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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 '블랙 컨슈머' 몸살...소비자 분쟁조정 '악용'

등록 2018.10.23 06:23:00수정 2018.10.24 13: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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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피해건수 해마다 늘지만 '블랙 컨슈머' 가려내지 못해

운임 규정·천재지변 무시...상식 밖 금액 요구하며 억지쓰기도

국내항공사들, 국제적으로 면책 보장된 정비 지연도 보상해와

국제법·국내법 위 '떼법'...비용증가에 전체 소비자 불이익 초래

【그래픽=뉴시스】 항공사 승객 피해구제 접수 추이. 자료:2017 항공교통서비스 보고서, 한국소비자원

【그래픽=뉴시스】 항공사 승객 피해구제 접수 추이. 자료:2017 항공교통서비스 보고서, 한국소비자원

【서울=뉴시스】김종민 기자 = #1. 최근 국적 항공사를 이용했던 승객이 본인이 들고 있던 커피를 아이에게 쏟는 일이 발생했다. 기내에서는 본인의 잘못임을 인정했으나,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갑자기 말을 바꿨다. 승객 본인이 아닌 승무원이 커피를 쏟았다고 거짓 주장을 하기 시작한 것. 항공사에 보상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거짓 주장을 올리는 한편 언론 유포와 소송을 언급하며 항공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2. 2017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인천공항에 갑작스레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기상악화로 항공기 운항이 어려워 부득이하게 지연 출발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일부 승객들은 숙박비, 교통비, 보상금 등을 요구하며 단체로 거세게 항의했다. 천재지변으로 보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승객들의 집단 항의에 항공사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2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소비자 분쟁조정 기능이 오히려 이를 악용하는 일부 소비자들로 인해 막무가내 '떼법'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날로 소비자의 권익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를 악용하는 이들도 함께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들을 구분해내지 못하는 한국 소비자원의 소비자 실태 조사에도 의문을 표하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초법적인 요구를 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피해 접수 건수로만 분석하는 조사 결과들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소비자의 권리에 대해 정확히 알리고, 이에 더해 그 권리의 한계까지 알려야 전반적인 소비자의 권익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매년 늘어나는 소비자 피해건수...'블랙 컨슈머'는 가려내지 못해

한국 소비자원에 접수되는 항공 관련 소비자 피해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2017 항공교통서비스 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되는 피해구제 현황은 지난해 잠깐 주춤하긴 했지만 매년 30% 이상 늘고 있는 추세다. 국적항공사들보다는 국내에 취항하는 외국 항공사들의 피해구제 접수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상황이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나는 소비자 피해구제 신청 중 억지 요구를 하는 블랙 컨슈머들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이들은 정해진 법률과 기준에 따르는 대신 실제 피해를 입은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이나 상식 밖의 요구를 하며, 막무가내로 목소리를 높여 보상을 받아내고 있다.

이미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고시 등을 개선하며 정비 면책 조항 문구 수정, 항공권 수수료 부과 관련 약관 점검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항공사 고객들의 권익 증진에 나서고 있다. 항공사들도 이에 맞춰 항공사 귀책으로 탑승이 거절된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보상금(DBC, Denied Boarding Compensation)을 증액하는 등 적극적으로 승객들의 권리 향상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피해구제 접수 건수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항공업계에선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분쟁 조정 기능이 일부 블랙 컨슈머들의 요구 창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운임 규정도 무시한 환불 요청...법적 면책 보장된 정비 지연도 보상 요구

지난 2017년 대한항공에 접수된 소비자 분쟁조정 접수 건수는 23건이다. 그 중 12건은 환불 위약금 또는 환불 서비스 수수료를 면제해달라는 요청이고, 8건은 정비로 인한 지연에 대해 보상해달라는 요구다.

항공권 구매 시 운임 규정에 따른 안내에도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사정을 내세우며 막무가내로 위약금이나 수수료를 면제해달라는 요구가 대부분이었다. 또 특가 운임의 경우 이미 일정부분 소비자 편익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특가 항공권에도 수수료를 면제해 달라는 요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비 지연도 마찬가지다. 국제적으로 정비로 인한 지연의 경우, 항공사가 합리적 조치를 다 했다고 증명할 수 있을 경우 책임을 면해준다.

항공사들의 다자간 조약인 몬트리올 협약에 따르면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조치를 다하거나, 합리적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 경우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항공운송사업자의 면책 범위를 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법도 몬트리올 협약을 준용하고 있다. 상법 제907조 1항에도 손해 방지를 위한 합리적 조치를 다했거나, 그 조치가 불가능했다는 것을 증명할 때 책임을 면한다고 명기하고 있다.항공사업법에도 동일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항공사업법 12조 1항에 따르면 안전운항을 위한 정비로써 예견하지 못한 정비에 대해서는 면책이 적용된다.

이와 같이 국제적인 조약이나 국내법에 이와 같이 정비 관련 면책 조항이 있지만, 실제로 국적 항공사들은 정비로 인한 지연편 탑승객에 대해 다양한 보상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연 시간에 따라 승객들에게 식비, 교통비를 비롯해 호텔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일본항공 등 일부 해외 항공사에서는 정비로 인한 비정상 운항에 대해서는 아예 보상을 해주지 않는 곳도 있다.

면책 조건이 있음에도 다양한 보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항공사의 입장에서는, 더 큰 보상을 원하는 일부 소비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것들이 곧 소비자 분쟁 조정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합리적 소비자 권리와 '떼법' 구분해야 제대로 된 소비자 권익 가능

 막무가내식 요구와 합리적 요구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항공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업계 일각에선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분쟁조정이나 관련 조치들이 이를 악용하는 블랙 컨슈머들을 위한 '떼법'으로 전락해버렸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고객의 권리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그에 걸맞는 강력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 미국도 항공사들의 책임의 한계와 소비자의 권리을 명확히 구분지어놨다.

미 교통부의 항공여행 소비자 가이드에는 "정시 운항을 불가능하게 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기상악화, 항공 교통 지연, 정비 문제 등은 예측하기도 어렵고, 항공사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고 강조한다. 항공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과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명확히 구분해 합리적인 인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국내에선 불가항력적이며, 항공사의 통제 영역을 벗어난 상황에도 '소비자 권리'를 내세우며 책임을 묻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권리 행사와 막무가내 요구를 구분할 수 없을 때, 그 피해는 기업뿐 아니라 실제 피해를 입은 선의의 피해자들에게 까지 돌아가게 된다"면서 "막무가내 요구를 하는 피해자들을 위한 구제 범위가 늘어나면, 그와 관련된 사회적 비용이 늘어 결과적으로 소비자 전체에 대한 불이익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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