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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김은성, 경쾌하게 바라본 더러운 세상···연극 '그 개'

등록 2018.09.18 1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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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작가

김은성 작가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과연 우리가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블루칩 극작가 김은성(41)이 바로 지금 여기를 톺아본다.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이 10월 5~21일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공연하는 창작극 '그 개'를 통해서다.

김 작가는 등단 10년을 맞이한 2016년 나란히 공개한 신작 2편으로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두산아트센터와 작업한 '썬샤인의 전사들'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제주 4·3사건, 6·25동란, 군부독재시대, 그리고 세월호 참사까지 아우르며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정직하되 지루하지 않게 다뤘다. 서울시극단과 작업한 '함익'은 '여자 햄릿'을 내세워 웅장한 서사를 뒤로 밀어내고 행간에 숨어 있는 주인공의 심리에 주목했다. 이후 동아연극상 희곡상,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 차범석 희곡상 등을 받았다.

김 작가는 18일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서울시극단 연습실에서 "'썬샤인의 전사들'은 오랜 시간을 들인 규모가 큰 작품이고 '함익'은 명작을 뒤튼 작품이라 내 삶의 바로 주변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면서 "그래서 그런지 이후에 내 주변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 개'에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주변의 삶을 담게 된 이유다. 웹툰 작가를 꿈꾸는 열여섯살 여중생 '해일'은 틱장애로 왕따를 당한다. 외롭게 지내며 분신 같은 존재인 유기견 '무스탕'과 우정을 나눈다.

저택에 살고 있는 제약회사 회장 '장강'은 강압적인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와 10년째 별거 중인 아내, 미국으로 떠난 딸 가족으로 인해 외로워하며 반려견 '보쓰'와 함께 지낸다. 일찍이 해일의 엄마 은지와 헤어진 상근은 장강의 운전기사로 지내며 그를 은인으로 여겨 목숨 걸고 지키려 한다.

미술강사이자 화가인 선영과 그녀의 남편인 영수는 아들 별이를 키우며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자 꿈꾼다. 하지만 건강보험료에 전전긍긍하며 가난이 주는 비정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지혜(왼쪽), 안다정

이지혜(왼쪽), 안다정

김 작가는 '세상의 변화에 있어 근본적인 문제는 아주 작은 것에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인 성북동을 돌아보며 이번 이야기를 시작했다.

"1, 2년 쉬면서 돌아본 저희 동네 이야기에요. 거기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죠. 처음에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것은 제가 평소 다니던 등산로의 유기견이었어요. 저를 쫓아왔고 돌려보냈던 개였죠. 성북동 한쪽 아래에는 좋은 집들이 모여 있는데 그 옆을 지나가다 영어를 쓰며 텀블링에서 노는 아이들을 봤죠. 그래서 다가갔는데 갑자기 큰 개가 짖더라고요."

그렇게 북한산에서 자신을 따라오던 유기견과 자신을 경계하던 개가 계속 잔상으로 남아 있어 이야기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버려진 유기견이랑 대저택이랑 그 어중간에 서 있는 나랑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함부로 메지시를 담기보다는 그냥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럼에도 김 작가가 주변에서 길어올린 캐릭터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말도 없이 떠나버린 엄마를 그리워하는 해일과 갑질을 일삼지만 정작 가족들에게 외면 받는 장강, 오른 건강보험료에 전전긍긍하며 해촉증명서에 골머리를 썩는 선영과 영수 등 비정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몸부림과 처연함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짧은 대사에도 삶에 밀착된 향기가 느껴지는데, 김 작가의 꼼꼼한 취재력 덕분이다. "웹툰은 잘 모르고, 제가 총각이기 때문에 육아 역시 모르고, 제약회장의 세계 역시 더 모른다"면서 "도서관을 열심히 다녔고 주변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계셨어요. 전문적인 영역의 취재는 아닌 주변의 이야기라 그래도 어렵지 않게 했습니다"며 웃었다. 
 
서울시극단 '그개' 제작발표회

서울시극단 '그개' 제작발표회

극 속 인물들의 삶은 결국 우연히 발생한 '그 개'의 사건으로 극에 달하고, 서로의 아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연한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이야기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해일은 분홍 돌고래 '핀핀'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리며 비밀스런 속내를 도화지 위에 펼쳐내는 등 동화적인 상상력이 가득하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유기견 무스탕과 셰퍼드 보쓰도 배우가 연기하는, 연극적으로 표현된다.

서울시극단 김광보 단장은 "'그 개'는 부조리하고 냉혹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린다. 그런데 밝고 경쾌하게 푼 것이 큰 미덕"이라고 했다. 김 작가는 "일단 주인공이 틱 환자라는 설정과 정보에서 느껴지는 (어두운)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면서 "그 아픔을 진지하게 다루되 너무 처지거나 늘어지지 않게, 그렇게 다룰 수 있도록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해일 역은 이지혜, 상근 역은 유성주, 장강 역은 윤상화, 선영 역은 신정원, 영수 역은 김훈만이 맡는다. '썬샤인의 전사들'을 연출한 부새롬이 이번에도 연출한다. '함익'을 연출한 김광보 단장은 예술감독으로 힘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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