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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포럼]‘국가예술기관과 국립극장의 동시대화 전략’

등록 2018.10.19 14:42:02수정 2018.10.30 09: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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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4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국립무용단 신작 '춘상' 제작발표회에서 안호상 국립극장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춘상'은 봄에 일어나는 다양한 상념을 뜻하는 말로 스무살 청춘들이 겪을 법한 사랑의 감정들이 1막 8장 구성으로 펼쳐지는 작품이다.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배정혜 안무, 정구호 연출. 2017.09.04.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4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국립무용단 신작 '춘상' 제작발표회에서 안호상 국립극장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춘상'은 봄에 일어나는 다양한 상념을 뜻하는 말로 스무살 청춘들이 겪을 법한 사랑의 감정들이 1막 8장 구성으로 펼쳐지는 작품이다.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배정혜 안무, 정구호 연출. 2017.09.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문화예술시장은 글로벌화하고 있는데 반해 콘텐츠수요는 로컬화로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한국의 현 문화예술기조가 이 추세에 강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 세계무대에서 한류가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안호상 홍익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 원장(전 국립극장장)은 19일 안민정책포럼(이사장 백용호)이 주최한 조찬세미나에서 ‘국가예술기관과 국립극장의 동시대화 전략’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문화예술이 최근 세계무대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마케팅의 글로벌 전략과 콘텐츠의 로컬화 전략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 원장은 이같은 한국 문화예술 기조는 21세기 문화시대에 한류를 꽃필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고 있지만 어느순간 한번 무너지면 갈라파고와 같은 외로운 섬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고 분석했다.

 안 원장은 현재 한국의 뮤지컬만 보더라도 한해 140편 정도가 창작되는데 수입뮤지컬로 재미를 본 뒤 창작뮤지컬로 수익을 털어 망하는데도 창작 의욕과 열기가 꺾이지 않은 채 세계 최고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한국문화예술계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드러냈다. 안 원장은 문화예술계에 국가개입이 너무 심해 갈수록 국가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와 함께 담론위주의 문화정책이 지배하면서 소비현장과 괴리되는 안타까운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시스는 이날 안 원장이 발표한 내용을 독점 게재한다. 안민정책포럼은 고(故)박세일 교수를 중심으로 만든 지식인 네트워크로 1996년 창립됐으며 좌우를 아우르는 통합형 정책 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는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했던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50년 문을 연 이래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산실로 상징적 역할을 해왔던 국립극장은 2012년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제를 도입한 후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며 다시 우리나라 예술의 중심으로 다가가고 있다. 

 '변강쇠 점찍고 옹녀', '트로이의 여인들', '장화홍련', '메디아', '흥보씨' 등 소재와 연출에 과감한 변화를 준 창작 창극과 '적벽가', '심청' 등 국립 창극단의 전통신작이 연이어  작품성과 흥행에서 성공하며 변화를 선도하였다면 국립무용단은 2012년 이후 제작한 '묵향'과 '향연'에 관객의 반응이 쏟아지며 자신감을 회복하였다.

 해외 안무가를 초청해 만든 신작 '회오리'와 '시간의 나이' 등도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으며 지난 60여년 동안 국립극장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대표레퍼토리 부재라는 오명을 벗고 ‘국립극장의 부활’을 알리게 되었다.


 국립 무용단과 창극단이 국내에서 거둔 성공은 국제무대와 해외 페스티벌의 초청으로 이어지게 된다. 2015년 무용 '회오리'가 칸느 댄스페스티벌에 초청받은 것을 필두로 이듬해에 '묵향'이 홍콩아트페스티벌에 그리고 창극 '변강쇠 점찍고 옹녀'가 프랑스 떼아뜨르 드 라빌에서 공연되는 등, 연이어 국제무대에서 소개되기 시작한다.

 작년과 금년에는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이 싱가폴 아트 페스티벌에 이어 런던국제 연극페스티벌, 암스테르담의 홀랜드페스티벌 그리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국제 공연예술페스티벌까지 3주 연속 이어서 공연하며 전회 매진을 기록하는 성과와 함께 유럽 예술계를 흔들고 돌아왔다.

 그러면 국립극장의 시즌제가 시작하자마자 성과를 내고 국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성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있었음에도 문화적 성장에서 아쉬움을 느끼던 국민적 정서가 바탕에 깔려있었던 것이 아닐까.  다른 한편으론 국립극장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낙관보다 비관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었던데 대한 반전에서 오는 놀라움 등 그만큼 국립이 처한 객관적 조건이 녹록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국립극장의 존립을 위협하는 그 녹록치 않은 상황은 무엇이었는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 외적 환경과 내적 요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이전에 없었던 규모를 갖춘 경쟁자의 등장이다. 예술의전당과 LG아트센터는 최신의 하드웨어와 전문화된 경영시스템 프로그램 인력에서 국립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출발하고 있었다. 이후 오랫동안 변화된 환경에서 본인들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던 데서 짐작컨대 오랜 세월 국내 공연계에서 단맛을 누려온 국립으로서는 그 변화가 어디에서 오고 있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두번째는 오페라 발레등 서양 예술장르가 경제 성장으로 넉넉해진 문화 소비 흐름을 타고 순식간에 외연을 넓히고 있는데 국립은 자신의 활동 역역을 전통의 틀안에 가두고 자신의 입지를 스스로 좁히고 있었다. 그 결과 기득권을 가진 소수는 그 폐쇄된 영역에서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극장이 관객과 점차 유리면서 장기적으로는 극장의 본질을 상실해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세번째 위협요인은 국립의 본질이자 핵심역량이어야 할 내부의 전속단체 그 자체였다. 예술의전당이나 LG아트센터와 달리 국립극장은 전속단체와 함께 출발하였다. 한국적 순수예술의 창작과 제작이 국립극장의 미션이자 본질인 것이다.

