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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종진이는, 꿈을 간직하고 살고···태관이는, 꿈을 나눠주고 살며

등록 2019.01.17 0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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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데뷔 30주년 기념 소극장 콘서트

[리뷰]종진이는, 꿈을 간직하고 살고···태관이는, 꿈을 나눠주고 살며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돌아갈 수 없는 건가요. 그때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고장 난 시계'를 부르던 퓨전 듀오 '봄여름가을겨울'의 보컬·기타 김종진(57)은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의 뒤 영상에서는 팀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인 드러머 전태관(1962~2018)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스쳐갔다.

초반에 부른 '슬퍼도 울지 않을거야'에서도 억지로 눈물을 참던 김종진은 오열했다. 객석에 있던 150여명도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곡이 끝나고 박수가 터져나왔다. 조명이 꺼지고 김종진과 밴드 멤버들은 휴지로 눈물을 닦았고, 팬들도 붉어진 눈을 비볐다.

16일 오후 2시 서울 홍대앞 구름아래 소극장에서 열린 '봄여름가을겨울 30주년 소극장 콘서트. 지난해 말 전태관이 세상을 떠나면서, 김종진이 홀로 무대에 올랐다. 콘서트 부제는 최근 발매된 봄여름가을 30주년 헌정앨범이자 전태관을 돕기 위한 음반이었던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법'과 같았다.

친구를 잃은 뒤에도 여전히 김종진은 우정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눈물을 흘린 뒤 노래한 "어쩌면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 만나면 행복해도 헤어지면 다시 혼자 남은 시간이 못 견디게 가슴 저리네"라는 노랫말의 '외로운 사람들'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먹먹했다.

팬들에게 직접 말하기 쑥스러워,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했다는 메시지도 뭉클했다. "안녕, 나 종진이야. 쑥스러워서 녹음을 해서, 너에게 편지를 보내. 고마워. 최근에 방황하고 뜻하지 않게 힘들어서 내려놓고 싶은 순간도 많았는데 너의 따듯한 말과 위로가 없었다면 다시 일어나지 못했을 거야. 네게 힘든 순간이 오면 내가 위로가 되줄게. 우리 좋은 친구가 되자."  

3시간 가량 펼쳐진 이날 공연은 봄여름가을겨울 두 멤버와 밴드 세션들, 그리고 팬들이 함께 30년을 시간여행한 자리였다. "한번보고 두번보고 자꾸만 보고싶네"라는 노랫말이 전태관을 향한 김종진이 마음을 대변한 듯한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 커버곡을 시작으로 '열일곱 스물넷' '내 품에 안기어' 등 봄여름가을겨울의 주옥 같은 곡들이 세트 리스트를 채웠다.
ⓒ봄여름가을겨울

ⓒ봄여름가을겨울

이번 소극장 콘서트는 30회차가 예정됐다. 매해 한 해 한해를 추억해 나가는데 첫 공연인 이날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의 데뷔해인 1988년이 소환됐다.

전태관과 김종진이 처음 만난 때는 1982년 크리스마스이브, 12월24일이다. 전태관이 서강대 경영학과, 김종진이 고려대 사학과에 재학 중이던 때다.

당시 음악인들의 사랑방으로 통한 방배동 카페 '시나브로'에서 크리스마스이브 파티가 열렸다. 서강대 밴드 '킨젝스'에 몸 담았던 전태관은 그럼에도 입사 원서를 끼고 살았던 시절이다. 전태관의 드럼 연주가 마음에 들었던 김종진은 그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방배동과 신촌 등지의 클럽을 중심으로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하던 두 사람은 1986년 가수 김현식(1958~1990)의 3집 제작에 참여하면서 프로로 데뷔했다. 김현식의 백밴드 '봄여름가을겨울' 멤버가 됐다.

그러다 같은 제명으로 1988년 독립해 첫 음반 '봄여름가을겨울'을 내놓았다. 퓨전재즈 등 실험적인 시도부터 블루스, 록, 어덜트 컨템포러리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어떤 이의 꿈' '내 품에 안기어'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아웃사이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등 히트곡들을 쏟아냈다.

