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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러시아의 미래예측 역량의 발전과 한계

등록 2018.12.13 1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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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정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뉴시스】정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뉴시스】 필자는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래예측과 과학기술혁신 정책”이라는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이 학술대회는 러시아 수위의 국립대학인 국립고등경제대학(HSE)의 부설 연구소인 통계·지식경제연구소(ISSEK)가 2011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이 학술대회에는 국제지식재산권기구, 유네스코, OECD와 같은 국제기구의 담당자를 비롯하여 세계 유수의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자가 참여하여 미래예측과 과학기술정책결정에 관한 최신의 방법론과 적용사례를 발표하고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 들어 국제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 학술대회에 주목한 것은 2002년에 설립된 ISSEK가 2006년에 국제미래예측센터를 설립한 이래 이 센터를 중심으로 미래예측과 과학기술정책 분야에서 왕성하게 국제교류를 전개하면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소와 센터는 특히 러시아 연방정부가 주도한 과학기술개발 분야의 우선순위 및 핵심 기술 선정(2006년 및 2011년)과 2030 국가과학기술예측(National S&T Foresight 2030)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명성과 실력을 쌓았다. 또한, 국가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지역과 기업 차원에서도 기술로드맵 작성을 위한 방법론을 개발하여 실제에 적용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전개는 미국, 영국, 일본에 비하면 매우 늦은 것이고,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상당히 늦은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국립과학기술·학술정책연구소(NIESTEP)가 ISSEK를 종래 이 분야를 선도하여왔던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 비견될 정도로 세계적인 연구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는 만큼 러시아는 물론이고 비롯한 선진 각국의 과학기술 동향과 미래에의 영향을 알기 위해서는 ISSEK의 연구 활동과 발간물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도 ISSEK의 연구자들은 대회 첫날의 첫 번째 섹션에 대거 참가하여 과학기술의 미래예측에 관한 새로운 방법론과 적용 영역에 관한 흥미로운 발표를 하였다. 첫 번째 발표자인 Ozcan Saritas 교수(ISSEK 부소장)는 변화의 역동성, 문제의 복잡성 및 체계성이 증가함에 따라서 장기예측은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기술과 참여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툴박스를 개발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Saritas 교수는 이와 같은 방법론 개발의 중요한 사례로서 새롭게 등장하는 정보통신기술의 활용을 들고 있다. 먼저 빅데이터 분석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트렌드 분석은 미래예측을 보다 많은 근거에 기반하여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다면 이해관계의 참여와 예측 과정의 투명성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한다.   

 미래예측의 방법론으로서 정보통신기술의 강조는 ISSEK가 개발한 지능형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활용한 미래예측 및 정책 결정에 관한 발표로 이어졌다. iFORA(intelligent Foresight Analytics)라고 부르는 이 시스템은 방대한 양의 자료를 빅데이터 분석, 머신러닝, 의미 분석(Semantic analysis), 텍스트 마이닝과 같은 정량적 분석 방법을 통합적으로 적용하면서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델파이, 패널, 심층 인터뷰와 같은 질적 분석을 통하여 미래예측과 정책 결정의 유효성을 확보한 시스템이라고 한다. ISSEK는 이 시스템을 활용하여 과학기술 개발 분야의 트렌트 분석, 시장평가, 미래예측, 작업흐름(Workflow)의 최적화 등 총 6개 분야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트렌드 분석에서는 과학기술개발 맵핑, 트렌드의 구조적 변화 분석, 과학기술 영역의 중요도 및 역동성 평가와 라이프사이클 분석 등을 하고 있다. iFORA는 2030 국가과학기술예측에도 사용될 정도로 중단기 예측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와 같은 러시아의 미래예측 역량의 발전은 러시아 연방정부의 의지나 경제학적 역량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을 필두로 하는 ICT 역량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기초과학기술의 강국이라는 점을 잘 알려져 있지만, ICT 역량도 그에 못지않다. 삼성전자가 올해 5월에 글로벌 인공지능 연구개발센터를 영국 케임브리지와 캐나다 토론토에 이어서 러시아 모스크바에 설립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ISSEK의 iFORA와 같은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은 예측을 위한 시간을 줄이는 한편 증거에 예측의 증거 기반성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예측활동의 타당성과 신뢰성 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ISSEK의 iFORA의 성과와 한계를 면밀히 평가하여 이와 같은 지능형 통합 예측시스템을 국가적 차원에서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물론 러시아의 미래예측에 기반한 과학기술혁신에는 여전히 많은 한계가 있다. 학술대회 참가자들에 의하면 국가 차원의 혁신시스템과 기업 차원의 혁신 문화 간의 갭이 매우 크기 때문에 혁신정책이 실제로 구현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이러한 어려움은 역사적으로 소련 시절부터 존재하였던 기술(science)과 기업(business) 또는 시장(market) 간의 갭에서 연유한다고 한다. 이러한 갭으로 인하여 우수한 기초과학기술이 응용되고 시장화되지 못하는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갭은 국가의 과학기술혁신정책이 각각의 기술 및 산업 부문, 그리고 그 하위 부분에 적합하게 책정되어야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학교 이근 교수가 이번 학술대회 발표에서 경제추격이론에 입각하여 러시아의 혁신시스템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하여 참가들의 많은 관심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흔히들 우리나라에 부족한 것이 두 가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석유와 천연가스와 같은 에너지 자원이다. 또 하나는 기초과학기술이다. 러시아는 이 두 가지를 갖춘 나라이지만, 에너지 자원 수출의존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제적인 경기 변동에 따라서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험은 정부, 기업, 개인이 미래를 예측하고 전략을 수립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혁신하고자 하는 의지와 문화를 가지는 것이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비약(leapfrogging)할 수 있는 핵심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정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email protected]

일본 교토대학 법학 박사
일본 쿄토대학 법학연구과 연구교수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연구교수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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