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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사라진 아베 시정연설, 북한엔 화해 손짓

등록 2019.01.28 14:4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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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한일관계 냉각을 그대로 반영

일본이 그리는 전후 신질서에서 한국 위상 축소 의도?

양국 협력 없이는 동북아 평화 번영도 어려워

 【도쿄=AP/뉴시스】문재인 대통령(왼족)이 9일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안내를 받아 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2018.5.9

【도쿄=AP/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5월 9일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안내를 받아 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19년 신년 시정연설에서 한국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2012년 재집권한 아베 총리가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8.5.9

【도쿄=뉴시스】 조윤영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금년 연두 시정연설에서 한국이 사라졌다. 아베 총리는 미국과는 ‘동맹강화’를, 중국과는 ‘양국관계의 새로운 단계’를, 러시아와는 ‘평화조약 체결’을 다짐했다. 북한과는 ‘김정은과의 만남’과 ‘국교수립 추진’을 밝혔다. 중동과 아프리카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외교’를 펼치겠다고 했고, 인도·태평양 지역과의 협력도 다짐했다.

 그런데 한국에 대해서는 북한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밝히면서 ”이를 위해 미국이나 한국을 비롯 국제사회와 긴밀히 제휴해 나가겠다“고 지나가듯 말한 것이 전부다. 아베 총리의 시정연설로만 본다면 일본에게 한국은 북한으로 가는 데 필요한 존재, 그것도 여러 국가들 중 하나일 뿐이다.

 아베 총리는 시정연설에서 북한의 위협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작년에는 “북한이 정책을 바꾸도록 어떠한 도발 행동에도 굴하지 않고 의연한 외교를 전개하겠다"고 했다. 북한에 대한 압박이나 제재 등의 용어도 사라졌다. 1년 전과는 확연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한국은 애써 무시하고 북한에는 잔뜩 호의를 표하는 듯한 아베 총리의 태도에서 한반도 주변 정세의 변화가 손에 잡히는 듯하다. 

 2012년 재집권한 아베총리는 그동안 신년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빠뜨린 적이 없다.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거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인 2018년 연설에서는 “지금까지의 양국 간 국제약속, 상호신뢰 축적 위에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심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무산되고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나오자 아베 총리는 지난 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부터 한국을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은 양국 간에 레이더와 초계기가 등장하는 군사갈등까지 보태졌다. 아베 총리는 개별 현안에 대해 직접 한국정부를 비난하는 발언은 하면서도 양국 관계의 중요성과 미래를 밝히는 시정연설 등에서는 한국에 대해 아예 입을 닫아버린 것이다. 
 
 아베 총리의 이런 태도가 한국에 대한 일시적 불만 표시 정도인지 아니면  앞으로 일본정부가 한국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신호인지는 좀더 지켜보아야할 것 같다. 하지만 이를 일시적 현상으로만 보아 넘기기에는 주변 정황들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아베 총리는 국정연설에서 지금이 ‘전후 일본외교를 총정리’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2차 대전 후 일본이 아직 평화협정을 맺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교전국인 러시아와의 평화협정 체결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데서 ‘전후 결산’의 상징성이 분명해진다.

 나아가 아베 총리는 ‘새로운 시대’ ‘세계의 평화와 번영’ ‘세계적 과제 해결’ ‘일본의 리더십에 대한 기대’ 등의 표현을 써가며 앞으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개헌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개헌의 필요성을 충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러 나라들과의 협력을 역설하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운 한국은 빼버린 것이다. 일본이 그리는 새로운 동북아 질서에서 앞으로 한국의 위상을 가급적 줄이려는 의도가 읽혀지기도 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무기로 미국과의 관계를 열어가는 과정에서 한미동맹이 약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일본이 한국에 대한 재평가 유혹을 받을만한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미동맹이 약화되는 틈새를 미일동맹으로 채워야 하는 현실적 필요성도 느낄 것이다.

 일본 정부로서는 앞으로 동북아 질서가 재편될 경우 한국이 과연 기존의 한·미·일 3각동맹에서와 같은 결집력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사정들로 해서 일본정부가 내심 한일관계를 재조정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 사실이 아베의 시정연설에서 한국 배제로 드러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로서는 아무리 전후 시대의 총결산을 외쳐도 과거 식민시대의 문제가 계속 불거져 나오는 상황에서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과거사 문제와 거기서 연유하는 영토문제 등은 싫든 좋든 일본에게는 심장에 박힌 가시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군사 갈등 같은 현재의 문제도 과거사 문제로 인한 양국 관계의 악화가 근본적 원인인 것이다.

 당장은 심장의 가시를 외면해 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아베 총리가 한국을 애써 무시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문제 해결과 한일 관계 정상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이 당장 추진하려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도 지금의 한국과 일본간 힘겨루기 양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양국간 엉킨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가 지금으로선 보이지 않는 게 문제고, 그런만큼 아베 총리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일 양국의 협력 없이는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도 어렵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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