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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관 경영이야기⑧]오너 경영이 더 바람직하다, 전문 경영보다

등록 2018.11.03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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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이병철(1910~1987)

기업가 이병철(1910~1987)

【서울=뉴시스】 현명관의 '경영 이야기' <8>

복합화, 융합화를 해야 합니다.

경쟁력 판단의 주체는 소비자, 고객입니다. 고객이 경쟁력이 없다고 하면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을 수 없고 변명도 필요없습니다.

그렇다면 고객은 어떤 것을 선호하고 어떤 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어떤 때 관심을 나타낼까요.아마 새롭고, 편리하고, 상대적으로 빠르고, 합리적인 가격이고, 디자인이 산뜻하고 등등일 때일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까, 모든 기업이 연구 고민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복합화·융합화'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습니다. 편리하고 빠르면서 동시에 상대적으로 큰 만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야흐로 융합·복합화의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한가지 기술, 한가지 서비스, 한가지 기능만으로는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산업과 산업, 인문학과 과학기술, 심리학과 과학 등 산업과 학문간 벽이 허물어졌고 또 그래야 비로소 경쟁력이 생길 수 있는 시대입니다.

로봇과 제조업의 복합화는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됐습니다. 인공지능, 로봇과 생산설비 및 가전기기 등 홈설비와의 융복합화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단순한 기계기술 위주의 자동차는 이제 고물이 됐습니다. 전자기술, 환경에너지 기술, 인체공학적 기술이 융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기술까지 접목하여 무인 전기자동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술적 융복합에 보험, 금융, 정기점검과 수리, 애프터서비스 등 서비스 체계까지 융합되지 않으면 자동차는 경쟁력이 없어집니다.

주택 또한 레이아웃 등 설계가 잘 되어 있고 좋은 건축자재를 쓰고, 시공을 잘하고, 이런 것들만으로는 경쟁력이 없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조경, 경비 등 안전관련 장치와 서비스, 에너지 절약, 헬스클럽 등 건강관련 설비와 수리 등 주택관리 종합서비스 체계까지 갖춰야 비로소 경쟁력을 갖추게 됩니다.

 최근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주거공간과 같은 장소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편익시설을 복합화, 융합화시키는 추세입니다. 유치원과 학교 등 교육시설, 병원과 약국 등 의료시설, 은행과 보험 등 금융시설, 쇼핑시설, 주민센터 등 공공서비스 시설, 회의와 미팅 시설, 음식과 숙박 시설 등을 한 장소로 집결시키는 것입니다.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처음 기획할 때 이런 복융합화된 최신 주거공간의 샘플을 만들려고 했습니다만, 인허가와 인근 주민들과의 갈등 때문에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부동산중개업도 매매, 전월세를 알선하는 전통적 중개행위만으로는 경쟁력이 없습니다. 이사와 관련된 모든 서비스, 예컨대 도배와 인테리어 공사, 매매 등 자금알선, 이사 전문업체 알선, 수리·수선업체 알선 등을 종합적으로 일거에 해결해 줘야만 경쟁력이 생깁니다.

여기에 시사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복합화, 융합화 추세에 맞춰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방법과 조직도 이런 경향에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업조직은 이런 추세를 따라가고 있습니까. 우리 정부조직은 어떤가요. 구태의연한 과거 기능조직 그대로인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기업의 예를 든다면 마케팅과 판매, 구매와 협력사 관리, 회계와 재무관리, 기획과 홍보 등 기능별 편제가 보통이고 정부도 주지하다시피 국방, 외교, 교육, 문화관광 등 기능별 편제입니다)

이런 편제로는 지금 시대에 기동성 있게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현재 기업이나 정부가 직면하는 과제는 종전에 비해 훨씬 그 성격이 복합적이고 융합적입니다. 따라서 한 두 부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저출산 문제는 아동교육, 주택, 근로조건과 환경, 보육정책과 시설, 출산 의료, 출산 후 복직이라는 재취업 등 복합적인 사안들이 얽혀있는 것이므로 전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예산과 시간만 낭비하기 쉽습니다. 기업의 경우에도 석유 정제시설 플랜트를 수주하려면 석유 정제시설의 설계, 엔지니어링, 설치하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준공후 가동, 운전과 원료인 원유구매, 생산제품인 석유류 판매, 심지어 이 모든 것에 소요되는 금융 등을 일괄 패키지화해 유리한 조건으로 제시해야만 합니다.
기업가 이건희(76)

기업가 이건희(76)

따라서 기업이나 정부 조직도 이런 경향에 맞게 개편되어야 할 것입니다. 태스크별로 그 과제와 관련된 모든 기능을 한곳에 집중하여 편제하자는 것입니다. 일본의 '북방영토 담당부서'가 보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

 위에서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것들을 몇 가지 얘기했습니다만, 이 모든 것은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 고민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미국 워싱턴 메모리얼파크(6·25 참전 미국병사들을 위한 추모공원)에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공짜란 없습니다. 노력한만큼, 고민하고 연구한만큼, 그 결과는 있게 마련입니다.

'한강의 기적'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피땀 흘려 일한 결과입니다. 머나 먼 독일의 병원과 광산에서, 섭씨 40도의 뜨거운 중동 사막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베트남 전쟁터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오직 잘 살아보자는 염원으로, 한을 풀기 위해 세상에서 제일 열심히 일한 결실입니다. 한강의 기적이 아니라 '한강의 필연'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열심히 합니까. '내 것'일 때 또는 일한 결과가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할 때 열심히 합니다. 주인의식이 있을 때 열심히 합니다. 호텔에 근무할 때 이병철 회장과 사장단 회의가 있었는데 당시 주제가 '회장인 나하고 사장단 여러분하고 왜 이렇게 생각의 차이가 많으냐'는 것이었습니다. 원인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주인의식의 차이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으로 근무할 때 1주에 2, 3번은 새벽 1시나 2시께 전화가 걸려 오고는 했습니다. 저는 잠을 자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회장은 그 시간에 여러가지 고민, 계획, 구상 등을 하다가 저를 부르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열심히 하는 사장, 비서실장이라고 하더라도 주인인 회장만큼 고민하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잘 때는 잡니다. 여기에 주인인 오너와 전문경영인간 차이가 있습니다. 주인의식에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도전정신, 의욕, 능력, 도덕성 등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오너 경영인이 전문 경영인보다 바람직하다고.

문제는, 회사 일을 회장 혼자 할 수 없는 것이고 구성원들이 열심히 해줘야 할텐데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열심히 하도록 할 것인가, 단순한 직장인으로서 급여를 받고 일하는 구성원들이 어떻게 주인의식을 갖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모든 경영인들이 고민하는 공통과제입니다. 매우 유능한 경영인이라고 할지라도 주인이 아닌 회사원들을 주인으로 둔갑시킬 수는 없는 것이고, 주인 아닌 사람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해결방법은 '최면'입니다. 주인은 아니지만 주인인 것처럼 또는 최소한 주인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그 조직 구성원들은 열심히 일합니다.
 
 '경영은 최면'인 이유입니다. 스톡옵션, 소사장제, 이익공유제(profit sharing), 종업원지주제, 사내벤처제도 등은 다 이를 위한 방안들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교육, 경영인의 솔선수범과 언행일치, 그리고 관심과 정성일 것입니다.

전 삼성물산 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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