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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존재 이유에 답하다, 윤현기 ‘사진사의 사진사’

등록 2018.11.21 0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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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사진필름

결혼식 사진필름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윤현기 사진전 ‘사진사(寫眞師)의 사진사(寫眞史)’가 28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학동 사진관에서 개막한다.

윤현기(72)씨가 운영하는 미화사진관의 역사는 아버지가 개관한 이래 50년이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전주 경기전에서 사진관을 하던 일본인에게 어깨너머로 사진을 배웠다.

당대 경제적 여유가 있는 특권층 위주의 초상 사진을 바탕으로 광복 이후 증명사진으로 이어지는 초상 사진의 보편화에서는 사진관이 기능을 담당한 초상 사진의 맥을 유추할 수 있다.
마그네슘 트레이 재현 그림

마그네슘 트레이 재현 그림

미화사진관을 개업한 윤씨는 흑백사진이 주류였던 초상사진을 컬러사진으로 만들 수 있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초’를 배우게 됐다. 확대기로 키운 사진 이미지의 외각선을 따거나 외각선이 나올만큼의 노출로 인화를 한다. 이렇게 나온 사진에 물감으로 얼굴의 피부톤을 재현하고 옷의 색감을 결정했다. 컬러사진이 등장하기 전 초상화를 회화와 사진이 서로의 경계에서 ‘사초’라는 장르를 만든 셈이다.

시작은 흑백이다. 사진을 찍으면 암실에 들어가 현상과 인화를 하고 빠르면 그날, 일이 많은 날이면 다음날 사진을 전달 할 수 있었다. 촬영과 현상, 인화는 미화사진관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관에 와야 했고 결혼과 회갑 등 기록이 필요한 일에는 사진사가 필요했다. 마을에 하나씩 있던 사진관은 주변의 이벤트로부터 꼭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좋은 시절이었다.
미화사진관

미화사진관

카메라가 대거 보급되며 마을의 작은 사진관은 기능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에게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비디오카메라의 출현, 사진관의 명맥을 유지하는 좋은 매체였다.

사진사를 통해 결혼식과 회갑연 영상 제작문의가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사진의 대중화와 높은 보급률로 사진사들의 입지는 좁아졌다. 마을 잔치들 역시 이전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결혼식은 지정된 결혼식장의 사진사들이 해결했다. 마을을 넘어, 사진관 넘어 다른 공간에서 모든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과박스 암실 재현 그림

사과박스 암실 재현 그림

그렇게 맞이한 IMF 외환위기 이후 주변의 사진관들도 대거 폐업을 하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디지털 사진이 나타났다. 시기와 시기를 넘을 때마다 사진은 늘 새로운 방식을 요구했다. 이제는 새로운 흐름에 따라가기에 지쳤다고 생각했다.

포기를 결심할 즈음 아들은 아버지에게 포토샵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주변 사진관들을 찾아가 관련 내용을 물었고 또 다시 연습과 연습을 거쳐 디지털 사진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했던 그가 컴퓨터를 통해 이미지를 수정하고 사진을 출력했다.
시청 앞 사과암실 상자로 급성 사진을 찍었다. 윤현기씨와 아버지의 동료들

시청 앞 사과암실 상자로 급성 사진을 찍었다. 윤현기씨와 아버지의 동료들

윤현기라는 개인의 삶을 통해 50년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에서 사진관을 운영한 ‘사진사의 사진사’를 둘러볼 수 있다. 그의 삶 흔적들을 재현한다. 흑사진, 사초, 컬러사진, 비디오카메라의 영상시대, 그리고 작금의 컴퓨터 만능시대를 이 한 명의 사진사를 통해 볼 수 있다.

 ‘사진사의 사진사’는 12월30일까지 계속된다. 작가와의대화는 12월8일 오후 3시다. 월·화요일은 휴관한다.
낙엽무늬 사진 채색

낙엽무늬 사진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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