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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분들 생각하면…" 현장 찾은 고시원 원장 오열

등록 2018.11.14 18: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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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감식 때 참사 현장 방문한 원장 구모씨

"고시원 운영 11년째…적당할 때 그만뒀어야"

"형편 안 좋았지만 베풀고 사랑하려고 했다"

사망자 한 명 한 명 기억…인연 얘기 중 오열

인근 상인·생존자들 "구씨, 정 많고 좋은 사람"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소방 관계자가 화재감식을 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이날 화재로 8시40분 현재 6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2018.11.09.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소방 관계자가 1차 합동 화재감식을 하고 있는 모습. 2018.11.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최선을 다했는데 일이 이렇게 돼버렸어요."

지난 13일 뉴시스와 만난 국일고시원 원장 구모(69)씨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구씨는 경찰·종로소방서·종로구청·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기관의 2차 합동감식이 이뤄진 이날 가족과 함께 국일고시원을 찾았다. 고시원에 남은 식자재와 비누, 생필품 등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구씨는 이 고시원 운영을 시작한 지 올해로 11년째라고 한다. 그는 "적당한 시기에 그만뒀어야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 전에도 다른 고시원을 운영했던 구씨가 국일고시원을 맡은 것은 지난 2007년이었다. 학생 거주자가 꽤 있던 다른 고시원들과 달리 국일고시원에는 기초수급자인 노인들이 많았다.

구씨는 "비록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많이 베풀고 사랑하려 했다"며 "돌아가신 분들만 생각하면…"이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구씨는 사망자 한 명 한 명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망한 일본인 O씨에 대해서는 "내가 과거 운영했던 고시원에서부터 살다가 국일고시원까지 따라왔다"고 했다. 3층에서 거주하다 사망한 이모(62)씨에 대해선 "내가 밥값 1만5000원을 빌려주기도 했다"며 "이씨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찾아가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눈물을 글썽이며 이야기하던 구씨는 사망자들과의 인연을 떠올리자 오열하기도 했다.

그는 "11년 고시원을 운영하며 김치도 중국산을 이용한 적이 없다"며 "고추를 옥상에다 말려가면서 반찬도 모두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소방 관계자가 화재감식을 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이날 화재로 10시30분 현재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2018.11.09.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화재가 일어난 서울 종로 관수동의 국일고시원의 모습. 2018.11.09. [email protected]

주변인들의 말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구씨를 '솜씨 좋고 마음 좋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넉넉지 않은 사정에도 고시원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고시원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손모(62)씨는 "주인 아주머니가 반찬을 워낙 잘해 고시원에 빈 방이 잘 안 난다고 들었다"며 "사정이 있어 고시원을 나간 사람들이 주변에 국일고시원을 추천할 정도"라고 전했다.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최모(54)씨는 "고시원에 살던 사람들이 대부분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월세가 밀린 경우가 많았고, 운영이 힘들어 폐업 위기라는 말도 있었다"며 "그럼에도 직접 채소를 고르고 반찬을 준비했다"고 회상했다.

고시원 근처에서 10년간 노상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62)씨도 구씨를 "정 많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박씨는 "대부분 고시원 거주자들이 건강이 안 좋았는데 이 사람들에게 잡곡밥을 해 먹였다"며 "아픈 사람들에게는 따로 죽을 만들어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11일 오후 화재가 일어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앞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이 놓여 있다. 2018.11.11.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지난 11일 오후 화재가 일어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앞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이 놓여 있다. [email protected]

고시원 참사 생존자들도 구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3층 거주자 이춘산(64)씨는 "가끔씩 국에 소고기가 들어가고 손이 많이 가는 카레도 해줬다"며 "인상이 좋았고 좋은 사람이란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2층에 2년간 거주한 김모(80)씨는 "불이 난 줄 몰랐는데 원장이 방 앞에서 소리를 질러 깨워 탈출할 수 있었다"며 "감사하면서도 지금 이런 일을 겪게 돼 불쌍한 마음"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당초 구씨와 건물주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려던 피해자 1명은 "구씨에게 미안해서 못하겠다"며 소송에 참가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씨와 아들 고모(29)씨는 지난 9일 사건 당일 경찰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당시 2층에 있던 이들은 불이 났음을 알리는 한편 3층에 올라가 소화기를 작동시키려 했으나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 대피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히 벨이 울렸는지, 화재경보기가 제대로 작동됐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난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고시원 업무를 번갈아가며 맡은 것으로 알려진 구씨와 고씨를 조만간 불러 추가 조사할 계획이다.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국일고시원 참사는 지난 9일 오전 5시께 발생했다. 이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당했다.

경찰은 301호 거주자가 전열기를 켜두고 방을 나간 사이 불이 났다고 추정하고 있다.

경찰 등은 지난 10일과 13일 진행된 관계기관과의 합동감식에서 수거한 물품 등을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 감식결과와 국과수 감정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최대 3주가 걸릴 전망이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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