 그럼에도 극장의 단체는 극장의 강점은 살리는데 기여하기보다 재정과 프로그램의 경직성만 가중시키며 오히려 극장운영에 발목을 잡게 되었다.

 그밖에 정부가 나서서 극장 기능을 특성화하고 극장경영의 재량권과 자율성을 높여주고자 도입한 책임운영기관제도는 국립극장에게 약이 아니라 독이 되고 말았다.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극단등 대중성을 좀 확보할 만한 단체는 모두 재단법인화해서 내보내고 나니 극장 안에는 국립창극단, 무용단, 국악관현악단 이렇게 상대적으로 흥행에 불리한 비인기 단체만 남게 된다. 이들 단체에게 책임운영기관으로서의 자율권이란 당근을 준다한들 총 관람객수와 객석 점유율 그리고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자체 수입비율 등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평가지표를 충족하기 위한 방안으로 방문객수와 관람객수를 늘리는데 편리한 뮤지컬대관과 야외 공연 등 비본질적 영역의 비중을 점차 높이는 쪽으로 극장 운영이 기울어지고 말았다.

 그럴수록 외부 예술계와 언론, 오피니언 그룹의 비판은 높아져만 가고 안으로는 예술단체와의 노사 분쟁이 더욱 가열되고 있었다.

 결국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서 2012년 국립 제작극장은 국립단체중심의 프로그램으로 복귀를 선언하고 레퍼토리시즌제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단체를 가진 모든 제작극장이 꿈꾸는 프로그램 방식임에도 레퍼토리 시스템을 그동안 추진하지 못한 데는 그 만한 배경이 있었을 것이다.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른 변명을 하지만 요체는 해마다 재공연으로 무대에 올릴만한 인기 있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번 신작에 오는 뻔한 관객만으로 할 수 있는 작품 수는 고작 2편정도가 전부였다. 해를 거듭해도 새로운 시도는 불가능하였고 결국 정체와 침체의 원인이 되었다. 따라서 시즌제는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단체별 작품수를 늘리는 것과 새로운 신규 관객을 만들기 위한 전략에서 출발하였다.
 
 제일 먼저 1년에 한 두 편 하던 각 단체의 년 간 공연 작품을 세 네 배로 늘리도록 하였다. 

 이전에 참여하였던 예술가들 외에 정구호, 한태숙, 이소영등 타 장르 예술가들과 테로사리넨, 안드레아 서반, 옹켄센등 해외 예술가들을 새롭게 참여하도록 하여 이들의 도움으로 국립이 외면해온 동시대성을 다시 충전하도록 유도하였다.

 기획자에게 가장 큰 고통과 두려움은 늘어난 공연의 객석을 채우는 일이다. 시즌제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순간부터 마음속의 공포는 창극과 한국무용 그리고 국악 공연으로 어떻게 1년간 객석을 채울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더구나 유료관객이 아닌 초대 관객으로 객석을 채운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극장에 해로울 뿐 아니라 설사 한다 해도 한 달에 몇 번이지 1년 내내 초대 관객으로 시즌을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시즌 시작과 함께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첫번 제작 공연인 창극 '장화홍련전'부터 매진 사례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전에 오지 않던 관객이 극장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반신반의하던 언론의 태도가 달라지고 연출 부탁에 소극적이던 국내 유명 연출들이 서로 불러달라고 청탁을 넣어왔다. 이전의 해오던 관행을 고집하며 반발하던 단원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1년에 7편 정도하던 자체 기획 작품을 첫해에 23편으로 늘렸는데도 객석의 전체 점유율은 65%에서 89%로 증가하고 유료 점유율도 43%에서 62%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시아의 문화가 세계의 주류 문화가 되는 시기가 곧 다가올 것이다. 그때에 중국의 문화가 세계문화의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홍콩에서 '묵향'공연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데 중국관객이 우리 무용단의 공연을 보고 자기들이 만든 전통이 한국에서는 예술로 승화되었다며 무척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일본의 가부끼나 노는 이미 세계인들에게 일본의 고유 예술장르로 잘 소개되었다. 중국의 경극이나 곤극이 세계 예술의 중심에 서게 될 때 혹시 창극이나 무용 같은 우리의 고유예술이 중국예술의 아류로 세계인들에게  인식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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