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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톤 프로젝트, 마음 속 단어들과 글렌 굴드

등록 2018.10.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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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톤 프로젝트, 마음 속 단어들과 글렌 굴드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싱어송라이터 차세정(34)의 1인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의 멜로디 전개나 코드는 그만의 인장이 분명하다. 낭만적인 저녁놀, 사색의 푸른 밤, 청량한 새벽녘에서 길어 올린 듯한 감수성이 멜로디와 노랫말에 그렁그렁 맺혔다.

에피톤 프로젝트가 2014년 정규 3집 '각자의 밤' 이후 4년 만인 4일 오후 6시 발매하는 4번째 정규 앨범 '마음속의 단어들'은 그의 인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발전시킨 음악과 사운드로 가득하다.
 
에피톤 프로젝트는 "멜로디 진행과 코드로 에피톤 프로젝트 음악을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감사하죠"라면서 "이것을 어떻게 지키면서 발전시켜나갈지를 고민한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이로 인해 곡마다 붙들고, 또 붙들었다. 예를 들어 "새벽 어스름 견디고 나는 네게 가고 있어"라고 노래한 '연착'은 "간주 네 마디 때문에 한 달을 매달렸어요"라고 고백할 정도다. "임팩트 있게 전조를 시키고 싶었는데 처음에는 잘 안 되더라고요. 작업실에 갇혀 있었는데 무사히 잘 나온 것 같아요"라면서 웃었다.

에피톤 프로젝트 곡으로는 이례적으로 밴드 사운드를 느낄 수 있는 '마음을 널다'도 지난한 작업 과정을 거쳤다. "밴드와 함께 녹음 전에 합주해서 곡 자체를 익혀 놓았아요. 드럼 세트, 베이스 톤을 끊임없이 바꿔가면서 어떤 소리가 최적일지 고민했죠."

이런 사운드 실험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듣지만 제가 잘할 수 있는 음악은 있더라고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 단계씩 성숙한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에피톤 프로젝트, 마음 속 단어들과 글렌 굴드

에피톤 프로젝트는 총 11곡이 실린 이번 앨범에서 지난한 사랑, 복잡하고 무거운 내밀한 감정들에 대한 단어를 키워드로 노래한다. 그런데 서사가 있어 4계절이 모두 녹아들어 간 장편 소설처럼 느껴진다. 그는 동명의 책 쓰는 작업도 같이했다.

타이틀곡은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첫사랑'이다. 그룹 '미쓰에이' 출신 가수 겸 배우 수지(24)가 지난해 1월 발매한 첫 솔로 앨범 '예스? 노?' 수록곡 '꽃마리'를 작업한 인연으로 그녀가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이 노래는 "사랑은 참 외로워. 삶이란 늘 어려워"라며 "가슴 시리게, 사랑했었던 날 있었어"라고 지난날을 반추한다. 건반이 주가 되고 비(rain)를 소재로 한, 가장 에피톤 프로젝트 본질에 가까운 노래 '소나기'에서도 "왜 과거형 문장으로 남은 걸까?"라며 과거를 돌아본다.

앨범 타이틀처럼 일상에서 에피톤 프로젝트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담긴 단어들로부터 잉태한 곡들이다. "아무래도 살다 보면 감성에 무뎌지잖아요. 그 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잊게 되죠.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이런 감정을 잊고 살았지' '그때는 이런 것이 좋았지'라는 생각들이 떠올랐어요. 그런 생각과 감정들을 한 번 다시 꺼내 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2006년 발매한 1집을 객원 보컬로 채운 에피톤 프로젝트는 본인 목소리로 2집을 꾸렸다. 3집에서는 다시 객원 체제를 도입했다. 이번 4집에서는 다시 본인 목소리가 중심이다.

"저보다 용모 준수하고 잘하는 사람이 많아 그분들을 선수로 기용하고 싶은 바람은 항상 있어요. 제 목소리의 보컬로서 한계를 스스로 알거든요. 그런데 이번 음반은 자체가 내밀한 이야기라 제 목소리를 담았죠."

4년 전 만난 에피톤 프로젝트가 소년 감수성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청년의 그것에 가닿았다. "다들 아픈 마음 감추며 사는 걸. 괜찮아, 어른이 돼 가는 거야"라고 노래한 '어른'처럼 현실의 아픔을 인정하고 승화하며 더 나은 자신이 돼 간다. "'어른'은 스스로 던진 질문 같은 곡이에요.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나'라는 고민이 있었거든요. '대단한 업적'을 달성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음악 작업을 하고, 조금씩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때그때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에피톤 프로젝트, 마음 속 단어들과 글렌 굴드

에피톤 프로젝트는 '015B' '토이' 등 작곡가가 중심이 된 팀 계보를 잇고 있다. '선인장' '이화동'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새벽녘' 등 히트곡을 내며 감성 음악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에피톤 프로젝트는 "한 때는 이런 수식이 족쇄 같은 느낌도 있었죠"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지금은 뿌듯함이 더 크다.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을 때 MC이자 토이를 이끄는 작곡가인 유희열(47)에게 "소속사 후배에게 곡 좀 줄 수 있냐?"는 말을 들었다. 존경하는 선배에게 그런 부탁을 받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는 이야기다. 그가 "지금하는 일 자체가 행복해요. 당장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해도 조바심을 내지 않습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런 가운데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이번 앨범 마지막 트랙 '자장가'가 보기다. 그랜드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고, 스스로 허밍을 하며 녹음한 이 곡은 투명한 감성으로 유명한 괴짜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를 떠올리며 작업한 곡이다.

"당연히 제가 글렌 굴드처럼 연주할 수는 없어요. 하하. 그런데 그런 느낌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만족하냐고요? 이 곡을 포함해 앨범에 실린 곡들에 대한 평가는 기다려주신 분들이 하는 것이잖아요. 저는 그저 좋은 음악을 잘 만들려고 노력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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