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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폭탄' 누진세 소송, 부당성 인정한 판결은 단 1건

등록 2018.08.07 16: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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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진제 갈등 지속…시민들 한전 상대 소송 나서

누진제 소송 13건…법원은 대체로 한전 손 들어

원고 승소 판결 항소심 진행…"시각 변화 기대"

"주택용만 누진 적용 불합리, 검증 절차 공개"

전문가 "과학적 분석과 대상자 견해 수렴 필요"

【서울=뉴시스】이종철 기자 =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폭염에 따른 '전기요금 지원대책' 당정협의에서 홍영표 원내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홍영표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2018.08.07.jc4321@newsis.com

【서울=뉴시스】이종철 기자  =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폭염에 따른 '전기요금 지원대책' 당정협의에서 홍영표 원내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홍영표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기록적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도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역대 최고 수준의 무더위 속에 냉방기기 가동이 불가피한 상황인데 전기료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7~8월 한시적으로 누진 구간을 완화하는 조치를 내놓았지만 '가마솥'에 갇힌 시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누진제에 대한 부담이 상당하다.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전기료 폭탄'을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주택용 전기료만 차별? '누진제 소송' 단 한 건만 소비자 승소

 현행 주택용 전기료 체계는 사용 구간에 따라 금액이 급등하는 '누진' 구조다. 이 때문에 여름철마다 누진제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됐다. 최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제도 폐지를 언급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 등 누진제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다양한 경로로 제기됐다.

 일부 시민들은 현행 누진제가 산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사용량이 적은 일반 가계에 불리하게 부과되고 있다는 취지의 소송을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제기하면서 행동에 나섰다.

 지난 2014년부터 최근까지 시민들이 원고로 제기된 누진제 관련 소송은 모두 13건에 달한다. 추가 소송에 나서기 위해 준비 중인 시민들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법원은 그간 누진제와 관련한 재판에서 대부분 한전 측 손을 들어줬다. 현재까지 누진제 소송에서 원고 측이 승소한 재판은 인천지법에서 열린 소송 단 한 건뿐이다.

 서울중앙지법과 남부지법, 대전지법에 제기된 소송 3건은 1심과 항소심 모두 원고 측이 패소했으며,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광주지법에서 있었던 누진제 관련 항소심에서도 법원은 한전 쪽 주장을 받아들였다.

 지난달 중앙지법에서 있었던 다른 누진제 관련 소송 1심도 원고 패소로 결론 났다. 전주지법·춘천지법에 제기된 소송은 1심 선고를 앞두고 있으며, 대구지법·수원지법 안양지원에서는 아직 1심을 진행하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대체로 전기료 기본공급약관 작성 및 변경 과정이 수급 상황을 고려한 전기위원회 심의,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협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인가라는 절차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 등을 이유로 누진제의 정당성을 인정해왔다.
【서울=뉴시스】안지혜 기자 = 당정청은 7~8월 두 달간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사회적 배려계층의 전기요금 할인 규모도 같은 기간 30% 추가 확대키로 했다. hokma@newsis.com

【서울=뉴시스】안지혜 기자 = 당정청은 7~8월 두 달간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사회적 배려계층의 전기요금 할인 규모도 같은 기간 30% 추가 확대키로 했다. [email protected]

'전기요금은 기본요금과 전력량 요금 및 연료비 조정 요금을 원칙으로 하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차등요금·누진요금 등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정한 지난 2012년 지식경제부 고시 등도 누진제가 적절한 근거를 둔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끼쳤다.

 전기요금을 책정하는 과정에서 한전이 임의로 산정 기준과 달리 요금을 증감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전이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전기료 약관을 산정한다고 보긴 어렵다는 취지로 누진제의 불합리성을 부정한 사례도 있다.

 물론 한전이 독점적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전기료 산정 기준을 결정하는데 우월한 지위에 있고, 이에 따라 전기료 약관이 실질적으로 규범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판결은 주택용 전기요금에 대한 누진제가 불합리하지 않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시민이 원고로 나서 승소한 유일한 판결은 인천지법에서 내려졌다. 인천지법은 공공재 성격이 있는 전기를 한전이 독점 판매를 하고 있어 개별적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곤, 누진제가 상대적으로 산업 대비 전기 사용량이 적은 주택에만 비용 부담이 가중되는 형태로 구성돼있어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왜 주택용에만 누진제 적용했나…"의견 수렴하고 근거 제시해야"

 소송에 나선 시민 측에서는 누진제의 불합리성을 인정한 인천지법 1심의 향방이 향후 누진제에 관한 법적 시각에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당 사건은 현재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원고 측은 현행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가 사용량 뿐만 아니라 기본요금까지 전부 구간에 따라 요금을 할증시키는 형태로 구성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전력공급설비 관련 고정비 회수 목적의 기본요금까지 구간별 누진 요금에 합산해 부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전체 전력 소비량 가운데 차지하는 55% 이상으로 가장 높은 산업용 또는 30% 이상인 일반용 전력이 아닌 13%에 불과한 주택용 전력에만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과 주택용 전기가 전체 전력 사용량이 가장 낮은 구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 등을 제시하면서 누진제의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주택용 전기요금의 산정이 전기위원회 심의 등의 절차를 거쳐 이뤄되는 점과 누진제가 불합리하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절기상 입추인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누진제 완화 등 폭염에 따른 전기요금 지원 대책을 발표하는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위로 에어컨이 보이고 있다. 2018.08.07. (사진= 다중노출 촬영)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절기상 입추인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누진제 완화 등 폭염에 따른 전기요금 지원 대책을 발표하는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위로 에어컨이 보이고 있다. 2018.08.07. (사진= 다중노출 촬영) [email protected]

이들은 한전이 전기요금 원가 검증을 위해 정부에 제출한 '전기요금 산정보고서'가 용도·종류·전압별 회계를 구분하지 않고 있어 용도별 검증이 어렵다면서 전기위원회의 심의 과정 등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 등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송을 대리하는 곽상언(47) 법무법인 인강 변호사는 "일부 하급심 판결에서는 누진제 요금규정이 관련 법령과 전기요금 산정기준 고시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인가됐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한전이 거래상의 지위를 남용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기위원회가 국민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렵고, 전기료 산정보고서에는 용도별 원가가 기재돼 있지 않은데도 용도별 누진제가 인정되고 있다"라며 "지난 2016년 누진제가 개편되면서 과거와 비교해서는 개선됐다고 볼 수 있으나 여전히 구조적인 불이익이 존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현재 누진제는 전체 사용량 비중이 낮은 가정용에만 징벌적 성격으로 적용되고 있어 부당하다"라며 "이런 누진제는 전기 소비 증가를 억제한다는 원래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외려 차별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누진제 폐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주택용 전기료 별도로 봐야하는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는 특정 용도의 전기요금에만 누진제가 적용돼야 하는 사정과 사유를 명확히 밝히라는 원고 측 입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전기료를 많이 걷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분석과 대상자들의 견해를 수렴해 종합적으로 누진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라며 "이번 폭염 같은 경우에는 자연재해 수준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매번 바꾸는 것은 아니라도 탄력성 있게 대응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종적으로는 정책 당국에서 결정할 문제이겠지만 의견을 수렴하고 공론에 놓는 과정이 필요하다"라며 "사용한 만큼 내는 것은 당연하겠으나 충분히 설득력 있는 근거를 함께 제시해야 제도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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