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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수사·과도한 영장 신청…"경기북부청장이 사과 해야"

등록 2018.10.18 14:5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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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정무적 판단에 대해서는 사과해야" 내부 목소리도 커져

【고양=뉴시스】이경환 기자 = 김기출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은 12일 고양경찰서에서 열린 수사회의에서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서 철저한 규명을 해달라"고 지시했다. 이날 회의는 고양경찰서에 설치된 지방청·고양서 전담수사팀에서 진행됐다. 2018.10.12.(사진=경기북부지방경찰청 제공) lkh@newsis.com

【고양=뉴시스】이경환 기자 = 김기출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은 12일 고양경찰서에서 열린 수사회의에서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서 철저한 규명을 해달라"고 지시했다. 이날 회의는 고양경찰서에 설치된 지방청·고양서 전담수사팀에서 진행됐다. 2018.10.12.(사진=경기북부지방경찰청 제공) [email protected]

【의정부=뉴시스】이경환·이호진 기자 = 고양 저유소 화재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난 가운데 피의자 스리랑카인 A(27)씨에 대한 무리한 수사와 과도한 영장신청을 스스로 인정한 경찰에 대해 공개적인 사과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을 수사한 고양경찰서가 중실화 혐의로 영장을 신청하는데까지는 정무적인 판단을 한 김기출 경기북부지방경찰청장이 사과를 해야 한다는 내부 직원들의 여론도 조성되고 있다.

 18일 경기북부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은 화재 발생 다음날인 8일 A씨를 긴급체포한 뒤 이튿날 중실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풍등과 화재 발생의 인과관계 소명 및 중실화 혐의 적용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차례 반려했다. 경찰이 보완수사를 통해 구속영장을 재신청했지만 같은 이유로 검찰 단계에서 기각됐다.

 경찰청 국정감사에서도 민갑룡 경찰청장은 풍등을 띄운 외국인 노동자 수사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초동수사가 좀 아쉽기는 하다"고 답변했다.

 민 청장의 답변으로 경찰 스스로도 수사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또 뉴시스 취재진이 지난 11일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 안시준 교수의 도움을 받아 경찰이 공개한 CC(폐쇄회로)TV 영상 편집본을 분석한 결과 스리랑카인 A(27)씨가 발화 시점에는 자리를 이미 떠난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민갑룡 경찰청장이 1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해 김한정 의원의 질문에 답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2018.10.11.myjs@newsis.com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민갑룡 경찰청장이 1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해 김한정 의원의 질문에 답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email protected]

결국 A씨는 긴급체포 시한 만료로 풀려났지만, 저유소를 운영하는 대한송유관공사 측이 풍등이 떨어져 잔디밭에 불이 붙은 뒤 탱크가 폭발하기까지 18분 동안 화재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등 관리부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로 무리한 수사를 펼친 경찰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찰은 영장이 기각된 뒤에야 화재 당시 영상이 찍힌 대한송유관공사 CCTV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 의뢰하고, 풍등을 통해 화재가 발생한 과정을 입증하기 위한 현장 조사와 현장 관계자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화재 후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이를 밝혀줄 풍등의 흔적을 찾지 못하면서 인과관계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경찰이 풍등과 화재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에 실패할 경우 중실화 혐의 적용은 물론, 스리랑카인 A씨의 처벌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중실화죄는 업무상 과실이나 중대한 과실로 인해 공용 건조물 등을 태워 훼손했을 시 최고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중실화 혐의를 적용하기 위한 ‘중대한 과실’ 여부도 경찰의 설명으로는 부족한 상황이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A씨가 회사로부터 저유소에 기름이 저장돼 있고 주의해야 한다는 교육도 받지 못했으므로 예측 가능성이 없어 과실도 소명하기 어렵다"며 "중실화의 중대한 과실은 조금만 주의했어도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이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양=뉴시스】고범준 기자 = 7일 오전 11시께 경기도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의 지하 탱크에서 불이 나 소방 당국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불이 난 곳에는 총 4개의 지하 탱크가 있고 이 중 1개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소방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2018.10.07. bjko@newsis.com

【고양=뉴시스】고범준 기자 = 7일 오전 11시께 경기도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의 지하 탱크에서 불이 나 소방 당국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불이 난 곳에는 총 4개의 지하 탱크가 있고 이 중 1개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소방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2018.10.07. [email protected]

익명을 요구한 경찰 관계자는 "지휘보고 체계에 따라 김기출 경기북부경찰청장에게 당연히 보고가 됐을 것이고 수사개입까지는 아니지만 구속영장 신청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이 시점에서는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된다"며 "내부에서도 여론이 분분하지만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도 "다른 사유도 아닌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검찰 단계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사실만 봐도 경찰 입장에서는 창피한 일"이라며 "피의자에게 사과를 할 일은 아니지만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경찰들을 위해서라도 청장이 이 내용에 대해서는 해명을 하거나 잘못이 있었다면 국민들에게 사과는 해야 할 부분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시민 김진수(45)씨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정상적인 비자를 발급 받아 성실하게 근무하는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유치장에 가둔 것에 대한 피해 회복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A씨가 피의자가 맞다는 전제 하에라도 무리한 수사에 대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만큼 경찰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밝히는 게 맞다고 판단된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돼 김기출 경기북부경찰청장에게 입장을 들으려 여러 경로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다만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측은 "고양 저유소 화재는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고, 스리랑카인 A씨 역시 무혐의가 아닌 피의자 신분으로 출국이 금지된 상태"라며 "평소 직원들의 수사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고, 아직 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지금 단계에서 언급하는 것 역시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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