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인색한 그래미, 시대 외침에 문열다···흑인·힙합·여성·BTS
차일디시 감비노 ⓒ소니뮤직
◇홀대 받던 흑인·힙합, 중심부로
올해 그래미 어워즈의 주인공은 미국의 래퍼 겸 프로듀서 차일디시 감비노(36)다. 지난해 미국 음악신을 뜨겁게 달군 '디스 이스 아메리카'로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 등 주요상 2개와 함께 총 4관왕을 품에 안았다. 랩송이 올해의 노래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감비노가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그에게 상을 몰아주는 드문 상황이 벌어졌다. 감비노는 작가 등 다방면으로 활약 중인 배우 도널드 글로버가 가수 활동을 할 때 사용하는 예명이다. 감비노의 앨범 유통사 소니뮤직에 따르면, 주요 부문 수상자가 참석하지 않은 것은 1989년 조지 마이클 이후 처음이다.
차일디시 감비노
올해도 백인을 우선시하고 힙합을 홀대할 것으로 예상된 그래미어워즈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대중음악신은 놀랍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평단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힙합계 음유 시인’ 켄드릭 라마(32)가 5개 상을 가져갔으나 주요상 없이 랩 카테고리에 한정된 것과 비교하면 진일보한 셈이다. 라마는 작년 그래미 어워즈가 열리고 약 석 달 뒤 클래식·재즈 외 음악 장르 가수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래미는 이런 뮤지션을 외면했거나, 보는 눈이 없었다. 다만 이번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다인 8개 부문 후보로 지명된 라마는 감비노 열풍에 밀려 '킹스 데드'로 '베스트 랩 퍼포먼스' 부문만을 받는데 그쳤다.
드레이크
◇여성의 목소리 전면에
여성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번 시상식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 MC로 미국 여성 R&B 가수 얼리샤 키스(38)를 내세웠는데 오프닝 역시 여성들이 장식했다.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1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1회 그래미 시상식의 오프닝에 사회자 얼리샤 키스와 팔짱을 끼고 등장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레이디 가가, 제이다 핀켓 스미스, 얼리샤 키스, 미셸 오바마, 제니퍼 로페즈. 2019.02.11.
오바마는 "음악은 존엄과 비애, 희망과 기쁨이다. 모든 목소리, 모든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관객들은 오바마를 향해 큰 환호와 함께 기립 박수를 보냈다. 오바마뿐 아니라 그녀와 팔짱을 하고 나온 가수 레이디 가가(33), 배우 제이다 핀켓 스미스(48), 가수 겸 배우 제니퍼 로페즈(50) 등 여성 연예인들이 음악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꿨고, 여성 권리를 보호해줬는지를 전했다.
독특한 의상과 음악으로 자주 가십의 대상이 된 가가는 "사람들은 내 외모, 내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내가 만든 음악이 잘 되지 않을 거라고 했다"면서 "하지만 음악은 그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음악의 힘을 믿은 덕에 여러분 앞에 설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컨트리 가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가 10일(현지시간)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제61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하고 프레스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머스그레이브스는 '스페이스 카우보이(Space Cowboy)'로 베스트 컨트리 송, '버터플라이(Butterflies)'로 베스트 솔로, '골든아워(Golden Hour)'로 베스트 컨트리 앨범 및 올해의 앨범상을 받으며 4관왕을 차지했다. 2019.02.11.
그래미 어워즈가 '여성 연대'라는 결기의 장에서 여성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는 '희망의 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지난해 그래미어워즈는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 미투(#MeToo) 운동에 연대의 뜻으로 결연했고, 눈물바다를 이뤘다.
이와 함께 이번 시상식에서는 여성 가수들이 선전하기도 했다. 미국 여성 컨트리 가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31)가 앨범 '골든 아워'로 주요상 중 나머지 하나인 '올해의 앨범'을 받은 것을 비롯해 4관왕을 차지했다.
레이디 가가
축하 무대에서도 여성 가수들의 강세는 이어졌다. 지난해 '하바나'로 세계 음악 시장을 휩쓴 쿠바 출신의 카밀라 카베요(22)는 뮤지컬를 연상케 하는 공연으로 첫 무대의 포문을 화려하게 열었다. 돌리 파튼(73), 다이애나 로스(75) 등 팝의 대모로 통하는 원로 여성 가수들의 축하 무대도 빛났다.
◇방탄소년단, 그래미 철옹성에 금을 내다
카밀라 카베요
리더 RM(25)은 수상자 호명 전 "한국에서 자라오면서 그래미 어워즈 무대에 서는 것을 꿈꿔 왔었다. 이 꿈을 이루게 해준 우리 팬들에게 감사하다. 다시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출현하자 객석은 환호로 가득했다. 베스트 R&B 앨범 부문은 미국 싱어송라이터 허(22·H.E.R)가 가져갔다. RM은 허의 이름을 부른 뒤 "축하한다"며 박수를 유도냈다.
방탄소년단은 본 시상식에 앞서 K팝 가수 최초로 그래미 어워즈에서 레드카펫도 밟았다. 일곱 멤버들은 턱시도를 단정하게 차려 입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레드카펫 MC들을 상대했다.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그룹 방탄소년단(BTS)이 10일(현지시간)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제61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시상자로 무대에 올라 수상자를 호명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K팝 가수 최초로 미국 최고 권위의 대중음악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 시상자로 나서 '베스트 R&B 앨범' 부문을 시상했다. 2019.02.11.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시상식을 마친 뒤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여러 차례 방송에서 그래미 어워즈에 참석하고 싶다고 말해왔는데, 실제로 이 자리에 서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오늘 그 꿈을 이뤘다"며 "그래미 어워즈에 참석하게 돼 무척 영광이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어 기쁘고 행복하다"고 전했다.
"정말 꿈 같은 순간이었다. 잊을 수 없는 선물을 준 아미(팬클럽)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 세계에서 생방송으로 지켜봐 준 많은 분들과 시상식에 초대해 준 그래미 어워즈에도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방탄소년단 ⓒ빅히트
이번 그래미어워즈에 방탄소년단이 지난해 5월 발표한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 앨범 패키지를 디자인한 허스키 폭스가 '베스트 레코딩 패키지'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불발됐다. 하지만 후보에 오른 것 만으로도 힙합, 아시아 가수들에게 인색해 보수적이라는 평을 들어온 그래미어워즈가 철옹성을 깨나가고 있는 증거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감비노 외에 톱 가수들이 잇따라 불참하는 등 일부 내홍은 이어졌다. 미국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26)는 "내 창의력과 표현이 방해 받았기 때문에 나는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그래미 어워즈를 보이콧했다. 그래미 어워즈는 그란데 수상이 유력하던 '베스트 팝 보컬 앨범'을 그녀에게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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