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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소수취향 소설의 현실 톺아보기···이상문학상

등록 2019.01.07 16: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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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문학사상

윤이형 ⓒ문학사상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이상문학상 수상은 생각하지도 못해 놀랐어요. 스스로 소수 취향의 작가로 생각해왔거든요. 독자도 많은 편이 아니라 뜻밖입니다. 그만 두지 말고 노력하라는 뜻으로 감사히 받겠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05년 단편소설 '검은 불가사리'로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소설가는 몇 년 전부터 글을 쓰는 마음보다, '쓰기를 그만두는 마음'에 대해 톺아봐왔다고 고백했다.

그만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마음에 천착하던 작년 이 즈음, 아끼던 고양이가 죽었다. 이후 겨우 힘을 내서 쓴 중편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 2019년 제43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이 됐다.

소설가 윤이형(43)은 7일 정동에서 "작년에 기르던 고양이가 죽은 후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게는 큰 사건이었고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못한 채로 지나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글을 써보고 싶었죠"라고 말했다.

고양이의 죽음은 윤 작가에게 '삶과 죽음'을 전반적으로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가족 같은 존재의 죽음' 이후 "많은 것이 무의미하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에는 이런 윤 작가의 최근 생각, 심리가 투영됐다. 두 반려묘의 삶과 죽음을 겪은 부부를 통해 고립된 현대 사회의 삭막함과 현대인의 뼈저린 고독을 그린다.

윤 소설가는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 '큰 늑대 파랑' '러브 레플리카' 등을 통해 감정의 파편을 그리면서도 쿨한 태도로 감성과 이성의 줄타기를 하는 글들을 써왔다.

특히 이번 소설에는 고양이의 죽음과 함께 결혼 제도의 폐해에 대한 문제 제기가 녹아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변화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
윤이형, 소수취향 소설의 현실 톺아보기···이상문학상

기혼인 윤 소설가는 계속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소설 속에서 부인 '희은'이 점차 심리·물리적으로 멀어지고 있는 남편 '정민'에게 건넨 편지글 중 윤 소설가의 생각을 반영하는 문구가 있다. '우리는 결혼이 아니야. 결혼을 했을 뿐이지 정민 씨도, 나도 결혼이 아니잖아. 우리가 미워해야 하는 것은 서로가 아니고 제도야.'

윤 소설가는 "많은 경우에 결혼이라는 것을 자기 자신으로 생각해요"라고 짚었다. "결혼의 실패가 자신의 실패이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대놓고 말하지 못해요"라면서 "그래서 숨기고 기만적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해요"라고 털어놓았다.

"고양이가 죽은 것처럼 삶이 영원하지 않잖아요. 모두 언제가 죽을 것이고 그러니 '기만을 할 시간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진정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추구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변화하는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결혼 제도가 개인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라며, 소설 속 고민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다 같이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도 바랐다.

윤 작가가 생각하는 한국 결혼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출산과 분리되지 않은 것"이다. "출산, 육아를 사회가 분담하지 않은 채 부부·가족의 책임으로만 남게 하는 현실이 가장 나빠요"라는 얘기다.

"결혼의 문제점은 다들 느끼고 있어요. 왜 여성이 결혼 제도를 떠나려고 할 때 바로 떠날 수 없는지···. 희은은 이혼을 선택하지만 무려 7년을 준비해요. 경제 기반도 새로 갖춰야 하고 사회에 다시 적응을 해야 하니까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려는 것은, 만만치 않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작품 분위기가 어둠 속으로 침전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계속 슬픔에 매몰돼 있기보다 새로운 삶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라면서 "제 자신에게도 위로와 새로운 계기가 됐으면 했습니다"라고 바랐다.
윤이형, 소수취향 소설의 현실 톺아보기···이상문학상

"강렬했던 감정에 대해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는 것이 소설을 쓴 원동력이었어요. 여성 독자들이 보기에는 덜 급진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 한정해서 이야기하면 결혼 제도 안에서 사람에게 문제가 잇어 헤어진다고 할 때 원한을 갖고 미워하는 것은 결국 행복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서로를 최소한 존중하면서
헤어지는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죠."
 
'문학사상' 이상문학상 심사위원회는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를 대상으로 선정하면서 "중층적 서사 구조를 통해 형상화되고 있는 모든 살아 있는 존재와 그 생명에 대한 따스한 사랑은 이야기의 격조를 높여주고 있다"고 읽었다. 월간 '문학사상' 주간인 권영민(71) UC버클리 교수는 "부조리한 현실적 삶과 그 고통을 견뎌내는 방식이 중편소설로서의 무게에 알맞게 균형 잡혀 있다"고 봤다.

우수상 수상작으로는 김희선 '해변의 묘지', 장강명 '현수동 빵집 삼국지', 장은진 '울어본다', 정용준 '사라지는 것들', 최은영 '일 년' 등이 뽑혔다. 대상 상금은 3500만원, 우수상 상금은 각 300만원이다. 대상과 우수상 작들을 엮은 작품집은 21일 발매 예정이다. 시상식은 11월 중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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