를 발휘했다. "지나가는 비가 와/ 지나가는 비가 가/ 지나가는 너와 나/ 한강을 쳐다보는 밤"에서 한강을 두만강으로 바꿔부른 것이다. 이어 괴물 같은 보컬로 "랄랄라"를 흥얼거렸다. 통일과 평화를 바라는 주문의 목소리가 따로없었다.

이어진 무대에서도 뮤지션들의 평화를 위한 메시지는 계속됐다. 영어로 '아이 러브 코리아'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등장한 스코틀랜드 밴드 '겨자대령과 디종5'는 무대 밑으로 내려와 관객과 함께 하는 퍼포먼스로 평화와 화합을 위한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던졌다.

방백이 공연 초반 스스로를 잘 나가는 밴드 '새소년'이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인디 신의 블루칩으로 통한 '새소년'의 무대는 뜨거웠다. 성별을 쉽게 구별할 수 없는 야성의 목소리와 강렬한 기타 연주로 인기를 한몸에 누리고 있는 보컬 황소윤은 "특별한 장소에서 공연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뮤지컬 '헤드윅'을 방불케 하는 아찔한 비주얼에 테크노 비트, 글램 록, 디스코 사운드를 입힌 국악 사운드의 강렬함으로 무장한 민요 록밴드 '씽씽'의 보컬 이희문은 '신들림'을 콘셉트로 남북 평화를 기원했다. 헤비메탈의 강렬함, 국악의 애잔함을 모두 끌어안은 국악 기반의 포스트 록 밴드 '잠비나의'의 사운드는 자체로 통일을 위한 비나리였다.
 
글렌 매트록, 크라잉 넛, 차승우

글렌 매트록, 크라잉 넛, 차승우

전날 140여명을 태운 피스트레인에서는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세계로 가는 기차'를 부르는 등 열차 내 공연이 펼쳐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촬영지로도 유명한 철원읍 관전리 노동당사에서는 안무가 차진엽이 이끄는 댄스 퍼포먼스 그룹 '콜렉티브 A'의 퍼포먼스와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의 공연이 펼쳐졌다. 월정리역에서는 방백의 공연이 벌어졌다.

이날 고석정에서 펼쳐진 메인 공연에는 강산에, 이디오테잎, 장기하와얼굴들, 갤럭시 익스프레스 등이 출연했다. 주최측 추산 6000여명이 몰렸고 이승환, 크라잉넛과 매트록이 헤드라이너로 나선 이날 역시 비슷한 관객 수를 예상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의 접경지역을 평화지역으로 만드는 상징적 행사를 개최하고자 했다"면서 "정치적 평화를 넘어 삶의 평화를 콘셉트로, 밀레니얼 세대를 포함한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평화 공감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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