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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대응 '딜레마'…의료 현장 혼란 가중

등록 2018.09.14 11: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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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설사 증상만 있어 공항검역 통과 후 '확진' 판정

의사협회 "메르스 검역 선별기준·지침 개선 필요" 강조

메르스 대응 '딜레마'…의료 현장 혼란 가중

【서울=뉴시스】강세훈 기자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 환자 A(61)씨는 메르스 감염 환자가 보이는 증상이 아니라 사실상 예외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는 정부가 메르스 증상이라고 밝힌 기침이나 발열보다는 설사가 심했고, 이 때문에 공항 검역을 무사히 통과했다.

 따라서 일선 의사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메르스 대응 지침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4일 재난안전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8일 메르스 감염 확진 환자가 나온 뒤 감염의심 신고를 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특히 경기도에서는 연간 50~60건이었던 메르스 의심 신고가 최근엔 하루 10건 정도로 급증했다.

 현재 메르스 대응 지침에는 중동 지역을 방문한 사람이 발열 37.5도 이상이면서 기침, 호흡 곤란 등 호흡기 증상이 있을 때만 의심환자로 분류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메르스 확진 환자의 경우 공항 검역단계에서 설사 증상이 있었지만 발열과 호흡기 증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중동 지역을 다녀온 뒤 설사와 미열 등을 이유로 메르스 의심 신고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선 의사들은 공항 검역대를 무사히 통과한 뒤 메르스 확진이 난 사례를 본 만큼 이런 환자들을 대응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의료진 입장에선 중동 방문력과 설사 증상만 있는 환자의 경우 무조건 질병관리본부에 보고한 뒤 처리하고, 환자 상태 기록을 꼼꼼히 남겨두는 수 밖에 없다.

 정부의 메르스 대응 지침에 따라 의심 환자로 분류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뒤집어 쓸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큰 상황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메르스 대응 지침만 믿고 일반환자로 분류했다가 나중에 확진이 나면 뒷감당을 누가 하느냐"라며 "환자 걱정도 걱정이지만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는 질본에 사례를 보고하고 꼼꼼하게 기록해 두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중동지역을 여행한 뒤 발열(37.5도)과 설사 증상을 보인 남성 A씨가 메르스 감염을 의심해 서울의 한 대형병원을 방문했지만 질본의 판단에 따라 일반환자로 분류돼 귀가 조치 됐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메르스의 주된 증상이 발열과 호흡기 증상이지만 설사와 구토 같은 소화기 증상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먼저 설사 증상을 보였다가 뒤늦게 발열 증상이 나타난 이번 메르스 확진자 사례를 근거로 국제 표준 변경을 제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다만 향후 대응 지침을 고치더라도 의심 환자 분류 기준을 낮추는 데도 현실적인 문제는 있다. 일선 의료기관이 부담하게 될 업무량과 이에 따른 재정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메르스를 포함해 해외 유입 감염병의 검역 선별기준과 지침을 의학적 기준에 의거해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질본은 하지만 우리 정부의 메르스 대응 지침이 오히려 해외 기준에 비해 엄격한 편이라고 설명한다.

 해외에선 발열이 38도 이상이면서 중증 호흡기 질환이 있어야 의심환자로 분류하고 있지만, 우리는 발열 37.5도 이상이면서 호흡기 질환이 있으면 의심환자로 분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질본 관계자는 "세계보건기구(WHO),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해외 기준을 토대로 만든 메르스 대응 지침에  따랐을 뿐"이라며 "메르스 의심환자 분류기준은 중동 여행력이 있는 사람이 호흡기 증상과 발열이 동시에 나타나야 하고, 설사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메르스 대응 지침에 헛점이 드러난 이상 비판을 피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의사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메르스 확진과 격리가 공공부문에서가 아니라 민간의료기관에서 이뤄졌다는 것과 환자 본인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진료를 받았다는 것은 검역 관리의 실패 사례"라고 비판한 바 있다.

  또한 2015년 정부가 펴낸 메르스 백서에는 '감염 초기에는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채 설사와 복통만 호소할 수 있다'고 적혀 있어 정부 스스로 예외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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