김종진은 "1988년에는 저희 데뷔보다 덜 알려진 올림픽도 있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개막식에서 굴렁쇠를 굴리고, 호돌이도 기억나네요.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를 분양 받아서 대박난 사람도 있었고, 인기가 시들해지던 '대학가요제'에서 신해철씨가 대상을 타며 가요제의 인기도 끌어올렸죠. 저희 데뷔했을 때 앨범은 노란색이었어요.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등이 실렸죠. 표지그림은 저희 친구인 서도호씨가 그려줬는데 지금은 아주 유명한 작가가 됐죠."
ⓒ봄여름가을겨울

ⓒ봄여름가을겨울

봄여름가을겨울 30주년 앨범에도 참여한 'YB' 보컬 윤도현이 이날 게스트로 나와 팬들의 엽서를 김종진을 대신해 읽어줬다. 암투병한 전태관을 잃은 것처럼 위암과 뇌종양으로 아빠를 떠낸 딸의 사연이 공연장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김종진은 "제가 최근에 비슷한 일을 겪으면서 느낀 것은 윤도현씨처럼 같이 아파해주는 친구들 덕분에 기운이 생길 수 있다는 거였어요. 사실 우울하고 그랬거든요. 아버님께 같이 외쳐드릴까요?" 그러면서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허공에 대고 "사랑해요"라고 소리쳤다.

공연이 전체적으로 무거웠던 것은 아니다. 한국 대중음악에 공헌을 하고, 세상에 우정을 보여준 전태관의 인자한 미소처럼 희망도 안겼다.

앙코르 시간, 김종진과 밴드 멤버들은 선원을 연상케 하는 가로 줄무늬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모두 입고 나왔다. "저는 음악가를 '음악의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에 비유해요. 팬들은 항구가 되는 거죠. 겪지 못한 섬이 있을 수 있고, 해적과 만날 수 있고, 그러다 전서구도 날리고. 아직 항해는 끝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한번도 공개적으로 연주하지 않았다는 '컴 세일 어웨이(come sail away)'를 연주했다. 경쾌한 기타 리프 위로 "제군들 지금까지 고생이 많았다. 내 눈앞에는 목적지가 보인다. 아름다운 섬이다. 친구와 가정이 기다리고 있다. 조금만 더 기운을 내자"라는 김종진의 내레이션이 흐르는 곡이다.

대표곡 중 하나인 '어떤이의 꿈'을 부를 때는 "종진이는 꿈을 간직하고 살고, 태관이는 꿈을 나눠주고 살며"라며 어떤이를 두 멤버 이름으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진짜 마지막 곡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다.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봄여름가을겨울

ⓒ봄여름가을겨울

이처럼 이날 공연은 콘서트 형식을 빌린, 좀 긴 희망가 또는 위로가였다. 봄여름가을겨울을이 지나면 다시 봄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동시에 긍정하는 이 곡은 인생에 대한 최고의 '프러포즈' 같은 곡이다. 

지하에 있는 공연장을 벗어나기 위해 계단을 오르니 눈이 내렸다. '오늘 일기예보에 눈 소식이 없었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 한 쪽 끝에 위치한 제설기가 눈에 띄었다. 사실 마지막에 김종진이 "오늘 눈이 내린다고 하네요.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는 말을 한 뒤, 맞아야 하는 일종의 이벤트였다. 김종진은 이날 이 멘트를 하지 않았다. 대신 허공을 향해 다 같이 브라보를 외쳤다. 친구를 떠나보낸 뒤 맞는 첫 공연. 경황이 없었음을 방증한 보기다. 눈은 "괜찮다" "괜찮다"라고 말하는 듯 살포시 어깨와 머리 위로 쌓였다.  

이번 봄여름가을겨울 30주년 기념 소극장 콘서트는 2월24일까지 홍대 구름아래 소극장에서 총 30회 열린다. 장기 공연인만큼 다양한 공연구성도 눈길을 끈다. 수요일 낮 공연은 '커피콘서트', 목요일 저녁 공연은 '와인콘서트', 일요일 낮 공연은 '언플러그드 콘서트'다.

김현철, 이적, 유희열, 웹툰작가 김양수, 첼리스트 김규식, 배철수, 빛과소금, DJ DOC 김창렬, 이현우, 정동하, MC 김태훈, 클래식 기타리스트 배장흠, 조성모, 스윗소로우, 십센치, 홍경민, ‘B1A4’ 산들 등의 게스트 출연도 예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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