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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단편은 성냥, 불 당기고 꺼질때까지 지켜본다"

등록 2018.11.22 11: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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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한강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자취방 유리창 가득 늦가을 오전의 다사로운 햇살이 내리비치고 있었다. 장판 바닥에 엎디었던 몸을 굼벵이처럼 모로 누이며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명치 끝이 찢기듯이 아파왔다. 적요한 햇빛 속으로 무수한 먼지 입자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름답구나, 하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먼지는 진눈깨비 같았다. 먼 하늘로부터 춤추며 내려와 따뜻한 바닷물결 위로 흐느끼듯 스미는 진눈깨비···. 여수의 진눈깨비였다."('여수의 사랑' 중)

소설가 한강(48)이 현재까지 출간한 소설집 전권(총 3권)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재출간됐다.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1995)은 존재의 상실과 방황을 담았다. 여수는 어딘가 상처 입고 병든 이들이 마침내 다다를 서러운 마음의 이름이다. 고독한 등장인물들은 떠나고 방황하고 추락하면서 사람과 세상에 대한 갈망을 멈추지 않는다. 표제작을 비롯해 '어둠의 사육제' '야간열차' '질주' '진달래 능선' 등 6편이 실렸다.

한강은 2000년 두번째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 2012년 세번째 소설집 '노랑무늬영원'을 냈다. '내 여자의 열매'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아기 부처' '흰 꽃' '아홉 개의 이야기' '어느 날 그는' 등 8편이 담겼다. '노랑무늬영원'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파란 돌' '왼손' '에우로파' 등 7편이 실렸다.
소설가 한강 "단편은 성냥, 불 당기고 꺼질때까지 지켜본다"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고 있어요. 오늘도 세상의 땅에는 얼마나 많은 잎사귀가 떨어졌는지, 얼마나 많은 풀벌레가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뱀이 허물을 벗었고 어떤 개구리들은 일찌감치 겨울잠에 들었는지요. 자꾸만 어머니 스웨터 생각이 나요. 어머니 살냄새가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이더러 그 옷으로 내 몸을 덮어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할 길이 없어요. 어쩌면 좋을까요. 그이는 말라가는 나를 보면서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해요."('내 여자의 열매' 중)

"전부라고 믿었던 것을 잃고도 살아갈 수 있다. 이 년동안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환자. 한 남자의 골칫덩어리. 때로 오른손이 악화되면 자신이 쓴 물컵 하나 선반에 뒤집어놓을 수 없는, 철저히 쓸모없는 존재."('노랑무늬 영원' 중)

한강은 "긴 시간에 걸쳐 있는 소설들이어서인지, 책을 묶는 일이 어떤 작별처럼 무겁고도 홀가분하다"고 했다. "단편은 성냥 불꽃 같은 데가 있다. 먼저 불을 당기고, 그게 꺼질 때까지 온 힘으로 지켜본다. 그 순간들이 힘껏 내 등을 앞으로 떠밀어줬다."328·408·308쪽, 각 권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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