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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임동혁·김선욱·선우예권, 이 셋이 한 피아노를 쳤다

등록 2018.08.16 11: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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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기획사 7곳 뭉친 '스타즈 온 스테이지'

[리뷰]임동혁·김선욱·선우예권, 이 셋이 한 피아노를 쳤다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임베르트'(임 슈베르트) 임동혁(34), '젊은 거장' 김선욱(30), '콩킹'(콩쿠르 킹) 선우예권(29)이 나란히 무대 위로 걸어 나오자 공연장은 환호로 들끓었다. 한국 클래식계의 한 축을 이끄는 스타 피아니스트들이 한 무대에 서는 진풍경이 빚어졌다.
 
클래식·매니지먼트 기획사들이 뭉쳐 15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친 '스타즈 온 스테이지'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앙코르 무대였다.

이들이 도란도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여섯 손을 위한 로망스'는 무더위를 잊게 할 만큼 목가적이었다. 세 명이 나란히 앉아 한 피아노 건반 위에 여섯 손으로 연주했다. 깔끔하고 청량했다.

맏형 임동혁이 중심에서 감성과 이성의 균형을 잡고, 김선욱이 왼쪽에서 견고한 저음을 구축했다. 선우예권은 맑은 소리로 투명함을 더했다.

연주 시작 전 막내 선우예권이 앉을 자리가 없어 일어났다 앉았다 반복하는 모습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이들의 무대 위에서 보기 드문 인간적인 매력이었다. 연주를 끝내고 어깨동무를 하며 객석을 향해 인사하는 이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싱긋 웃었다.

 '스타즈 온 스테이지'는 연주자가 손가락과 팔로만 연주하지 않는다는 걸 이렇게 보여줬다. 개성 강한 독주자로서 세계를 누비는 이들이 물리적인 소리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화음을 이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실내악 공연들이다.

'파블로 카살스 국제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문태국의 "다른 기획사 아티스트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흔히 있는 기회가 아닌데 음악을 통해서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현실이 됐다.

[리뷰]임동혁·김선욱·선우예권, 이 셋이 한 피아노를 쳤다

낮 12시 공연부터 저녁 7시30분 공연까지 총 4차례 무대가 릴레이 형식으로 펼쳐졌다. 이런 퀄리티의 공연이 이어진다면, 아직 먼 듯한 실내악 붐이 금세 일 수도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공연 전부터 '클래식계 어벤저스'라는 수식을 달았는데, 화려한 라인업을 지칭한 동시에 힘을 모았을 때 또 다른 영역에 닿을 수 있다는 은유였던 셈이다.
 
이날 마지막 무대인 오후 7시30분 공연의 초반은 임동혁과 선우예권이 장식했다. 예전부터 막역한 사이인 두 사람의 듀오 무대는 말 그대로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의 '지음(知音)'이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

두 사람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 피아노 2중주 버전을 연주했다. 임동혁이 드라마틱하게 감정의 고도를 넘나들면 선우예권이 여백의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협업으로 화려한 곡에 여운을 주는 해석을 했다. 두 연주자는 올해 3월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의 '제3회 그리움(G. Rium) 아티스트상' 수상자로 공동 선정되기도 했다.

이어서 무대에 오른 김선욱과 현악사중주단 '노부스 콰르텟'의 프랑크 피아노 5중주는 폭넓은 음역대를 섬세하게 매만져가는 다섯 명의 호흡이 일품이었다.
 
[리뷰]임동혁·김선욱·선우예권, 이 셋이 한 피아노를 쳤다

이밖에도 내내 실내악 성찬이 펼쳐졌다. 오후 5시 공연에서 소프라노 황수미(32)가 노부스 콰르텟과 협연으로 들려준 레스피기의 '저녁노을'은 시각, 청각, 촉각이 어우러진 '공감각적인 노래'가 무엇인지 증명했다. 두 연인의 죽음에 대해 서정적인 비통함을 노래하는 이 곡은 노부스콰르텟의 농밀한 연주, 황수미의 우아하고 청명한 목소리가 만나 악절마다 저마다의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바이올리스트 김봄소리(29)와 문태국이 조화한 라벨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마술 같은 시간을 선사했다.

정재옥 크레디아 대표가 제안한 뒤 목프로덕션, 빈체로, 봄아트프로젝트, 아트앤아티스트, 스톰프뮤직, 스테이지원 등 7곳의 기획사가 뭉치고 롯데문화재단이 힘을 실은 이번 공연은 이샘 목프로덕션 대표의 말마따나 "기획사들이 경쟁사가 아닌 업계에서 함께 판을 키워나가는, 건강한 토양을 만들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시발점"이 됐다.

정 대표는 프로그램 북에 실린 '동행'이라는 글에서 "밤하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있다. 별들의 순위보다 별마다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색채에 눈과 귀를 기울려달라"고 했다. 이날 공연은, 그대로 됐다.

 마지막 앙코르곡은 광복절을 맞아 실내악 버전으로 편곡한 아리랑.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과 김봄소리, 노부스 콰르텟, 문태국, 그리고 앙상블 클럽M 등 차세대 연주자들이 들려준 이 민요가 보기다. 연주자들이 빳빳한 악보 위에 그려진 단정한 음표를 연주해나가는 동안, 그들의 마음 속에는 우정과 화합의 멜로디가 아로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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