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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 거부 다시 '유죄'…法 "양심 명확히 확인 안돼"

등록 2018.07.18 15: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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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대체복무제 도입 판단 이후 '실형' 선고 주목

법원 "제출 자료와 행적으로는 폭력 반대 신념 의문"

피고인 폭행·공무집행방해·집시법 위반 등 전력 문제

피고인 측 "세월호 집회 등 참여하면서 생긴 전과들"

"내용 고려치 않고 재단…오히려 정치적 신념 입증"

병역 거부 '양심상 사유'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난제

【서울=뉴시스】이종철 기자 =이철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입법 촉구 국회ㆍ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07.05. jc4321@newsis.com

【서울=뉴시스】이종철 기자  =이철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입법 촉구 국회ㆍ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07.0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법원이 개인의 정치적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30대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로 결정한 이후에 이뤄진 유죄 판결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7단독 조상민 판사는 전날 오전 열린 오모(29)씨에 대한 병역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증거 인멸이나 도주할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법원이 제시한 유죄 근거는 "제출한 자료만으로 양심이 확인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또 오씨가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면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공동주거침입 혐의 등으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점에서 '폭력에 반대한다'라는 정치적 신념의 근거가 약하다고 봤다.

 법원은 "오씨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제출한 자료만으로 그 주장과 같은 양심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라며 "사건 이전에도 공무집행방해죄, 집시법 위반죄 등 범행을 저질러 벌금형을 선고 받은 전력이 있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주거침입)죄를 저질러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음에도 이후 동일한 범죄를 저질러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오씨의 행적에 비춰보더라도,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는 이외에 폭력에 반대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진심어린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라며 "따라서 오씨에게 현역병 입영을 거부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오씨는 지난해 12월20일 육군 28사단 현역병으로 입영하라는 통지서를 받고도 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올 2월9일까지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오씨는 법원에 '평화의 확산을 위해 폭력을 확대·재생산하는 군대에 입영할 수 없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오씨가 법원에 제출한 소견서에는 '일상 경험을 토대로 공권력에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전쟁 없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을 본인의 신념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오씨 측은 항소를 통해 무죄를 주장하겠다는 방침이다. 법원 판단의 근거로 작용한 전과의 내용이 포이동 재건마을 재건축 반대집회,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집회 등에 참여하면서 생긴 것들이어서 오히려 오씨의 정치적 신념을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인 청년공동체 너머 측은 "판결을 하면서 내용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전과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오씨의 평화에 대한 신념을 재단했다"라면서 "향후 법정 대응 과정에서 이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얘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오씨는 지난달 19일 열린 결심에서 법원에 해당 재판의 추정과 연기를 신청했다. 병역법 일부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재 결정이 나오기까지 기다려보겠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법원은 종교적 이유가 아닌 개인의 정치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고 오씨 측은 전했다.

 너머 측은 "오씨 측에서 헌재 결정을 앞두고 있으니 법원에 재판에 대한 추정·연기 신청을 구두로 했었다. 그런데 법원에서는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개인의 정치적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건이 아니냐고 지적하면서 재판을 진행시켰다"라고 주장했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대체 복무제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018.06.28.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대체 복무제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018.06.28.   [email protected]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과 같이 '병역거부의 사유'가 향후 대체복무제 도입에 관한 논의에서도 첨예한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일부 통념이나, 대체복무 대상이 되는 양심상 사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등이 계속 난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례로 대체복무의 부정적인 측면을 우려하는 쪽에서는 병역거부의 대상이 되는 양심상의 사유를 종교적 사유 이외에 폭넓게 볼 경우 악용 사례가 빈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대체복무가 예외적인 조치에 해당하는 만큼 범위를 까다롭게 제한해야 한다는 논거다.

 반면 병역을 치르지 않겠다는 신념의 종류를 선별해 양심을 구분짓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헌재에서 대체복무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결정을 하면서, 종교에 한정되지 않은 양심의 자유를 근거로 삼았기 때문에 개인의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라고 달리 봐선 안 된다는 목소리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정치와 무관하게 어떠한 문제이든 자기 양심의 결정이 병역과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양심을 우선시한다는 개념"이라며 "이를 종교적 이유와 정치적 이유를 구분해서 판단한다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헌재에서도 종교의 자유를 포함하는 양심의 자유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개인의 진지한 윤리적 확신까지 포함하고 있다"라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다른 개인적·윤리적 신념에 대해서만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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