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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도 고령화' 녹물·곰팡이에 주차난까지…최고령 서울 평균연한 20년

등록 2018.12.16 07: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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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물·곰팡이·주차전쟁 등 삶의질은 물론, 안전성 문제도

2년내 노후주택 375만호…이후 10년간 552만호 수명 도래

재건축 '딜레마'…집값 뛰고, 저소득층 '최후의 보루' 사라져

"남의 돈으로 재산 증식", "자초한 몸테크" 비난 등도 넘어서야

전문가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정부 역할론 강조 의견도

'아파트도 고령화' 녹물·곰팡이에 주차난까지…최고령 서울 평균연한 20년

【서울=뉴시스】이인준 기자 = 우리나라 전체 가구중 65%이상이 거주하는 '아파트'.(2017 주거실태조사)

아파트는 한때 저소득층을 위한 대도심의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겨났지만 이후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주거 형태가 됐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지어진 단지들은 이제 속속 은퇴 연령에 가까워지고 있다. 안전성은 물론 입주민들의 삶의 질을 놓고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호재가 집값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이도저도 못하는 '딜레마' 상황이다.

정부가 사태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도 어떤 방식이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6일 한국감정원에서 운영하는 부동산 시세정보서비스 '부동산테크' 자료에 따르면 올해초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연식은 19년8개월(19.7년)으로 집계돼 빠르면 내년께 전국에서 가장 먼저 20년을 돌파한다.

이어 대전시(19년), 인천시(18.6년), 전북(18.5년), 광주시(18.4년), 부산시(18.4년), 전남(17.7년), 충북, 대구(17.5년), 경북(17.3년) 등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함께 경기(17년)는 상대적으로 젋지만 일산, 분당 등 1기 신도시에 건설된 노후 아파트의 연한이 30년을 넘어설 전망이다. 

주택 노후화의 문제는 이미 잠재된 '시한폭탄'이다. 인구주택총조사(2015년) 자료에 따르면 오는 2020년이 되면 전국 노후주택 375만호가 지어진지 30년을 초과하며 이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파트가 많이 올라간 1990년대에 건축된 551만9000호의 주택이 10년간 속속 30살을 맞는다.

우리나라 아파트 평균수명이 평균 31년인 점을 감안하면 교체 나이가 가까워지고 있다. 아파트 노령화 문제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가야할 사회적인 문제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녹물은 기본, 주차전쟁에 안전성 문제까지…노후아파트, 고단한 삶

아파트 노후화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노후화된 아파트는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야기한다.

입주민들은 고된 삶을 호소한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25살짜리(1992년 준공) A아파트는 이따금 녹물이 나온다. 매해 겨울마다 결로 현상으로 베란다에 물방울이 맺히고 곰팡이가 피는 등 문제가 발생한다.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있는 '26살'(1991년 준공) B아파트는 입주민들이 매일같은 '주차 전쟁'을 벌인다. 가구수 대비 주차대수는 고작 0.27대이기 때문이다. SRT 수서역이 생긴 이후에는 공짜로 주차하려는 '얌체' 승객까지 생겨 주차난은 더 심해졌다. 아파트가 지어진지 20년이상 지나면서 삶도, 주변 교통, 문화 등도 모두 바뀌었지만, 아파트 구조는 그대로인 탓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의 고도압축 성장은 주거의 방식을 모두 바꿔놓았지만 사람이 사는 아파트 자체는 20년째 그대로"라며 "입주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삶의 질도 문제지만 안전성에서도 문제다.

올해로 지어진지 47년째를 맞는 서울 여의도 C아파트는 은퇴를 앞둔 나이지만 아직도 재건축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미 안전진단에서 '즉시 재건축 요함'을 의미하는 D등급 판정을 받았다. 외벽에 금이가고 이따금 시멘트 덩어리가 머리위에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입주민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특히 최근 몇년간 우리나라도 지진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지만 1988년 이전에 생긴 건축물은 내진설계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기에 지어진 것이다. 이후에 생긴 것마저 건설사에서 실제 설계대로 내진설계를 적용했는지 알 길이 없다.

권일 부동산인포 팀장은 "최근 강남구 대종빌딩이 폐쇄되는 등 노후건축물 붕괴 우려가 제기됐지만 비단 빌딩시설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후아파트중에는 연한이 지났는데도 아직 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곳도 있어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문제가 곪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재건축이 해법이지만 실마리 찾기 난관…"사회적 합의 필요"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근본적인 해법은 재건축뿐이다. 왜냐면 우리나라는 아파트를 지으면서 동시에 전기, 수도, 가스 등 도심 인프라도 함께 갖추며 성장해왔기 때문에 일부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이 높다.

