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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창작뮤지컬의 콤플렉스·강박, 다 털었다···수작 '웃는남자'

등록 2018.07.19 14:4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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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창작뮤지컬의 콤플렉스·강박, 다 털었다···수작 '웃는남자'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웃는 남자'는 '창작뮤지컬 초연이니까···'라며 접어줄 필요가 없었다. 이달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초연의 베일을 벗자마자 창작뮤지컬 콤플렉스를 과감하게 날려버렸다.

한국에서 창작뮤지컬은 대체로 강박에 시달린다. 한국적인 소재에 한국적인 음악을 녹여넣어야 한다는 편견이다. 억지춘향 식의 이야기·형식을 짓는 우를 범할 수 있는데, '웃는 남자'는 세계에 잘 알려진 고전으로 '웰메이드 뮤지컬'을 탄생시켰다. 눈부셨고, 귀는 황홀했으며, 마음은 어릿어릿했다.

◇제작비 175억원의 압도적인 무대

 하반기 최대 기대작인 '웃는 남자'는 '레 미제라블'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겸 극작가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이 바탕이다. 공연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가 2013년부터 5년 간 공을 들여온 작품으로 제작비 175억원이 투입됐다. 1000만 영화 '신과 함께' 1편 제작비가 약 200억원이니, 뮤지컬계 대형 블록버스터인 셈이다.

뮤지컬시장의 세계 흐름은 무대 세트 제작에 드는 비용을 줄이려고 영상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가 제작한 대형 무대는 작품의 배경인 17세기 영국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압도적이다.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가 탄 배가 바다에 침몰하는 초반부터 극의 중심인 유랑극단의 풍경, 화려한 정원과 궁전은 곧 황홀경이다. 눈이 먼 여주인공 '데아'와 유랑극단 배우들이 강가에서 물을 튕기며 노는 모습을 무대 위에 형상화한 장면은 서정성의 극치다. 

[리뷰]창작뮤지컬의 콤플렉스·강박, 다 털었다···수작 '웃는남자'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남주인공 '그웬플렌'의 찢어진 입을 형상화한 모티브가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반복된다는 점이다. 극은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아물지 않는 잔혹한 미소를 갖게 된 그웬플렌의 여정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성찰한다.

극을 열고 닫는 무대 전체 가림막을 시작으로 그웬플렌이 공작의 자리를 스스로 박차는 의회에서의 모습까지, 그웬플렌의 입꼬리 형상은 다양하게 변모되며 극의 메시지와 무대에 자연스럽게 일관성을 부여한다.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제가 자연스럽게 부각된다. 그웬플렌은 비슷한 주제의 작품들 속 주인공과 비교해 가장 순수하고 서정적이다. 호기롭게 앞장서기보다 투명함으로 뮤지컬의 주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다.

◇배우들의 탁월한 기량···물 오른 박효신

'웃는 남자'는 화려한 캐스팅으로도 주목받는다. 특히 그윈플렌 역의 박효신은 기량이 절정에 달했다는 평이 나온다. 박효신은 뮤지컬계에서 블루칩으로 통한다. 데뷔 초기인 2000년 '락햄릿'으로 뮤지컬에 데뷔한 그는 13년 만에 출연한 뮤지컬인 '엘리자벳'(2013)을 시작으로 '모차르트!'(2014), '팬텀'(2015·2016)을 통해 '뮤지컬계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잡았다.

[리뷰]창작뮤지컬의 콤플렉스·강박, 다 털었다···수작 '웃는남자'

'지킬 앤 하이드' 등을 통해 국내에서 마니아를 보유한 프랭크 와일드혼이 '웃는 남자'의 넘버를 작곡했는데, 처음부터 그윈플렌 역에 박효신을 염두에 두고 넘버를 작곡할 정도로 기량과 감성을 인정 받고 있다.

뮤지컬계에서도 가창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을 들은 박효신은 와일드혼의 서정적인 넘버를 능숙하게 소화한다. 데뷔 초반 허스키 음색에 방점을 찍은 그는 최근 음역대를 넓혔다. '웃는 남자'에서는 특히 미성이 빛을 발한다. 데아와 듀엣곡 '넌 내 삶의 전부'에서의 감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솔로 넘버 '그 눈을 떠'에서의 강렬함은 또 어떻고.

