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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황주리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아...나는 산책주의자"

등록 2018.09.23 11:02:59수정 2018.09.23 11: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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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에세이 '산책주의자의 사생활' 출간

【서울=뉴시스】 황주리, 산책주의자의 사생활

【서울=뉴시스】 황주리, 산책주의자의 사생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뜻이겠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는 고등학교 시절 고독한 젊은 영혼이었던 그에게 삶의 멘토가 되었다.

  화가 황주리(61)는 초등학교 시절 화집에서 처음 만난 고흐의 '해바라기'에 영혼을 잠식당했다.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을 꼽는다면 단연 '빈 센트 반고흐'다. 고흐가 마지막 삶의 열정을 그림에 몽땅 쏟은 파리 근교의 오베르쉬르우아즈를 찾아간 1990년대 초, 방문한 고흐 묘비 뒷면에 한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써놓을 정도였다.

  이제 중견화가인 황주리는 그림에 미쳐 살다 세상을 떠난 고흐의 심정을 백만번 이해하고 고흐의 말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고 곱씹는다.

  "나는 성공하는 일이 끔직하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축제의 다음 날이다." (고흐의 편지중) 28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8년동안 800점의 그림을 남긴 고흐는 살아 생전 단 한점의 그림을 팔았다.

 황주리는 "정작 자신은 빵 한 조각과도 바꿀 수 없었던 자신의 그림이 이제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비싼 값으로 팔리는 걸 안다면 그는 무슨 말을 할 까? 그럴줄 알았다 흐뭇해할까? 또 다른 끔찍한 세상이라고 개탄을 할까?" 궁금해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지닌 고흐처럼 천천히 그림을 그리면서 저 먼 별까지 걸어가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요즘 컬렉터들은 작품이 오를 거라는 화상의 부추김으로 그림을 사서 포장한 채로 창고에 넣어두기도 한다"며 "인생은 길고 예술이 짧아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푸념도 털어놨다.

 "나는 그림이 비싼 값으로 오르리란 기대가 아니라, 정말 내 그림이 좋아서 사람들이 사는 거라면 좋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한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자식을 입양하는 기분으로 그림을 판다. 생존 작가의 그림값을 임의로 풍선처럼 부풀리기도 다반사인 현대 자본주의 시장의 필요악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게 옳은 일일까?"

 그러면서 화가로서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라고 했던 고흐의 편지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내게도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했다.

  고흐를 사랑하는 화가 황주리의 속내를 볼수 있는 책 '산책주의자의 사생활'이 출간됐다. 가족, 예술, 사랑, 여행, 나이 듦에 대해 진솔하게 들려준다.

 책 제목 '산책주의자'는 반백년 넘게 살아본 화가의 낭만에서 나온 것 같다. "오랜 세월 통용되어온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민주주의자, 민족주의자 등의 거창한 이념과 몸짓을 넘어, 아직도 빈곤과 질병과 전쟁이 계속 되고 있는 세상에서 나는 감히 '산책주의자'라 불리고 싶다"며 "내 삶의 산책은 언제나 내게 주는 선물이었다"고 했다.

 "천재지변 등이 일어나 다른 별로 이사를 가야 한다면, 이 지구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세상의 각기 다른 골목길들을 산책한 일일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도, 사랑하던 순간의 기억도 골목길을 산책하는 것과 닮았다. 이 책은 살아온 순간들 속 수없이 많은 빛나는 기억들을 한권의 책에 꽂아 놓았다."

 화가이자 소설가이고 여행가이기도 한 황주리는 세계 여행기도 빼놓지 않았다.  아프리카 탄자니아부터 남미의 볼리비아 포토시까지, 동유럽 사라예보에서 아시아 마카오까지 전 세계에 찍어놓은 그의 발자국 기록을 잔잔하게 풀어냈다.

 "쿠바에 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되도록 빨리 가길 권한다. 쿠바 사람들에게 “빨리 좀 해주세요.” 하면 “왜 빨리해야 하는데요?” 하고 묻는다.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빨리’라는 단어다. 하긴 우리는 그 ‘빨리’의 정신으로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빨리하는 일은 늘 후유증이 남는지도 모른다. 빨리 걸어온 우리가 돈을 얻었다면, 행복을 잃었다고 말하지는 말자"(246~248쪽) 파람북 출판, 1만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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