'아파트도 고령화' 녹물·곰팡이에 주차난까지…최고령 서울 평균연한 20년

일단 서울 집값 급등으로 부동산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다. 현재 서울의 모든 대규모 개발계획이 답보상태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내구연한 30→40년), 재건축초과이익환수 부활 등으로 재건축은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해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더라도 문제는 또 있다. 집집마다 새 아파트를 짓는데 추가로 필요한 돈으로 분담금을 내야 하지만 집집마다 자금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로 일반에 아파트를 판매해서 거둔 수익으로 재개발에 필요한 돈을 충당하게 되는데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도 일부 지역만 가능할뿐 지방은 쉽지가 않다. 또 1990년대 지어진 대부분의 아파트들은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물의 지상층 연면적 비율)이 200%를 초과한 상태이기 때문에 일반분양으로 시중에 판매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용적률, 층고 등에서 규제가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노후아파트가 재건축 된다면 신혼부부 등 청년층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저렴한 전세집들이 대거 사라져 주거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한다. 서울의 미친 집값으로 노후아파트가 서울살이의 '마지막 보금자리' 내지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이 아닌 지방도 경기 위축과 아파트 공급 확대 기조 속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다.

최근 구축 아파트를 수직, 수평으로 증축하는 '리모델링'이 재건축의 대안으로 부상중이지만 같은 이유로 일부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도 있다고 업계에서는 지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세대수만 늘리게 되면 전기, 수도, 가스 등 인프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리모델링을 제대로 하려면 내력벽 철거를 통해 구조를 바꾸는 일이 수반돼야 하는데 안전성 논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실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건축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여전히 시비거리다.

일반적으로 재건축은 조합원외에 일반분양 물량을 시중에 판매해 사업비를 충당하게 되는데 이를 놓고 "남의 돈으로 재산 불린다"는 비난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군 등을 이유로 불편함을 참고 노후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이른바 '몸테크(몸+재테크)' 역시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다. 가장 근본적인 해법인 재건축이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아이러니다.

◇전문가들 "노후아파트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사회적 합의 필요"

전문가들은 노후아파트 문제에서 재건축을 빼놓으면 해결이 어렵다고 말한다. 재건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주택교체가 너무 빨리되는 것도 문제지만 거주민들의 불편사항을 등한시하는 것도 문제"라며 "국민들의 삶의 방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반면 국토가 좁은 탓에 토지가격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재건축 욕구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재건축을 죄악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재건축으로 인해 집값이 뛰고 원주민들이 떠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지만 초과개발이익환수를 엄정하게 하고 임대아파트를 짓는 등의 방식으로 재정착률을 높여 함께 사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휴거'(휴먼시아 거지·임대아파트 입주민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말) 같은 조어가 보여주는 심각한 사회 단절 세태를 막기위해 중산층 이상에 대해 사회적인 책임도 부여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소셜 믹스(social mix·단지 내에 분양, 임대를 함께 조성하여 사회적·경제적인 배경이 다른 주민들이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권 팀장도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노후아파트에서의 생활을 감수하고 사는 분도 많아 재건축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라며 "최소한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개선 사업은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의 규제가 지나쳐 '성냥갑' 아파트로 대변되는 '몰개성성'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면서 "다양한 형태의 아파트가 나올 수 있도록 층고제한 등의 규제를 풀어 독특하고 미래지향적인 아파트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그는 "서울은 강남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층고가 높고 용적률도 높아 1대 1 재건축(세대수와 동일한 세대수로 재건축) 이외에는 불가능한 곳이 대부분이어서 정부가 주도하지 않고서는 도심 슬럼화(slum·주택환경 악화)"면서 노후아파트를 정부에서 매입해 공공택지로 개발하는 등 보다 급진적인 방식의 추진을 주장했다.

재건축 외에 다양한 방식의 주거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우리나라는 집의 생명이 지나치게 짧다"면서 "재건축보다는 리모델링 대책에 무게 중심을 둬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 추진중인 100년 장수주택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 주택 노후화에 대응이 필요하며 특히 지방 중소도시의 슬럼화 문제에 대해 맞춤형 해법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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