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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과 파스파 문자, 억지주장에 현혹돼서야

등록 2018.12.11 06:01:00수정 2018.12.11 18: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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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리 레드야드 교수의 ‘훈민정음 5개 글자 몽골 파스파 문자 차용설’ 검토를 위한 비교 도표 

게리 레드야드 교수의 ‘훈민정음 5개 글자 몽골 파스파 문자 차용설’ 검토를 위한 비교 도표  

【서울=뉴시스】 박대종의 ‘문화소통’

이미 인공지능(AI) 시대에 들어선 지금, 인류는 AI가 할 수 없는 창의융합 정신을 발휘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려 하고 있다. 창의력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에서 나오니, 세종대왕은 옛 고전(古篆)을 깊이 연구하여 창의융합의 결정체인 훈민정음 28자를 새로이 창제하였다.

훈민정음에 깊이 매료되어 일생을 보낸 외국 학자 중에 게리 레드야드(Gari Ledyard)라는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있다. 그는 “훈민정음의 글자 모양들은 그 소리들과 관련된 발음기관을 기초로 하여 합리적 설명이 되는데, 이는 전대미문의 문자학적 사치다”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그는 진시황 때의 소전과 그 이전 청동기 명문 등에 나타나는 대전을 포괄한 고전(古篆)에는 어두웠다. 그런 상태에서 그는 1966년 논문을 통해 ‘자방고전(字倣古篆)’의 고전을 몽고전자(蒙古篆字)로 오해하며 <사진>에서처럼 훈민정음 ㄱ, ㄷ, ㅂ, ㅈ, ㄹ이 몽골의 파스파 문자에서 그 자형을 차용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그러한 학설이 세계 학계에서 지금껏 타당한 분석이나 효과적 거름망 없이 많이 수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게리 교수는 ㄱㄷㅂㅈㄹ이 훈민정음의 기본 자음이며, 해례본의 설명과는 다르게 ㄴㅁㅅ은 기본자 ㄷㅂㅈ의 윗부분이 지워진 형태라고 주장했다. 순서상 ㄷㅂㅈ이 먼저고 ㄴㅁㅅ은 나중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2010년 10월 9일자 뉴시스 ‘몽골문자를 베낀 것이 한글이라는 학설에 대하여’에서 밝힌 것처럼, 훈민정음 초성 17자를 대표하는 기본자는 ㄱㄴㅁㅅㅇ이지 ㄱㄷㅂㅈㄹ이 아니니 게리의 이러한 주장 또한 오해에서 출발했다.

천하를 제패하여 새로운 천자국 원나라가 된 몽골제국은 통치목적상 중국의 전통 36자모를 모두 표현하는 파스파(八思巴) 문자를 제정한다. 그 표음문자는 티벳 문자를 개량한 것으로, 상형에서 비롯된 우리의 훈민정음과는 근원이 전혀 달랐다.

ㄴ은 혀끝이 입천장에 붙는 모양을 그린 상형자이며, ㄷ은 ㄴ 소리를 빨리 하면 ㄷ으로 바뀐다는 세종의 놀라운 연구결과에 의거, ㄴ 위에 가로선을 가획한 상형 겸 지사(指事) 문자이다. 그러나 ㄷ 음가에 해당하는 파스파 문자 ꡊ(90도 우회전시켜 볼 것)는 ㄴ 음가에 해당하는 ꡋ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낯선 글자라 어렵겠지만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ꡊ은 횡선 밑의 선이 직각이 아닐뿐더러 끝이 구부러져 있어 그 자형이 반듯한 ‘ㄷ’과는 다르다.

ㅂ 음가에 해당하는 파스파문자 ꡎ는 누가 봐도 거기에서 ‘ㅂ’의 자형을 연관시킨 것은 매우 억지스럽다. 게리 교수는 “ㅂ의 상단을 제거하여 ㅂ에서 ㅁ의 자형을 끌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나··· ㅁ에 어떤 것을 추가하여 ㅂ을 얻을 방법은 분명치 않다”고 하였는데, 그가 만약 입을 상형한 ‘口(구)’자의 전서체를 보았더라면 그러한 억지 주장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훈민정음 언해본에서는 중국에는 우리말과 다른 치두음(齒頭音)이란 것이 있다고 했다. 그걸 표현한 파스파 문자 ꡛ[s]를 게리 교수는 무리하게도 음가가 전혀 다른 ㅈ과 연관시켰다. ꡙ[l]의 경우, 비록 우리말 ㄹ과 음가는 같지만 엄밀히 살펴보면 3개의 가로선 길이가 모두 같은 훈민정음 ‘ㄹ’과는 다르다. 그리고 게리 교수는 ㄱ 음가에 해당하는 파스파 문자 ꡂ에 대해 세종대왕이 거기에서 내부의 ‘꼭지 있는 네모’를 빼고 ㄱ을 취했다고 했는데 이 또한 억설이다.

 ‘몽고자운(蒙古字韻)’에 실린 36 자모 중 ꡂ처럼 내부를 제거했을 때 ㄱ 모양이 되는 것은 무려 11개나 된다. 고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설명을 무시하고 억지주장을 펼친 게리 교수의 파스파 문자 모방설에 절대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몽골제국의 스승 파스파는 ‘ㅏ’에 해당하는 모음 글자는 만들지 못했다. 세종대왕처럼 발음기관 상형 및 가획의 지사, 그리고 가로 세로를 모두 쓰는 창의적 합자 방식은 꿈도 꾸지 못했다. 초중종성을 가로로만 나열하는 로마자처럼 오직 세로로만 단순 배열시켰을 뿐이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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