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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테두리 밖 용역·도급 되려 늘어"…비정규직법 사각지대

등록 2018.11.19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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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정책 포럼 보고서…박우람·박윤수 연구위원

법 보호 받는 비정규직만↓…전체 고용 규모도 줄어

有노조·大기업일수록 뚜렷…근로 조건 경직성 요인

"법 보호 받는 집단-받지 못하는 집단 간 격차 심화"

"규제만으론 고용 질 담보 못해…균형 있는 정책 필요"

【서울=뉴시스】(자료 = KDI 제공)

【서울=뉴시스】(자료 = KDI 제공)

【세종=뉴시스】장서우 기자 = 최근 정부가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정규직 비중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정규직법'의 사각지대가 드러났다. 법의 보호를 받는 기간제·파견 근로자는 줄어든 반면,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용역, 도급 등 기타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오히려 늘어나는 일종의 '풍선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박우람·박윤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19일 '비정규직 사용 규제가 기업의 고용 결정에 미친 영향'이라는 제목의 KDI 정책 포럼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2002년 노사정위원회 합의에 근거하면 비정규직이란 무기계약·전일제를 핵심 요소로 하는 정규직 이외의 모든 고용 형태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지난해 8월 기준 임금근로자의 32.9%가 비정규직으로 조사됐다. 이중 기간제가 14.7%, 시간제가 13.4%, 용역이 3.5%, 파견이 0.9% 등이다.

정부는 비정규직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 2007년 7월 비정규직법을 시행했다. 기간제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법(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통칭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책과 큰 틀에서 가장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비정규직의 사용 기간에 제한을 두고 차별적 처우를 개선코자 한 것이 골자다. 기간제 근로자는 2년 이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돼야 하며 파견 근로자 역시 2년 초과 근무 시 직접 고용돼야 한다. 또 시간제·기간제·파견 근로자에 대한 차등 대우는 노동의 질·강도, 권한 및 책임의 차이 등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만 허용된다.

KDI가 한국노동연구원의 1~4차 연도(2005년, 2007년, 2009년, 2011년) 사업체 패널조사 자료를 사용해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기업의 고용 결정에 변화가 있었는지 관찰한 결과, 규제 대상인 기간제·파견 근로자의 고용 비중이 줄고 정규직 비중이 늘었다. 다만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용역, 도급 등 기타 비정규직의 비중도 함께 증가했다.

법 시행 이전 기간제·파견 근로자의 비중이 여타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10%p 높은 사업장의 경우 법 시행 이후 정규직 고용 규모가 상대적으로 약 11.5% 증가하는 경향이 관찰됐다. 기간제·파견직 등 법의 테두리 내에 있는 비정규직의 고용 비중은 53.3% 줄었지만, 기타 비정규직의 고용 규모도 10.1% 함께 증가했다.

노조가 있는 경우 이러한 역기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유(有)노조 사업장에선 법 시행 후 기타 비정규직이 16.4% 증가했다. 반면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선 6.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정규직 증가 효과는 유노조 사업장(8.2% 증가)보다 무노조 사업장(12.6%)에서 더 두드려졌다.
【서울=뉴시스】(자료 = KDI 제공)

【서울=뉴시스】(자료 = KDI 제공)

다만 노조 유무 자체보단 이를 포함한 근로 조건의 경직성 정도가 더욱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규모가 크고 근로조건 변경이 어려운 기업일수록 정규직 전환에 소극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2016년 9월 무작위로 선정된 50인 이상 사업체 1000곳의 최고경영자(또는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사용 기간(2년)이 만료된 기간제의 무기계약직·정규직 전환 계획 및 처우 등을 물은 결과, 취업 규칙 및 단체 협약 변경 등 근로조건 변경이 어려울수록 전환 가능성이 떨어졌다.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이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박우람 연구위원은 "사용자가 평가한 근로조건 경직성 등을 통제할 때 노조 유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전환 이후의 처우와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면서도 "노조가 있는 대규모 사업체일수록 근로조건 변경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 유무는 근로조건 변경 경직성을 통해 비정규직 수요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KDI는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의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비정규직 수요 자체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근로 조건 자체의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윤수 연구위원은 "그간의 비정규직 정책은 주로 비정규직 사용을 얼마나 규제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사실 동전의 양면인데, 항상 정규직은 다수를 차지하고 정치적 힘도 강하다 보니 비정규직을 얼마나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만 반복돼 왔다"고 짚었다.

그는 "법적 규제만으로는 고용의 양과 질을 동시에 추구하기 어렵고 법의 보호를 받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간 격차를 확대시킬 수 있다"며 "규제 만이 항상 모든 해법은 아니다. 규제가 갖는 순기능과 역기능의 크기는 정규직의 유연성에 따라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남용을 계속해서 규제하되 정책을 양쪽으로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통적인 노동 유연성의 개념을 '고용'에서 임금,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으로 확장해 근로자가 필요로 하는 고용 안정성과 기업이 필요로 하는 노동 유연성을 균형 있게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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