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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미래에는 정신이 건강하길

등록 2018.11.02 16:3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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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내가 살아야 할 목표나 의미를 찾을 수 없어서 우울증이 온 거 같아요.” 내 앞에서 자살시도로 응급실을 다녀온 청년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 청년의 말에 내 삶의 어떤 구석을 갖다 붙이려고 해도 닿을 수 없는 큰 괴리를 느꼈다. 내 삶에서 목표는 일부러라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삶의 의미는 나중에라도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가 가능했다. 삶이란 나에게는 의지와 여건의 문제였지만 그 친구에겐 생존의 문제였다. 세대 차이라고 치부하기엔, 꼰대 세대와 ‘요즘 것들’의 차이라고 설명하기엔 무기력했다. 힘내라고 등 두드려 보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그랬다. 그 친구는 아팠다. 상담과 멘토링이 아닌 치료가 필요했다. 문제는 이런 청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자살, 우울증과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은 더는 연예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부러 찾지 않았으나 언제부터인가 내 주변에는 마음이, 정신이 아픈 친구들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양극성 장애(조울증) 같은 기분장애, 경계성 장애 같은 인격장애, 자해, 사회부적응증부터 질병으로 규정되지 않는 여러 모습의 정신병리 증상을 가진 많은 청년을 보게 되었다. 최근 채용과정에 참여해서 여러 청년의 이력서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경력상의 이런저런 공백들이 드물지 않았다. 고시 준비, 공무원 시험 준비 등의 이유도 많지만, 마음의 병으로 인한 경력단절들은 유난히 내 기억에 선명하다.

우리의 마음이, 정신이 아프다. 그동안 우리는 육체적인 건강향상을 통한 수명 연장에 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13년 OECD 34개국 평균 기대여명이 이미 80세를 넘긴 가운데 특히 2030년 한국 여성의 기대여명은 세계 최초로 90세를 넘길 것으로 네이처지(誌)의 한 연구는 예상했다. 하지만 우리의 “잘살아 보세” 경제발전 과정에서 우리의 내면이 윤택해지는 건 뒷전이었다. 경제적으로 윤택하면 우리의 내면도 자동으로 좋아질 것으로 생각해 왔던 걸까. 그러나 정신건강을 나타내는 여러 지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준을 넘어 경고신호를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13년 만에 OECD 자살율 1위에서 2위로 내려왔는데 이는 리투아니아의 편입으로 인한 비자발적 2위였다. 문제는 다른 국가들은 하향 추세인 데 반해 한국은 지속적인 증가추세라는 점이다. 2017년 기준 한국에서는 하루 약 40명이 자살을 했다. 수년간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었으며 자살시도자는 10~40배인 약 52만 명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살을 진지하고 고려하는 사람들은 그의 열 배가 넘는다. 노인들은 더욱 비참하다. 정신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수명 연장은 오히려 떨치고 싶은 짐이 되어버렸다. 65세 이상 노인 자살율은 미국의 3.5배, 일본의 2.3배에 달하고 있으며 노인층의 우울증과 치매는 지속적인 증가추세이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8조 원을 넘어섰다.

정신건강 문제는 우리의 미래를 좌초시킬 암초이다. 몸은 정직하다. 사회의 궤적은 몸에 흔적을 남기고 정신에 새겨진다. 뒤르켕이 100년 전 “자살론”에서 자살이 사회적 병리 현상임을 밝혔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 우리 사회와 가정, 학교는 올바른 지식이 부족해서 우울증 등을 병으로 인지하기 어렵게 되니 조기 예방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여전해서 본인이나 가족들이 부인하거나 치료에 매우 소극적이다. 그렇다 보니 한국은 OECD 항우울제 처방에 있어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혹시나 채용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치료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건강보험 급여도 받지 않는다. 지역사회의 치료나 돌봄의 역량은 매우 미흡해서 정신병원이 아니면 가정에서 돌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사회에 유리된 정신질환자들에 의해 일어나는 범죄는 일반인에 의한 범죄율에 비교해 극히 낮음에도 사회에서 더 두려운 범죄로 인식된다. 최근 심신미약으로 인한 흉악범죄 감형 논란은 정신질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사회적 낙인 현상을 악화시키고 있다.

미래에는 우리 정신이 건강할 수 있을까? 아마도 빠른 시일 안에 이러한 추세가 바뀔 것 같지 않다. 많은 미래학자가 예측하듯이 미래에 기술 자체는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되겠지만 그것이 사회도 비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더욱 빠른 속도로 진화해 나갈 것이고 정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경쟁은 더욱 심화 되는 가운데 전 지구적인 무한경쟁 속에서 효율성과 비용효과성 만이 생존의 최고 덕목이 될지도 모른다. 사회는 더욱 다원화, 개인화, 파편화될 것이고 우리의 전통적인 관계들도 해체되고 피상화 되어 갈 것이다. 그때에는 기술과 자본, 정치의 결합으로 인해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양극화 될 것이며 이것이 사회적 격차뿐만 아니라 건강 격차를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미래사회의 방향을 정신건강에서 찾아야 한다. 얼마 전 국회 미래연구원에서 분석한 미래 관련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휴먼(human)이 최다빈도 연관 단어였으며 정신건강 관련 단어들이 큰 덩어리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기술도, 사회도 모두가 정신적으로 안녕할 수 있고 생애 동안 지속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는 성장과 효율 아래 가족, 생태, 삶의 질 등의 다른 가치들을 훼손하면서 급격하게 성장해 왔다. 성장과 효율 만능주의 사회에서 정신질환은 무능력과 의지박약으로 환원되고 개인의 탓으로 자연스레 귀결된다. 아픈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손쉽게 대체된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그때의 빚을 이자를 붙여가며 갚고 있는지 모르겠다. 채무자 또한 현재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청년과 노인이라는 점은 우리 사회가 뼈저리게 아파해야 하는 지점이다.

알람은 진작에 울렸고 지금도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지난 10월 10일은 세계보건기구와 세계정신건강연맹이 정한 세계 정신보건의 날이었다. “변화하는 세계에서의 청년과 정신건강”(“Young people and mental health in a changing world”)이라는 주제로 청소년들의 정신적 회복력을 마련해주고 변화하는 세계의 도전들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주된 주제였다. 선진국들은 미래적 관점에서 청소년 세대의 정신건강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어떤 전략적 행동을 하고 있는가? 정책입안자들과 사회지도자들은 정신건강 수준을 우리 사회의 수준을 비추는 거울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미래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바꿔 나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허종호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email protected])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고 보건학 박사
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연구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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