연기력에서는 일부 의문도 나왔었다. '웃는 남자'에서 박효신은 세간의 그런 평에 반기를 확실히 든다. 그윈플렌은 콤프라치코스의 만행으로 기이하게 찢겨진 입을 갖게 된 인물. 생각지도 못했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비극적인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지는데 박효신의 감성은 드라마틱하게 함께 휘몰아친다.

와일드혼의 넘버는 한국 대중음악을 연상케 하는 '뽕끼'가 다분하다. '웃는 남자'에서는 좀 더 모던해졌다. 아이리시풍 등 다양한 장르도 오간다. 멜로디와 리듬은 적절하게 감성을 충동질한다. 김문정 음악감독이 이끄는 더MC오케스트라의 탄탄한 연주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무대 위에 올라 노랫말로는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을 연주로 공감케 한다.

박효신 말고도 캐스팅은 쟁쟁하다. 그웬플렌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다가 그를 이해하는 조시아나 공작부인 역의 정선아는 뮤지컬에서 가장 섹시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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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윈플렌을 주워서 기르는 약장수 '우르수스' 역의 정성화·양준모는 극의 중심축을 떠받친다. 위고의 다른 작품 '레 미제라블'에서 '장 발장'을 나란히 연기한 두 사람은 이번 작품에서도 부성애의 극치를 보여준다. 둘 다 '위고의 휴머니즘 전문배우'라고 부를 만하다.

라이징 뮤지컬스타 박강현, 뮤지컬 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그룹 '엑소' 수호가 박효신과는 다른 결의 그웬플렌을 보여준다. 가창력이 걸출한 신영숙도 정선아와 다른 색의 조시아나 공작부인을 보여준다.

◇장기간 호흡 맞춘 스태프들의 시너지 효과

'웃는 남자'를 제작한 EMK뮤지컬컴퍼니는 2009년 설립됐다. 지난 10년간 뮤지컬업계에서 가장 성공한 회사다. 모차르트!, 몬테크리스토, 엘리자벳, 황태자 루돌프(더 라스트 키스), 레베카, 팬텀 등 유럽 중세풍 블록버스터 뮤지컬의 국내 열풍을 이끌었다.

김준수, 박효신 등 뮤지컬 블루칩을 발굴하는 등 스타 캐스팅으로 활력을 불어넣었다. 제작비 125억원을 쏟아 부은 창작뮤지컬 '마타하리'로 시장의 판을 키우기도 했다.

[리뷰]창작뮤지컬의 콤플렉스·강박, 다 털었다···수작 '웃는남자'

'웃는 남자'는 이 회사의 두 번째 창작뮤지컬이다. 재창작에 가까운 라이선스 제작으로 쌓은 경험을 폭발시켰다. EMK뮤지컬컴퍼니의 두 바퀴인 엄홍현 대표와 김지원 부대표는 10주년을 앞두고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뮤지컬계에 갑작스레 등장한 이 '앙팡테리블'를 일부에서는 저평가했다. '웃는 남자'는 이런 회의적인 시선을 충분히 누그러뜨릴 만하다. 

벌써 해외 공연을 확정했다. 김지원 부대표가 대표직을 겸하는 EMK인터내셔널은 '웃는 남자' 초연 직후 일본 라이선스 공연을 확정했다. 2019년 4월 1300석 규모의 도쿄 닛세이 극장에서 공연한다.

'웃는 남자'가 쾌조의 스타트를 끊는 데 기여한 공로자 중에는 연출 로버트 조핸슨도 있다. '레베카' '엘리자벳' 등을 연출하며 한국 배우를 가장 잘 아는 해외 연출자로 통한다. 라이선스 '몬테크리스토'와 '더 라스트 키스', 창작 '마타하리' 등으로 EMK와 꾸준히 호흡을 맞춘 와일드혼 역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번 공연에서 특기해야 할 것은 박효신의 소속사인 글러브엔터테인먼트가 주관사로 함께 참여했다는 점이다. 박효신은 이 뮤지컬에 출연한 이유 중 하나로 "세계적인 대문호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을 꼽았다. 실제로 위고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은 모두 흥행성과 완성도 면에서 높은 평가를 얻었다. '레미제라블' 외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라이선스로 공연 중인 '노트르담 드 파리'가 있다. '웃는 남자'가 한국 창작물로서 장기적으로 이들 작품과 함께 언급될 지도 관심거리다.

'웃는 남자'는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작이기도 하다. 월드프리미어라는 타이틀로 8월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 뒤 9월4일부터 10월28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로 옮겨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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