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무려 2780자…사법농단 첫 구속영장 기각사유 '역대급'

등록 2018.09.20 23:11:52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유해용 전 대법 재판연구관 구속 영장 기각

법원, 혐의 개개별로 나눠 구체적 사유 밝혀

사실상 검찰 적용 혐의 전부 수용하지 않아

"범죄 요건 성립 안 돼…법리상 의문도 있어"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 사법농단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유해용 전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8.09.20.  bluesoda@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유해용 전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8.09.2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나운채 기자 = 법원이 유해용(52·사법연수원 19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2700자 이상 장문의 사유를 밝혔다. '역대급'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이례적이다.

 20일 법원에 따르면 유 전 연구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2780여 자가 넘는 장문의 사유를 밝혔다.

 허 부장판사는 검찰이 유 전 연구관에게 적용된 혐의를 개개별로 나눠 판단했다. 먼저 유 전 연구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이었던 김영재 원장 부부의 특허 소송과 관련해 재판연구관에게 문건을 작성케 하고, 이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전달했다는 혐의가 다뤄졌다.

 허 부장판사는 유 전 연구관이 사건진행 정보 등 '공무상비밀'을 누설했다는 점에 대해 대법원 판례를 들며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허 부장판사는 "형법상 공무상비밀누설죄는 기밀 그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의 비밀준수의무의 침해로 인해 위험하게 되는 이익, 즉 비밀의 누설에 의해 위협받는 국가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제했다.

 해당 정보가 공무상비밀에 해당되려면 일반인이 알고 있지 않을 것(비공지성)뿐만 아니라 누설될 경우 민주적·능률적 운영을 보장할 수 없게 될 위험이 존재하는 등 국민 이익을 위해 보호할 필요(비밀유지 필요성)가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허 부장판사는 "유 전 연구관이 작성을 지시하고 편집한 문건에는 관련 사건의 진행 경과나 상고사건의 통상적인 처리절차 등 일반적인 사항 외에 비밀 유지가 필요한 사항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징계처분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형사처벌 요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특히 허 부장판사는 유 전 연구관이 당시 소송 당사자인 김 원장 부부가 박 전 대통령에게 미용 성형시술을 해주는 등 밀접한 관계였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봤다. 또 유 전 연구관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연계됐다는 검찰의 소명이 부족하다고도 지적했다.

 이에 따라 유 전 연구관이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는 행위 자체가 위법하다거나 당시 청와대의 관심 사항에 도움을 제공하려는 부당한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허 부장판사의 결론이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 사법농단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유해용 전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2018.09.20.  bluesoda@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 사법농단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유해용 전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2018.09.20. [email protected]

유 전 연구관이 대법원으로부터 재판 기록 등 문건 원본을 무단으로 반출한 혐의에 대해서도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단도 내려졌다. 재판연구관 보고서가 관리시스템에 등록된 점 등에 비춰봤을 때 전자기록물에 해당하더라도 원본을 유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보고서 파일을 유 전 연구관에게 전달한 당시 재판연구관의 진술을 들며 유 전 연구관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이를 사용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보고서 파일이 법원기록물에 해당된다는 점을 인정할 소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절도 혐의가 적용된 부분에 대해서는 유 전 연구관이 들고 간 파일이 절도죄를 구성하는 '재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특히 대법원 자산인 인쇄용지로 서류를 출력한 점에 대해서는 범행의 의도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문건에 개인정보가 담겨 있어 관련법을 위반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사건번호와 성명 외에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을 만한 아무런 정보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며 범죄 성립 여부에 법리상 의문이 있다고 판단했다.

 유 전 연구관이 대법원 근무 당시 취급했던 사건을 변호사 개업 후 수임했다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 역시 "공무원으로 재직 당시 유 전 연구관의 직책, 담당 업무의 내용 등에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관련 증거들도 이미 수집돼 있다"며 구속의 필요성이 없다고 봤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이같이 유 전 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 사유를 장문으로 남긴 데에는 앞서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비난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