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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업들에게 희망 주고 싶었다”…후보→MVP 최은지

등록 2018.08.12 18:47:02수정 2018.08.13 09: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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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KGC인삼공사

최은지, KGC인삼공사

【보령=뉴시스】권혁진 기자 = “백업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만년 후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여자배구 컵대회 최우수선수(MVP)로 등극한 KGC인삼공사 최은지는 지난 시즌까지 웜업존이 익숙한 후보 선수에 불과했다.

최은지는 2011~2012시즌 신인 드래프트 신생팀 우선지명을 통해 IBK기업은행에 입단했다. 프로 선수가 됐다는 설렘은 오래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김희진, 박정아 등 쟁쟁한 동기생들의 존재는 최은지를 벤치에 머물게 했다. 경남 하동군 출신으로 중고교 시절 전국적인 명성을 얻으며 ‘하동의 딸’이라는 칭호까지 받았던 최은지의 첫 시련이었다.

이렇다 할 활약 없이 2016~2017시즌을 앞두고 한국도로공사로 이적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급기야 1년 뒤에는 자유계약선수(FA) 최대어 박정아가 한국도로공사로 향했다.

지독한 후보 생활은 KGC인삼공사 이적 후에야 마무리 됐다. 세 번째 팀에서의 첫 공식대회인 2018 보령·한국도로공사컵 여자프로배구대회에서 최은지는 주축 공격수로 활약하며 존재감을 맘껏 뽐냈다.

12일 GS칼텍스와의 결승전에서는 무려 32점을 책임지며 팀의 세트스코어 3-2(25-27 25-22 25-27 31-29 16-14) 역전승을 이끌었다. 덕분에 생애 첫 최우수선수(MVP)의 영예까지 안았다.

최은지는 “프로에 온 뒤 내가 주축으로 경기에 나서 우승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늘은 꼭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싶었다. 선수들이 많이 도와줘 값진 우승을 한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컵대회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 한 최은지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위해 더욱 힘을 냈다고 털어놨다. 최은지는 “많은 백업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빨리 껍질을 깨고 나와 후배들과 동료들에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희진, 박정아에게 가려있던 IBK기업은행 시절을 떠올릴 때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배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비주전을 해봤다. 나이도 어렸고, 뒤에서 생활을 하니 빨리 포기했던 것 같다. 더 빨리 이겨내려고 노력했어야 했지만, ‘나는 희진 언니랑 정아가 있으니 안 되는구나’라고 빨리 내려놓았다.”

베테랑 세터 이효희와 이숙자의 조언은 큰 힘이 됐다. V-리그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된 두 선수에게도 최은지와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때문에 누구보다 최은지의 설움을 잘 알고 있었다. 최은지는 “효희 언니는 5년차 때 처음 주전으로 뛰었다고 했다. ‘넌 잘하는 애니 하면 된다’고 조언해줬다. 숙자 언니도 ‘묵묵히 기다리면 빛을 볼 수 있는 선수’라고 말해줬다”고 회상했다.

FA 자격을 얻은 최은지에게 관심을 갖는 구단은 없었다. 이때 KGC인삼공사 서남원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왠지 어떤 감독님의 전화인 것 같긴 했다. 알고보니 서남원 감독님었다”는 최은지는 “’우리 팀에 와 줄 수 있겠냐. 너랑 같이 하고 싶다’고 하시더라. 나랑 같이 하고 싶다는 말을 들은 것이 처음이었다. 뭔가 딱딱 맞았다. 감독님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서 바로 만났다”고 소개했다.

계약서에 도장을 받아낸 서 감독은 최은지의 빠른 적응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예전에는 교체로 들어가도 ‘금방 빠지겠지’라고 생각했다. 서 감독님이 불안해하는 걸 아시는지 먼저 이야기 하시더라. ‘안 뺄 테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그 말이 고마웠다.”

KGC인삼공사를 10년 만에 정상으로 이끌며 자신의 이름 석자를 널리 알린 최은지는 정규리그에서도 활약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기사 댓글을 좀 보는 편이다. 그런데 ‘최은지가 리그 시작해서도 통할까’라는 글이 꼭 하나씩은 있더라. 그걸 보고 끝까지 이 악물고 했다. 그런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나에겐 자극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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