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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초심 잃지 않고 개혁개방 끝까지 추진"(종합)

등록 2018.12.18 14: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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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AP/뉴시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개혁개방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개혁개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2018.12.18

【 베이징=AP/뉴시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개혁개방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개혁개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2018.12.18

【서울=뉴시스】문예성 기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18일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중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발전한 것을 자찬하면서 초심을 잃지 말고 개혁개방을 지속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개혁개방 40주년 경축 대회' 연설에서 “개혁개방이 공식 개시된 1978년 12월 18일은 중화민족, 중국 공산당, 중화인민공화국 역사상 중요한 날로, 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11기 3중전회) 이후 중국은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재화의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11기 3중 전회는 당과 국가의 운명이 중요한 역사적 기점에 처해 있을 때 개최됐다"면서 "당시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10년 대혼란으로 중국 경제는 붕괴의 위기에 처해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덩샤오핑 동지를 포함한 원로 혁명가들의 노력으로 당은 11기 3중 전회에서 '좌(左)'의 잘못을 시정했고, 개혁개방이라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개혁개방은 우리 당의 위대한 각성이자 이론에서 실천으로 변화하는 위대한 창조”라고 극찬하면서 “개혁개방은 중화민족 발전의 위대한 혁명으로, 이 혁명은 사회주의 사업의 위대한 도약을 이뤄냈다”고 전했다.

이어 “공산당 설립,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및 개혁개방과 중국 특색있는 사회주의 사업 추진은 (중국 신민주주의 혁명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5.4운동’ 이후 3대 역사적인 사건이자, 중화민족 부흥 역사에서 이정표와 같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마오쩌둥 동지를 대표로 한 중국공산당원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국 혁명에 결합시켜 신민주주의 혁명을 완성했고, 11기 3중 전회이후 덩샤오핑 동지를 중심으로 한 공산당원들은 중국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를 건설했으며, 자신의 길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자신이 집권한 공산당 18차 당대회 이후 당중앙 지도부는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5위일체(경제·정치·문화·사회·생태문명 건설)'와 '4개전면(샤오캉사회 건설·개혁심화·의법치국·종엄치당)' 전략 배치를 진행했고, 온중구진(穩中求進·안정 속 발전) 총체적인 발전 기조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또 “국민들의 성취감, 행복감, 안정감을 높이기 위해 1600건의 개혁방안을 마련했다”면서 “일부 오랜 난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했으며 전면적인 개혁을 실현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당은 경제체계 개혁을 위주로 경제, 정치, 문화 등 분야에서의 전면적인 개혁을 단행했고 당과 국가기구개혁, 행정관리체계개혁, 법치개혁, 사법체계개혁, 외사체계개혁, 국가안보체계개혁, 국방과 군 개혁, 감찰기구 개혁 등 일련의 중대한 개혁을 이뤄냈으며 이를 통해 국민에게 편리와 유익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1978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679억 위안에 불과했지만 작년엔 82조7000억위안으로 증가해 연평균 9.5% 성장했다”면서 “현재 중국은 세계 제2 경제체, 1위 제조업과 물류무역 국가, 2위 상업소비, 외자유입국이 됐다”고 밝혔다. 또한 “개혁개방 40년 동안 당과 정부는 민생 개선과 발전권 보장에 주력했다”면서 "중국 빈곤인구는 7억4000만명 감소했고, 빈곤율은 94.4% 감소했으며, 중국은 9억명 인구가 보장받은 세계 최대 사회보장체계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대만 문제와 연관해서는 “중국은 40년 동안 조국의 평화 통일 대업에 주력해왔다”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과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에 따라 양안(중국과 대만)간 교류와 평화로운 발전을 추진해 왔고 분리독립을 반대했다”고 전했다. 또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제도를 통해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주권을 회복해 중화민족의 100년 굴욕을 씻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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