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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ILO 핵심협약비준, 서두를 일인가

등록 2018.11.27 15: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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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ILO 핵심협약비준, 서두를 일인가

【서울=뉴시스】김종민 기자 = 중국의 고대 병법 삼십육계(三十六計) 중 작전계 제11계 이대도강(李代桃僵). '자두나무가 복숭아 나무를 대신해 넘어지다'라는 뜻이다. 작은 손해를 보는 대신 실질적인 큰 승리를 거두려는 지략을 일컫는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이 이같은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지지 기반인 노동계의 '결사반대'를 무릅쓰고 재계의 목소리를 어느정도 경청해주는 듯하면서 '더 큰 승리'를 노리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재계는 꼭 지켜야 할 복숭아나무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청와대와 여당이 이미 치밀한 각본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부터 공약한 국정과제이기도 하지만, 탄력근로제 확대를 추진한 정부에 각을 세운 노동계를 시의적절하게 달래는 성격이기도 하다.

청와대와 여당은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 단결권, 강제노동 폐기 등 4가지 협약에 대한 비준동의 처리 방안을 추진 중이다. ILO 창립 100주년인 내년까지 비준과 관련 법 개정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ILO 100주년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ILO 기준에 따라 국내 노동법을 개정하고 판례와 노동행정 관행을 바꾸면 ▲해고자의 기업별노조 가입 허용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자율화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소수노조의 교섭 요구 허용 ▲필수유지업무 범위 축소와 유지율 하향 조정 ▲불법파업 시 업무방해죄 미적용 등 사안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계는 국내 노사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해 노사정 모두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협약 비준의 전제조건으로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권과 관련한 제도·관행 개선이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을 최소한 외국 수준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력 산업이 맥없이 무너지는 위기상황인데도 ILO 협약 추가비준은 기업 활동에 또다른 불확실성을 키우고 산업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불씨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서두에 경영계의 입장을 길게 내세운 까닭은 그들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편들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가 처한 작금의 경제현실이 간단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금 한국경제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이다. 기업의 생산 및 투자가 급감하면서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다. 실물경제의 하락세가 계속된다면 1997년 IMF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기에 현정부가 지난 1년 6개월간 펼쳐온 친노동정책도 기업활동에 적지 않은 부담과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등은 방향이 맞다고 해도 급격히 시행되면서 가뜩이나 경쟁력을 잃어가는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켰음을 부인키 어렵다.

물론 노동조합의 존재와 '노조할 권리'는 응당 보장해야 하며, 기업과 사회 발전의 ‘걸림돌’로 보는 것 자체가 후진적일 수 있다.

하지만 툭하면 정치파업이 일어나고, 노사간 대화와 협력이 세계 최하위권 수준인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ILO협약 추가 비준으로 해직자, 실직자까지 노조 설립 또는 가입이 이뤄지면 노조 힘은 더 강해져 기업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가 결코 엄살만은 아니다.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 자동차 업종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엔 강성노조의 책임도 적지 않다.

지금은 노조의 권리를 강화시켜주는 것 못지 않게, 사측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등 노동개혁이 균형 있게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산업전반의 구조개혁과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게 국가적으로 더 시급한 과제이다.

 ILO핵심조약 추가 비준은 경영계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국민 전체의 여론을 살피며 득실을 따져본 후 차분히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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