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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원용한 남북평화의 길, 연극 '오슬로'

등록 2018.10.02 18: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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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성열 감독, 전미도, 손상규

왼쪽부터 이성열 감독, 전미도, 손상규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1992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긴장이 극에 달한다. 미국이 주도한 평화협상은 번번이 실패한다. 유혈충돌은 두 지역을 더 갈라놓는다.

비참한 현실을 지켜보던 노르웨이 부부는 오슬로에서 비밀 협상 채널을 만든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국 대표자들의 회담을 극비리에 준비한다. 격의 없는 분위기로 회담 관련자들의 사이는 점점 가까워지고 그들은 결국 서로가 평화를 원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협정인 '오슬로 협정'을 다뤄 작년 영미권을 휩쓴 미국 극작가 J T 로저스(50)의 연극 '오슬로'가 아시아 초연한다. 국립극단이 12일부터 11월4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로저스는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다룬 '블러드 & 기프츠(Blood and Gifts)', 르완다 대학살을 다룬 '디 오버웰름잉(The Overwhelming)' 등 국제정치를 소재로 한 희곡들로 독자적인 입지를 다져왔다. 극단적인 대치 관계뿐 아니라 술과 소소한 대화, 그리고 농담 등을 다뤄 기존 정치극과 차별화를 꾀했다. 

블랙유머로 무장하고 '라르센'과 '모나' 부부를 내세운 '오슬로' 역시 마찬가지다. 협정 막후의 인물들을 무대 위로 불러온 실제 이야기에 위트와 극적 긴장감을 더한다. 장장 17개월의 협상 과정을 '정치 스릴러'로 풀어냈다. 덕분에 지난해 토니상, 드라마 데스크상, 뉴욕 드라마비평가협회상, 오비상을 휩쓸었다. 현재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 뮤지컬 '위키드' 제작진과 영화화를 준비 중이다.

이성열(56)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2일 "'오슬로'를 접하고 번역을 한 뒤에도 많이 심사숙고했다"면서 "과연 우리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이 감독이 국립극단에서 처음 연출을 하는 작품이다. 애초 이 감독이 극단 감독으로 처음 택한 연출작은 다른 작품이었다. 하지만 사정상 무산됐다. 작년 하반기에 번역을 마친 '오슬로'는 남북관계가 화해 분위기로 접어들기 시작한 봄에 공연화가 결정됐고, 이 감독이 연출 지휘봉도 들게 됐다.

이 감독은 "이스라엘과 팔렌스타인 분쟁과 평화로 가는 길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을까 고민했는데,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한반도 상황이 이 작품의 주제와 겹쳐졌다"면서 "적에서 친구가 돼가는 지난한 과정이 큰 줄기다. 우리나라도 그런 상황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슬로 협정 이후에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라르센과 모나의 고군분투는 의미가 있다. 로저스는 앞서 국립극단과 인터뷰에서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명언 '도덕적 세계의 활은 장대하지만 결국 정의를 향해 휜다'를 살짝 바꿔 '역사의 활은 장대하지만 결국 평화를 향해 휜다'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전미도, 손상규

전미도, 손상규

"라르센과 모나가 평화의 가능성을 발견한 이상, 그리고 나아가 개인과 세계의 변화를 엿본 이상, 어떻게 평화를 향한 투쟁을 멈출 수 있었겠냐"는 반문을 덧붙였다. 

'하나의 가능성을 향한 지난한 과정'을 작품의 주제로 정한 이 감독도 "두 적은 서로 친구가 돼 간다"면서 "과거에서 앞으로 가능성을 봐야 한다.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지 알면서,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작품에서 노르웨이 부부 라르센과 모나를 연기한 손상규(41)와 전미도(36)도 같은 믿음이다. 열정적인 사회학자 라르센을 맡은 극단 양손프로젝트 소속 배우 손상규는 자신의 배역에 대해 "권위적인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행동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덕분에 "너무 신이 난다"면서 "작품 속 모든 인물들이 살아 있다. 양손 외에 국립극단에서의 작업은 공부하고 유학 온 기분인데 이번에 특히 즐거운 시간이 되겠다는 기대감이 있다"며 흡족해했다.

그러면서 작품 속 상황을 남북한의 상황과 비교했다. "남북의 갈등에 대해 싱가포르 학생이 갑자기 부인하고 나서서 북한과 남한에 각각 아는 사람과 같이 소통 채널을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해보자"라면서 "공식적인 채널이 아닌 채널로 무엇인가 만들어볼까, 그런 종류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러면 그동안 상상도 못했던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결과물을 당장 내지 않더라도 우선 (소통을 위한) 시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살면서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오슬로' 덕분에 해방감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작고 아담한 전미도는 카리스마 있는 외교관 모나 역에 어울리지 않을 듯싶다. 하지만 연극과 뮤지컬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남자 배우 못지 않은 존재감을 뽐낸 그녀의 모나는 청량한 존재감으로 극에 리듬을 부여한다.

 그녀에게는 도전이었다. 초연을 함께 하며 전미도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작품으로 최근 공연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역시 그녀의 대표작으로 11월 재공연을 앞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등 아끼는 작품을 마다하고 '오슬로'를 택하는 결심을 했다.

전미도

전미도

"(배우로서) 고민이 되는 시점에 '오슬로' 제안이 들어왔다. 선배님들이 많은 작품이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지적으로는 나 역시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국립극단 쪽에서 해준 말씀이 외국처럼 굳이 풍채가 있고, 나이가 많은 배우가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아울러 그녀 역시 '오슬로'를 통해 "우리 남북관계도 (화합과 소통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다"고 했다. 

한국 관객들이라면 '오슬로'를 통해 자연스럽게 남북관계를 떠올릴 수 있다. 로저스로 국립극단을 통해 "뉴욕에서는 이 작품이 현재 트럼프 시대가 겪는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분쟁을 이야기하는 듯 했다. 런던에서는 어떤 면에서 브렉시트를 둘러싼 갈등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북관계의 갈등과 돌파구로 인해, 내 작품이 현시점의 서울에 좀 더 특별한 정치적 울림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손상규, 전미도 외에 연기력으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나온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재무장관 '아흐메드 쿠리에' 역에 김정호, 이스라엘 외무부의 법률 자문 '요엘 싱어' 역에 정승길이 캐스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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