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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은 ‘자방한자’가 아니라 ‘자방고전’

등록 2018.12.18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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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篆)에서 취해 쓴 훈민정음 ㅅㅁㅂ

고전(古篆)에서 취해 쓴 훈민정음 ㅅㅁㅂ

【서울=뉴시스】 박대종의 ‘문화소통’

인간의 글과 말에 오해가 생기는 까닭은 그 글과 말을 구사하는 사람과 그걸 보고 듣는 사람 간에 세대 차이 및 교육을 통한 문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세대 차이는 시간 곧 역사의 차이이다.

6·25 전쟁을 겪은 할아버지가 “그때는 쌀을 구하기 어려워 굶기 일쑤였다”고 말하면, 1세대 차이의 아들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하지만 2세대 차이의 어린 손자는 “그럼 라면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하면서 남의 다리 긁는 소리 한다. 할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시대 상황을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은 세상이 확확 바뀌는 관계로 한 세대의 간격은 전통적 30년에서 10년으로 줄어든 바, 세대 간 소통을 위해선 말글과 역사 교육이 보다 중요해졌다. 

올해는 세종 즉위 600년 되는 해라, 30년을 한 세대로 계산하면 지금의 우리와 세종 간에는 약 20세대 차이가 난다. 그래서 세종과 그 신하들이 한문으로 쓴 1446년판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 등을 지금 사람들이 대할 때 여러 면에서 오해가 많을 것임은 당연하다.

2018년 10월 30일자 뉴시스 기사, 세종대왕 왈···“공자는 중국인 아닌 노나라 사람”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종과 그 신하들은 ‘중국’이란 용어를 ‘황제국’을 뜻하는 일반 명사로 보고 제후국인 ‘노나라’와 철저히 구별하여 사용했다. 참고로, 대당(大唐)·대명(大明)처럼 국명 앞에 ‘大’자가 붙으면 황제국을 뜻한다. 조선의 고종은 황제가 되었으며 그에 걸맞게 조선은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국명이 바뀌었다.

이와 같이 세종은 역사성 및 글꼴을 고려하여 ‘한자(漢字)’와 ‘고전(古篆)’이란 말도 철저히 구별해 썼다. 즉, 세종과 그 신하들에게 있어 ‘고전’은 서주 시대 청동기 등에 나타나는 금문에서부터 진나라 소전(小篆)까지를 의미했고, ‘한자’는 진나라 이후 글꼴이 크게 변경된 한(漢)나라 때의 해서체·행서체를 뜻했다. 또한 고전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도 오해가 없도록 ‘자형’과 ‘자음’의 두 측면을 구분하여 실록 등에 기록했다.

세종과 그 신하들은 세종실록과 해례본에서 훈민정음 28자의 자형은 ‘고전’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증언했다. ‘자방고전(字倣古篆)’이란 말은 세종 25년 음력 12월 30일자 세종실록에 최초로 등장한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들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였다.” 그리고 1446년 해례본에서 정인지는 “28자의 훈민정음은 상형으로, 그 자형은 고전을 본떴다”고 증언한 바, 이는 결코 지나치거나 왜곡해선 안 될 중요사안이다.

<사진>에서 보듯, 훈민정음 중 치음(齒音)의 기본자인 ‘ㅅ’은 사람의 이 실물을 보고 그린 상형자가 아니다. 이빨을 네모로 그린 갑골문에서 조금 개량하고 ‘止(지)’자를 첨가한 ‘齒(치)’의 소전체 중에서 ‘이’를 나타내는 ‘ㅅ’ 하나를 뽑아 쓴 것이다. 그런데 자형은 ‘齒(치)’의 소전체에서 취해 쓰되 그 자음은 중국과 달리 ch가 아닌 s 음으로 썼다. 바로 이 점이 2010.10.9일자 뉴시스 “몽골문자를 베낀 것이 한글이라는 학설에 대하여”에서 밝혔듯, 발음기관의 모양과 소리를 자연의 이치대로 일치시킨 세종의 위대한 독창성이다.  

훈민정음 입술소리의 기본자인 ‘ㅁ’의 경우, 금문과 소전체의 ‘口(입 구)’자를 본떴다. 齒(이 치)자 안에도 ‘ㅂ’자 모양의 口자가 들어있다. 그러나 고전에서 입모양을 그린 ‘口’는 ‘구’로 발음되지만, 훈민정음 ‘ㅁ’은 그 발음이 ‘구’의 ㄱ[k] 소리가 아니라 미음[m]으로 중국과는 전혀 다르다. 한편, 세종대왕이 ‘ㅁ’에서 선을 그어 가획할 때, 다른 글자들과는 달리 고전에서의 ‘ㅂ’ 자 모양의 口(구)를 참작하여 ‘ㅂ’의 형으로 결정하신 것으로 판단된다.

어떤 이들은 잘못된 교육으로 한자에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하는데, 고전과 한자는 다른 것이다. 한나라 때에 만들어진 한자는 몰라도, 기자조선에서 이씨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볼 때 은나라를 기원으로 하는 고전에 대해서는 우리 민족도 일정 지분이 있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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