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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 뮤지컬 마니아···영화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큰별

등록 2018.11.04 11:29:04수정 2018.11.12 09: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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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핸드프린팅, 2017

신성일,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핸드프린팅, 2017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폐암으로 투병하다 4일 별세한 '영화계 큰 별' 신성일(81)은 생전 뮤지컬에도 관심을 쏟았다. 공연계에서는 이 장르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힘쓴 인물로 평가한다.

특히 2008∼2013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이사장을 맡았다. 이사장 재직 당시 페스티벌 소개 기자회견 때마다 전면에 나서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뮤지컬 작품에 제대로 출연한 적이 없는 것은 물론 천상 영화인인 그가 뮤지컬페스티벌 이사장을 맡은 것을 일부에서는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연계에서 신성일은 자타공인 뮤지컬 마니아였다. 주목받는 뮤지컬은 대부분 빼놓지 않고 관람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1973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코러스 라인'을 통해 뮤지컬을 처음 접한 뒤 '뮤지컬 마니아'가 됐다. 브로드웨이,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등으로 출장을 갈 때마다 뮤지컬을 봤다고 한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알리기에 힘쓴 것은 자신의 고향인 대구에서 열리는 축제여서이기도 했지만, 뮤지컬 장르에 대해 애정도 큰 것도 이유였다.

한국 뮤지컬을 발전시키려면 인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2003년에는 미국에서 뮤지컬을 공부하는 젊은 학생을 한국에 연결해주는 '뉴욕 액팅 아카데미'를 운영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비록 대학 캠퍼스 내 공연작이었으나 대경대 뮤지컬과가 신성일 일대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 '신성일, 맨발의 청춘'을 선보이기도 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으로서 신성일을 만났던 유희성 서울예술단 이사장은 "페스티벌 이사장으로 재직하셨을 당시 1년에 한 번씩 뵀는데 뮤지컬에도 애정이 크시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탄생부터 축제가 이어갈 수 있도록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응원해주셨다"고 기억했다.

역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으로 신성일과 종종 마주한 뮤지컬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많은 대중이 영상 속 신성일을 기억하겠지만, 뮤지컬과 공연 애호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셨다"고 했다.

신성일은 원 교수가 쓴 '올 댓 뮤지컬(All That Musical)'을 탐독할 정도로 뮤지컬을 공부하는 데도 힘 썼다. 원 교수는 "공연을 굉장히 좋아하셨고,후학 양성기관을 생각하실 정도로 공연계에 애정이 많으셨다"면서 "그렇게 본다면 영화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체의 큰 별로 봐도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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