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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지켜라"…엘리트 법관들 사욕이 사법농단 불렀다

등록 2018.11.18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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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위급 법관의 지시 따라 하위 법관 수행해

최대 특혜자로 양승태 등 지목…檢 수사 전개

일각에서는 "사법부 특성 이해 못한 것" 반론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판거래 의혹'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18.06.01. bluesoda@newsis.com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판거래 의혹'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18.06.0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나운채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번 사건은 소수 엘리트 법관들의 이익 도모를 위한 목적에서 이뤄졌다는 판단 아래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법부 위상 강화는 결국 조직 내 최고위급 법관들 이익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볼 때 업무를 빙자한 일련의 사법농단 행위들은 직권남용을 넘어 권력형 부패로 볼 수도 있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18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임종헌(59·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 하면서 재판 거래 등 범죄 행위를 차례로 기재했다.

검찰은 30개가 넘는 임 전 차장의 범죄혐의를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의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 ▲사법행정 비판 세력 탄압 ▲부당한 조직 보호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집행 등 4개의 범주로 나눴다. 또 임 전 차장의 공범으로 양 전 대법원장과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 처장을 지목했다.

핵심은 '법원의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 부분이다. 해당 범주는 행정부와 입법부로부터 편의를 기대하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를 견제하는 등의 방안이 재판 개입 및 법률 검토 등을 통해 이뤄졌다.

상고법원 및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시각에 대한 탄압도 중요 혐의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판사 소모임 와해 시도, 긴급조치 국가배상 인용 등 당시 행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린 법관 등에 대한 징계 검토 및 사찰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아울러 변호사단체 등 법원 외부의 지적에 대한 압박 방안을 검토한 혐의도 적용됐다.

'부산 스폰서 판사' 사건과 '정운호 리스트' 등에 관련된 판사들의 비위를 축소하거나 은폐하고, 검찰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영장 정보를 유출하려 한 혐의도 있다. 이를 통해 법원이 부당·위법한 방법으로 사법부 조직의 위신을 지키려 했다는 것이다.

공보관실 운영비를 불법으로 편성·집행했다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국고 등 손실) 혐의의 경우에도 법정형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달하는 중범죄다.

검찰은 이 같은 다양한 범주의 범행이 하나의 '업무'로써 이뤄졌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법원행정처 처장과 차장 등 고위 법관들의 지시가 있었기에 하위 법관들은 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10월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을 밀어내고 있다. 2018.10.16. dahora83@newsis.com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10월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을 밀어내고 있다. 2018.10.16. [email protected]

임 전 차장 공소장을 살펴보면 검찰이 적용한 대부분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경우 양 전 대법원장과 당시 법원행정처 처장, 임 전 차장 등은 피의자로 적시된 반면 법률 검토 및 문건 작성 등을 수행한 심의관 등의 경우에는 의무 없는 일을 한 '상대방'으로 적혀 있다.

검찰은 사법행정을 좌지우지하는 최고위급 법관들의 이익 도모를 위해 하위 법관들은 어쩔 수 없이 이들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하위 법관들로선 인사상 불이익, 부장판사 승진 누락 등 유·무형의 불이익에 대한 부담감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검찰은 법원의 위상 강화 등과 같은 범죄 범주의 최대 특혜자는 결국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최고위급 법관이라고 보고 수사를 전개하고 있다. 이들이 조직적으로는 사법부 위상 강화, 개인적으로는 고위 법관 승진 및 조직 내 영향력을 도모하기 위해 이 같은 사법 농단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핵심은 당시 고위 법관들이 국민으로부터 주어진 사법 권한을 악용했다는 것"이라며 "이런 행위에 대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항변하는 것은 분명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검찰의 이 같은 시각에 대한 반론도 있다. 검찰이 사법부 조직의 특이성과 법원행정처 업무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면의 모습만을 부각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법 농단'이라 거론되는 범행은 법리상 범죄로서 인정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통상의 기업 비리 사건과 같은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된다. 행정처만의 업무 행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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