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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초점]김준수, 그대 있음에 한국 뮤지컬 있네

등록 2018.12.17 0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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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엘리자벳' ⓒEMK

뮤지컬 '엘리자벳' ⓒEMK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죽음을 의인화한 뮤지컬 '엘리자벳'의 캐릭터 '토드'. 그가 키스를 하는 상대는 죽음을 맞는다. 유럽에서 가장 성대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마지막 황후 '엘리자벳'의 일대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엘리자벳은 토드에게 매혹된다.

2012년 '엘리자벳' 초연에 출연한 그룹 'JYJ' 멤버 겸 뮤지컬배우 김준수(31)는 이 역의 원형을 만들었다. 자신의 별칭인 시아준수, 토드를 합친 '샤토드'로 불린다.

엘리자벳과 운명적 사랑에 빠지는 '옴파탈'을 창조했다. 추상적인 역에 설득력을 부여했고,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토드 역으로 제18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내년 2월10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하는 '엘리자벳' 새 시즌에 합류, 세 번째 토드를 연기하게 된 김준수는 '뮤지컬 황태자의 귀환'이라 할 만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전역 후 첫 뮤지컬이자 2016년 '도리안 그레이' 이후 2년 만에 출연한 뮤지컬. 토드 역은 5년 만에 맡게 됐다. 지난 12일 '엘리자벳' 새 시즌 첫 무대에 올랐는데, 성숙해진 해석과 깊어진 가창력으로 호평을 듣고 있다. 특히 휘몰아치는 감정 표현과 절창으로 인한 흡입력이 대단하다. 토드의 솔로 넘버 '마지막 춤'이 대표적인 보기다. 엘리자벳과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결혼에 나타나 부르는 넘버. 
뮤지컬 '천국의 눈물' ⓒ뉴시스

뮤지컬 '천국의 눈물' ⓒ뉴시스

속삭이듯 은밀한 유혹으로 시작되는 넘버는 엘리자벳을 원하는 토드의 감정이 격해지면서 점점 웅장하고 강렬해진다. 고조되는 감정에 따라 음역대도 높아지는데, 매력적인 쇳소리가 깃든 '철성(鐵聲)'을 보유한 김준수는 클라이맥스에서 객석을 집어삼킬 만한 카리스마를 드러낸다.김준수는 이 곡에서 치고 빠지는 리듬과 절제가 더 유려해졌다. 캐릭터 해석은 물론, 넘버 소화력도 한층 깊어졌음을 방증한다.

화려한 춤도 빠질 수 없다. 가창력과 함께 뛰어난 춤 실력으로 이미 정평 난 그답게 김준수식 종합선물세트이자 완전판을 보여준다.

'엘리자벳'의 원작자 실베스터 르베이(73)는 "김준수의 컴백 공연을 보기 위해 뮌헨에서 왔다. 초연, 재연도 정말 좋았지만 감정선이나 드라마 모두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토드를 만난 것 같다. 등장부터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있고, 토드의 숨결을 내뱉을 때 위험한 사랑의 마법같은 순간을 느끼게 해줬다"고 말했다.
 
상대배우에 대한 배려도 한결 섬세해졌다. 예컨대, 엘리자벳 역을 맡은 성악 기반의 배우 김소현(43)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인장이 분명한 자신의 음색을 부드럽게 조율하는 내공을 발휘한다.  
뮤지컬 '드라큘라' ⓒ뉴시스

뮤지컬 '드라큘라' ⓒ뉴시스

◇김준수, '뮤지컬돌'의 개척자

김준수는 뮤지컬돌의 개척자다. 2010년 '모차르트!'로 뮤지컬에 데뷔할 당시만 해도 아이돌의 뮤지컬 진출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준비도 되지 않았으면서도 이름값과 인기만 믿고 뛰어든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김준수는 달랐다. 실력은 물론 타고난 성실성, 그리고 앙상블까지 챙기는 친화력으로 우려와 부정적인 시선을 바꿔 놓았다. 또 출연회차를 매회 매진시키는 동시에 작품 자체에 대한 주목도를 높여, 정체됐던 업계의 판을 키웠다는 평도 받는다. 김준수를 선봉으로 뮤지컬돌들이 자리를 잡았다.

김주수는 '모차르트!' 이후 꾸준히 뮤지컬에 출연해왔다. '천국의 눈물'(2011), '엘리자벳'(2012),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2013), '드라큘라'(2014), '데스노트'(2015), '도리안 그레이'(2016) 등이다. 모두 국내 초연작이거나 창작 초연물이다. '모차르트' '엘리자벳' '드라큘라' '데스노트' 재연에도 나오며 작품을 탄탄하게 만들었다.

특히 독보적인 음색과 캐릭터로 비현실적인 역에서 탁월함을 뽐내왔다. '엘리자벳' 토드를 비롯해 한국에 마니아층을 보유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59) 작곡 '드라큘라' 중 '드라큘라', 일본 만화 원작인 '데스노트' 속 '엘(L)',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도리안 그레이' 등은 김준수가 아니면 해석해내기 힘든 그로테스크한 역들이다.
뮤지컬 '데스노트' ⓒ씨제스

뮤지컬 '데스노트' ⓒ씨제스

특히 '데스노트', '도리안 그레이' 등 추상적인 작품의 뮤지컬화는 김준수의 인기와 그의 캐릭터가 중심에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기획이었다.

'천국의 눈물'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 같은 창작물 기획의 중심에도 김준수가 있다. 현실이 바탕이 된 이들 작품에서는 안정적인 연기도 선보인 그다. 노래와 퍼포먼스에 특화된 김준수여서 연기력이 가려지는 면이 있는데, 이들 작품에서는 연기력이 도드라졌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 병사와 미군 장교, 베트남 여성의 순탄하지 않은 사랑을 그린 '천국의 눈물'에서 한국군 '준'을 맡았는데, 사랑에 설레어 하고 아파하는 세세한 감정 표현력이 좋았다.

작품 완성도에서 혹평을 들은 '디셈버'에서도 김준수는 제 몫을 했다. 가객 김광석(1964~1996)의 곡들을 엮은 이 작품에서 공연연출가인 '지욱'을 맡아 사랑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줬다. 김광석의 애틋한 곡들은 김준수의 쇳소리가 섞인 애절한 목소리를 만나 새 생명력을 얻었다.

8년 전 김준수의 뮤지컬 데뷔작으로 천재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를 다룬 '모차르트!'의 모차르트에는 김준수의 모습이 상당히 투영됐었다. 대표 넘버 '나는 나는 음악'의 '난 음악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어 ··· 있는 그대로의 내모습 날 사랑해줘'라는 노랫말에는 당시 소속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그의 심경이 녹아 있었다.
'모차르트!' 김준수 ⓒEMK

'모차르트!' 김준수 ⓒEMK

모차르트가 만드는 음악이 클래식일뿐 그를 당대의 록스타로 설정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엘리자벳'의 르베이가 작곡한 이 뮤지컬은 한 음악가의 불멸한 이야기라기보다 한편의 성장 드라마에 가깝다.

김준수는 인터뷰 때마다 "저를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았을 때 받아준 곳이 바로 뮤지컬이었어요. 여러 고난을 겪는 와중에 처음으로 선 무대였죠"라며 뮤지컬에 애정을 꾸준히 드러내왔다. 그가 뮤지컬에 책임감을 갖고 전력투구하는 이유다. 지지를 보내는 관계자, 팬들은 더욱 늘고 있다. 이제 김준수는 한국 뮤지컬 신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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